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으로 시작하는 아침

상쾌할 리가 없겠지요

프롤로그는 누구의 이야기인지 궁금하네요

'관동대지진'

그 묻힌 이야기를 파 낸 한 사람

프롤로그의 이야기에서처럼 한 순간 사라진 사람들

그들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요

사람이 말 그대로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걸까요

백년이 흘러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악몽에서 허우적 대다 눈을 뜨는 린

린의 꿈에 찾아오는 뾰족한 빛은 무엇일까요

또래 여자 아이들처럼 짝사랑에 설레고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이 추억에 젖어 있기도 하네요

그런 린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파문

할머니의 죽음

한시절 린의 우주였던 세계가 부서졌다는 소식

엄마는 할머지의 세계를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지만 린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네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제 입장에서 본다면 엄마의 입장이 이해되는 면도 있구요

요컨대 일들 사이에 필요한건 소통과 대화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또 한면은 1923년으로 뛰어가네요

3.1운동의 뒤끝이 남은 경상도 산골의 마을

그러네요

우리는 교과서에서 3.1운동에 대해서 배웠지만 이 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어요

누군가는 죽었고 다치고, 떠나고....

비극의 시대

정필도 그 비극에 실려 일본으로 떠나옵니다

"적에게 배워 힘을 기르자. 그리고 그 힘으로 적을 무찌르자."

정필의 이 다짐이 유난히 아프네요

떠나와서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힘겹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기도 해요

할머니의 유품 정리 문제로 엄마와 부딛히던 린은 동경하던 하루와 이상한 빛 속으로 빠져버리네요

타임슬립

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와 그들이 만난 세계는 아수라장입니다

지진으로 부서지고 곳곳에 불이나고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고, 폭동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인다는 소문...

한국인과 일본인의 혼혈인 하루와 일본인인 린의 입장이 미묘하게 벌어지는 순간이 나오네요

'나는 일본인이니까'라는 린의 믿음(?)이 어이없이 깨지면서 소문의 진위에 대해 둘은 의심하게 되네요

조선인이라는 오해와 함께 잡혀간 경찰서 유치장

유치장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라도 흥분한 군중들과 조선 사람들을 분리해서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한 경찰도 있었음을

길 잃은 여자아이를 데려다주다가 납치라는 오해를 받으며 몽둥이에 맞아 죽어간 정필...

그 손에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동생의 생일선물

펜촉에 올리브 잎사귀가 그려져 있다는 아이러니...

백년의 시간을 이어온 약속은 아이들의 손에서 지켜집니다

하지만 그들의 약속은 생일 선물을 전해주겠다는 그것만은 아니었을거에요

백년전의 그 비극을 잊지않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도 그들의, 그리고 우리의 약속은 아닐까요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입니다

'요절'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는다는 뜻의 이 단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겠네요

작가의 이 경험이 진하게 녹아있어요

작가 소개에서부터 등장하는 이야기

"결국 인간에게 슬픔이란 이겨내는 것이 아닌 담담하게 끌어안기 위한 수없는 연습"

표지의 책 소개에 이런 말이 남네요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이 '과거 어린 시절로부터 형성되었던 낮은 자존감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 여정'이라고 이야기해요

읽는 내내 쳇증처럼 무언가 얹힌 기분이 따라다니기도 하는데 그게 아마 저자의 '낮은 자존감'이라는 말 속에 녹은 마음 같네요

저자는 전체를 4장으로 나누고 있어요

1장은

'인생은 항해와 같다'

앙리 루소의 "꿈"으로 시작하네요

서른이 넘어 그림을 만나 취미로 지내다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워 쉰 가까운 나이에 전업작가로 뛰어든 루소의 이야기

76세에 전업 작가로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배움에, 꿈3장은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말을 전해요

밀레의 "만종"과 모네의 "수련"으로 이어지는 내면 침잠과 반동의 사색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네요

2정운

'명화에게 말을 걸다'

절망의 바닥에서 일어선 화가들이 많이 보이네요

고흐와 프리다 칼로, 마네, 뭉크

절망하고 좌절했지만 그 감정에 먹혀버리지는 않은 이들이지요

3장은 '그림이 내게로 와 삶이 되다'

좌절과 절망에 매몰되지 않고 일어서는 날들이 시작되네요

마지막 4장은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로 여는 장이에요

명화와 저자의 생각들이 나란히 배치되는데 사실 방점은 그림보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찍힌 것 같아요

우리가 이른바 '명화'라고 알고 있던 그림들도 있지만 낯선 그림들도 많구요

사실 이 부분은 제게 공부가 되더라구요

아무래도 미술을 공부한 저자이니만큼 저변이 넓은게 확실히 보인다고 할까요

다만 저자의 일기장을 엿보는 느낌이 들어서 살짝 불편한 감이 있긴 해요

제목 그대로 그림을 보며 저자가 담담하게 던지는 이야기들인데 공개적으로 읽기엔 지나치게 개인사적인 느낌????

그림에 중심을 두지 않고 저자의 이야기에 담담하게 귀기울이는 기분으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단 한 마디...

고작해야 말 한마디인데 그 한마디가 이렇게 힘든 일일까요

책을 덮은 지금도 먹먹합니다

'단 한 마디를 위한 용기'

'난징 대학살'이라는 관념어로 우리에게 남은 사건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비극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도 분명 비극이지만 동시대 다른 곳에서 일어났던 이런 일들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1937년

일본의 침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은 확전되고, 끝모를 자신감으로 일본은 전선을 동남아로도 넓히고, 인력이 부족해지자 식민지에서 끌어온 젊은이들로 채워넣기 시작하는...

악순환..

생명의 무게가 '따위'로 취급되는 광기의 시대

주인공 아즈마 시로는 어쩌면 지나치게 순진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부가 선전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정말 교과서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그런 그의 맹목적인 믿음에 조금씩 금이 갑니다

3개월이면 중국 전체를 점령한다던 군부의 선전과는 달리 도시 하나를 점령하는데도 3개월이상 걸리고 항복한 포로를 죽이고, 양민을 함부로 학살하는 행태

'천황의 부대', '하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닥보다 더 밑으로 가는 행적은 무엇일까요

12월 난징

점령하지 못햇던 시간의 '복수'를 주장하는 일본군의 행태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 행태에 항의하는 주인공에게 휴가처럼(?) 주어진 위안소행

당연히 일본에서 자발적으로 온 여성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러나 그곳에서 자신이 구해온 중국 여자와 마주치고 그의 순진했던 세계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납니다

소심한 죄갚음일까요

그 중국 여성을 빼내고 난징의 국제안전구역으로 데려가려는 몸부림

여정 내내도 말 한마디 나눌수 없는 일본의 오만을 마주하네요

결국 여자는 죽고 좌천된 주인공도 포로 살육에 가담하게 됩니다

나무토막으로 그려지는 사람이라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픈 어제네요

그 피묻은 손으로 주인공은 학살 위령탑에 꽃을 한송이 올립니다

그리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그 한마디를 힘겹게 뱉어내네요

"뚜이부치"

50년 가까이 마음에 담고 있던 그 한마디를 꺼낼 수 있었던 주인공은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어제를 인정하지 못하고 아직도 덮고 있는 그 정부에 미하면 말이지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역사지만 덮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 어제를 바로보고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고 새기는 것이 오늘을 걷고 있는 우리의 할일은 아닐까 싶네요

고등 이상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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