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연히 일본 근대 여성작가인 히구치 이치요의 단편 [키 재기]를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은 마치 우리나라의 [소나기]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작가에 대해서 꼭 알아두어야만 한다. 그녀의 삶이 작품 속에

잘 반영되어있기도해서인데 그녀의 이력이 독특해서이기도 하다.
고인이 된 이 작가는 16살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호주가 되어 일가를 짊어지게 된다.

가난 속에 일을 했고 집안의 몰락으로 정혼자에게마저도 파혼을 당한다. 그리고 평생 독

신으로 살았고 20세에 문단에 데뷔했지만 4년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녀의 천재성은

그녀가 죽고난 후에 평가되었고 특히 일본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이

[키 재기]이다. 젊었을 때 그녀의 작품이 평가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도 짧은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키재기]. 이 작품은 주인공 미도리와 신뇨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소나기처럼 이루어질 수 없기에 또 슬픈 이야기이다.
일단 이 둘의 신분으로 인한 차이가 있다. 용화사의 신뇨는 부모 뒤를 이어 승려가 될 아이이고

미도리는 최고급 유녀의 동생이다.
이 둘의 만남이 서정적으로 그려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비가 내려 나막신의 코가 빠져

문 앞에서 신뇨가 새끼를 꼬고 있을 때 미도리가 살짝 격자문 사이로 천조각을 가만히 던졌던

장면이었다. 마지막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신뇨가 승려학교에 들어가던 날, 조화로 된 수선화를

격자문 밖에서 밀어넣은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해 결국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지만, 첫사랑의 추억처럼 아련한 일로 그치게 되

고 만다.
아직 어리기에 서로의 감정에 서툴렀던 미도리와 신뇨의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이 작품은 아주 독특한 작품이었다. 짧지만 여운이 아주 길었다.

쥐스킨트 외에 두번째로 좋아하게 된 작가, 마르셀 에메.
어쩌면 우리나라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는

프랑스문단에서 사랑받는 작가이고 짧은 이야기의 거장이다. 오 헨리 작가처럼.
짧은 단편 속에 아이러니함과 익살스러움,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있지만

특히 그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많이 썼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이야기를 보자면 이렇다.
뒤티유욀이라고 불리던 평범한 한 남자. 그에게 특이한 능력이 하나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무

런 장애를 느끼지않고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등기청의 하급직원이었던 그는 마흔세살에 자신에게 그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도죽질에 사용해 은행에서 많은 돈을 훔친다. 교도소에 갇혀도 그는 감쪽같이

도망을 나온다. 이제는 벽이 병풍처럼 시시해보일때쯤 그에게 한 여성이 나타나게 된다. 아니,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그 여인은 질투심이 많은 남자와 불행한 결혼을 해 집안에 꼭꼭 갇혀지냈었다.
남자는 벽을 통과하며 그 여인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그는 약을 잘못 먹고, 두꺼운 담벽에 들어

갔을 때 딱딱해져서 그만, 벽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독특한 능력을 가진 남자, 하지만 불행히도 사랑을 이루지못한채 벽에 갇히고 마는 남자.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정말 벽과 벽사이에서 탄식하는 소리를 내는 뒤티유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문학적 상상력이 너무도 잘 드러난 보석같은 작품이다.

신경숙 작가의 초기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 [풍금이 있던 자리]이다.
굉장히 서정적인 이 소설은 섬세한 여성의 심리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편지글의 여성의 고백체로 이루어져서 구성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시작 전 서두에서 동물원에서의 한 이야기를 통해 이미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말해주고 있다.
코끼리거북 앞에서 우아한 날갯짓을 보인 공작새의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것을 말하고

있다.
여자는 남자와 비행기를 타고 떠나려했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의 과거, 여자 또한 어릴 때

한 여자를 맞는다. 뽀얗던 여자, 은은한 향내가 난 화사했던 여자. 자신의 집으로 그 여자가 들어와서

그녀의 어머니는 자취를 감춘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그 여자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 여자처럼 되고 싶어 했었다.
이 작품이 돋보였던 이유는 여성의 감수성에 맞게 요리를 하는 장면들이 잘 묘사되어있었기 때문이었

다. 그리고 손씻기를 하는 주인공이나, 틈만 나면 칫솔질을 했던 아버지의 여자. 행위를 통해 등장인물

들의 보이지않는 심리를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집에 왔으나 도망치듯 나갔던 그여자. 그여자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나 처럼은 되지 마. 자신처럼은 되지 말라고 말이다.
남자와 떠나기로 한 약속시간. 하지만 그녀는 함께 떠나지못했고 편지도 부치지못한다.
그리고 그녀에겐 은선이라고 이름 붙인 아이가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분히 여성적인 시각과 심리에서 너무도 잘 풀어낸 작품이다.
유독 쉼표와 말없음표가 많은 이 작품은, 이런 문장부호를 통해서도 등장인물들의 힘겨운 심리를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