이 세상 거의 모든 분야에는 그 분야만의 "전설"이 있습니다. 전설은 시대를 초월하고 국경을 모르며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심 가운데 있다가도 시간이 흐르며 점차 잊혀지고 희미해지는 이슈들과는 달리, 전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진해지고 깊어집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전설을 기억하고, 그 위대함을 기념합니다. 영화계의 거장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그렇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Andrei Tarkovsky) 는 1932년 4월 4일 당시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고 1986년 12월 29일 망명으로 택한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유명한 시인이었고, 그는 소련영화연구소에서 영화제작을 전공하여 졸업한 1960년부터 감독으로써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시대를 불문한 전설의 감독이었지만 장편영화는 7편 밖에 제작하지 않았으며 학생 때 제작한 세 편의 단편 영화 외에는 1982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전부입니다. 같은 시대의 거장으로 자주 함께 언급되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총 열세 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한 것과 비교한다면 적은 편에 속하죠.
하지만 타르코프스키가 제작한 일곱 편의 장편 영화는 영화 역사에 범접 못할 대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심오함과 난해한 예술성으로 인해 관객은 지루하다고 외면했을지 모르지만, 반백년이 지난 지금의 감독들에게까지도 하나의 교과서처럼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또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는 영화의 샘이 된 것이죠. 그리고 영화 속의 의문만큼이나 수많은 글을 남긴 타르코프스키였기에 그의 출판물과 개인적인 노트들을 기반으로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항상 진행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단, 열심히 찾아보지 않는 한, 일반 대중들이 접하기는 어려운 그 곳에서요.
제가 타르코프스키 감독에 대해 처음 듣게 된 것은 대학원 때의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미디어작곡과에 뛰어들어 영어로 말하자면 ABC서부터 배우고 있을 때였죠. 영화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빠른 움직임의 무성영화가 끝나갈 때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대단히 어려웠지만 무언가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던 시퀀스를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스토커" 혹은 "향수"의 한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정신없이 움직였던 무성영화와는 달리 숨이 막힐 듯 천천히 이어져가는 롱테이크의 효과는 실로 막대한 것이었는데요, 아무것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도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것을 보면 상당히 깊이 각인된 기억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감흥이 지나고 나니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참 난해하기 그지 없었는데요, 뭔가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거나 발표를 해야 할 때가 되면 자연스레 피하는 주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장"이고 "전설"이며 "영화계에 다시 없을 천재"라는 수식어를 자랑하는 감독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참 초라하고도 바보같이 느껴졌으니까요. 그 후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정말 위대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거장"으로 기억되어 "아직은 이해되지 않는, 하지만 언젠가는 이해하고 싶은" 예술가의 목록에 올랐답니다.
예술영화를 사랑하지만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독 혹은 작품의 일방적인 신격화는 대단한 장애물입니다. 스스로가 판단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무조건 "이것은 대단하고, 멋진 것이다!"라고 못박아버린다면 (아직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자기자신의 솔직한 감정에 당황하게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뭔가 잘 아는 사람들이 "좋다!"라고 이야기했으니 좋은 것일거라 무턱대고 믿을 수도 없고, 반박하거나 질문을 하고 싶어도 뭔가 실수를 하게 될 것 같아 망설여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기 조금은 특별한 책이 있습니다. 현재 스탠포드 대학에서 슬라브어문학 조교수로 있는 나리만 스카코브 씨가 집필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그것인데요, 2012년에 런던에서 출간된 아주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너무 어렵게만, 그래서 멀게만 느껴졌던 타르코프스키와 그의 영화들에 대해 스카코브 교수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며 읽기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거장 타르코프스키를 말하다
대학 혹은 대학원에서 학술논문을 집필했던 사람이라면, 저자가 선택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얼마나 대담하고도 무모하기까지 한 제목인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본래 학술연구를 시작할 때는 아무리 큰 포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연구 과정에서 혹은 집필 과정에서 그 범위를 점점 좁혀가기 마련입니다. 야심차게 시작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알 수 있는 것, 알아낼 수 있는 것보다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것의 범위가 더 크다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인데, 이런 과정은 특히 그 연구의 제목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또한 이것은 다른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도 사용되는데, 우리 모두가 인간인지라 광범위한 타이틀을 "완벽하게" 채울 수 있을만한 컨텐츠를 구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21세기 작곡가들"로 시작했다면 21세기의 작곡가들의 압도적인 수와 헤아릴 수 있는 방법의 부재, 표본자료의 불충분으로 인한 통계의 불가능성 등으로 늦어도 수 개월 후에는 자신이 선택한 제목으로는 절대 적절한 연구발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완성된 연구의 제목은 "21세기 후반 한국 작곡가들의 정형화된 형식론 탈피" 처럼 대단히 구체화되고 축소된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죠.
서론이 길었는데, 그런만큼 스카코브 교수의 책 제목은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번역본의 제목이 그런가보다 했는데 원제도 "The Cinema of Tarkovsky"로 직역한 것이었네요. 아무리 일곱 편의 다소 짧은 필모그래피를 가진 감독이지만 단 한 편의 영화로도 연구주제가 될 수 있을만큼 방대한 예술성을 자랑하는 감독인데 도대체 이 책은 어떤 책일까? 궁금해진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아시아 출신의 나리만 스카코브 교수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문학과 영화를 전공했으며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루스탐 캄다모프 등 러시아의 문학 그리고 영화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문화와 문학 그리고 영화적 언어에 대한 그의 풍부한 지식은 책 전반에 걸쳐 보다 다차원적인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이해를 돕습니다.
오랜 세월에 거친 연구인 만큼 그의 주장은 일관되며 자신감이 넘쳐납니다. 가끔은 상당히 독단적이기까지 한 발언에 "저런 것을 저렇게 분명히 단언할 수 있는걸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자는 꼼꼼하게 인용구나 발언의 근거가 되는 출처, 부가설명에 대한 주석을 달고 있기 때문에 주석 또한 빼지 않고 함께 읽어나가면 한결 이해하기 수월할 것입니다.
영화, 그것의 종합적인 예술성에 대해서
"시간과 공간의 미로"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앞서 설명했듯 타르코프스키가 만든 일곱 편의 장편 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 안드레이 루블료프, 솔라리스, 거울, 스토커, 향수, 희생) 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공간이라는 주제가 감독의 일곱 작품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완성되는지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인데요, 감독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과 상징 그리고 제스쳐들이 하나의 영화가 아닌 일곱 편에 거쳐 점차적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것은 스카코브 교수의 책을 읽지 않고서는 유추하기 힘든 해석일 것입니다. 일곱 편의 영화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록들과 영화 제작 과정 등을 수집하여 분석하고 연구한 스카코브 교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지금이라도 책을 덮고 감독의 작품을 다시 한번 꼼꼼히 감상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아오를 것입니다. 스쳐 지나가듯 무의미해보였던 장면의 연결과 그 안에 담긴 상징. 언뜻 보기엔 인과 관계가 불분명해 보이지만 언어 외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감독의 역량을 스카코브 교수는 구체적인 예를 통해 설명합니다. 그저 난해하다고만 느끼다가 이 책을 읽게 되면 "아, 이 장면이 그것과 관련이 있었군!"이라고 무릎을 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시-공간적 불연속과 단절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의 영화에는 동질적으로 이어지는 4차원의 연속체가 없다. 감독은 지형적 좌표를 전치시키고 시간적 비약을 부여하며, 때로는 공간적 일탈이나 시간적 비정상성을 통해 영화의 미로로 들어선다. 이 전치와 비약은 내러티브의 탈선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관객이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게 만든다." (24 페이지)
선형적인 내러티브를 벗어나는 것. 어쩌면 진부한 고정관념의 탈피에서 시작된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세계는 시-공간의 분해와 재구성으로 인해 새로운 차원을 얻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시공간의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관객은 (감독의 지휘하에) 미로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감독이 이 모호하고도 광범위한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법 역시 영화에서 영화로 진화합니다. "이반의 어린 시절"의 시공간적 개념과 "거울"의 시공간적 개념은 그 사이에 놓인 시간 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까요.
"영화는 일반적으로 여러 종류의 흐트러진 파편들을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모으는 작업이다. 모자이크가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개별적인 조각들로 이루어지듯이, 영화 또한 숏으로 구성된다. 전체 맥락에서 떼어 낸/분리한 각 조각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조각들은 오로지 전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161페이지, 타르코프스키 인용)
그리고 이 "전체로서의 영화"는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 보았을 때 비단 한 영화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감독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다음 작품 혹은 그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조차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다음 작품에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암시들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즉,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상당히 순환하고 있어서 하나 하나의 작품이 독립된 작품이지만 그것들을 하나의 "전체"로 볼 때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카코브 교수의 연구는 이런 형이상학적인 비판과 해석에서 그치지 않고 상당히 "손에 잡히는" 영화적인 디테일도 포함합니다. 그 중 한 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인용문에는 예수와 그의 제자 중 한 사람(클레오파)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 또 지명(예루살렘, 엠마오)도 스토커는 똑똑히 발음하지 않고 속으로 '삼킨다'. 주인공의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이 구절을 속삭이자, 누가복음이라는 성전의 인용이 은밀한 비밀로 바뀐다. 이제 관객은 '누가, 어디로, 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스토커의 비밀스러운 담론에서는 이름, 정의, 기록 등이 모두 제거된다. 그래서 관객도 본래 인용문의 출처를 명확히 알려주는 고유 명사가 사라지면서 텍스트가 의미의 엄격한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유명한 성경 구절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용문 속 두 제자의 운명을 되풀이한다." (238 페이지)
문득 이 단락을 읽는 순간, "스토커"의 더빙판을 한 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고유 명사를 말 그대로 "떼어냄으로써" 구체성을 제거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더빙을 시도한 버젼은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해지더군요. 사실 더빙 작업(물론 그 전의 번역 작업도 마찬가지지만)은 단순히 어떠한 내용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관객에 앞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해야만 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처럼 영화 속에 수많은 텍스트적 장치를 심어둔 감독의 작품이라면 작업은 더욱 더 난해해질 수 있을테니까요. 더빙판으로 이 영화를 접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더빙판이 감독의 이러한 의도를 제대로 전달해내지 못했다면) 저자의 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아, 그런 뜻이 있었나?" 의아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러시아어를 알지 못하는 이상 자막으로 영화를 접해도 같은 결과겠지만요. 이러한 면에서 저자의 폭넓은 지식과 슬라브어문학에 대한 조예는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분석하는데 있어 근본적이면서도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가 오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을 우리와 함께 나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까지 느껴지네요.
대중을 위한 학문, 대중이 이해하는 예술
동시대의 거장이자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며 갈등을 빚은 것으로 유명한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와 안톤 부르크너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의 "예술음악(autonomous music)"과 "실용음악(applied music)"의 갈림길에 대한 전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이해받아야한다는 브루크너의 입장과는 달리 브람스는 음악은 사람들에게 이해받기보다는 그 자체의 고귀함을 이어가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음악이 대중에게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죠. 몇백년이 지난 오늘 이 두 작곡가의 작품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두 아름답기 때문에 어쩌면 난해하다 그렇지 않다했던 그 때의 논란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예술음악은 그 후 걷잡을 수 없이 "더 난해"해졌으니까요).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갔는지는 어느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독립적이고도 그 자체로 완성된 예술작품을 추구했는지, 아니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의도가 이해되길 바랐는지도요. 그가 떠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은 자료들을 도구삼아 그와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시간의 베일을 하나 하나 벗기는 것 뿐입니다. 물론, 그 끝이 우리를 감독의 본질적인 의도로 인도한다고 장담할 수 없고요.
"실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한 예술을 다시금 표현 불가능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
그저 잘난척하며 말을 뒤틀어놓은 것이 아니라, 스카코브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진심으로 이 책이 하고자 했던 것이 이것이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애초부터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자신의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실현불가능하다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감독의 욕망이었고, 다시금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써 풀어내려 한 것이 스카코브 교수의 욕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타르코프스키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전무한 상황에서 스카코브 교수의 책을 읽고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연구의 타당성과 추론의 근거를 무턱대고 신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인데요 (책 뒷부분에 무려 22페이지에 달하는 주석과 22페이지의 참고문헌이 실려있지만 출처와 문헌들을 우리나라에서 구해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이것들에 대한 궁금증은 스카코브 교수의 연구에 대한 신빙성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우리만치 구체적이고도 흥미로운 분야인만큼 더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큰 것 같습니다. 역자 이시은씨도 역자의 말에서 언급했지만 활발한 연구활동이 이루어지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에 대한 연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그 아쉬움을 뒤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편안하게 쉬면서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물론 평소에 어떤 책을 주로 읽느냐에 따라 그 개인적인 차이가 크겠지만, 저는 공부하듯 꼼꼼하게 읽어야만 했습니다. 연구 내용이 생생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힘든 시간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집중하여 공을 들여 읽어야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 책의 기획 의도 자체가 가장 최신 연구 내용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난해하지 않게 풀어나가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에게는 확실히 조금은 어려운 책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접해본 관객이라면,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길 기대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 포괄적이고도 더 구체적인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또 꼬리를 물어 몇 개의 질문이 될 수는 있지만, 이미 질문이 늘어나는 그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이해가 시작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