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역사란 성공한 반역의 대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새로움의 창출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의 역사에서도 부정적 욕망이 [다름]이나 [차이]의 창조에 주저하지 않을수록, 나아가 이를 위한 자기반성적(철학적) 성찰을 깊이 할수록 그에 대한 보상 공간이 크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은 조형 예술의 두드러진 흔적 찾기나 그것의 연대기적 세로내리기(통시성)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그보다 이 책은 시대마다 미술가들이 시도한 욕망의 가로지르기(공시성)가 성공한 까닭에 대하여 철학과 역사, 문학과 예술 등과 연관된 의미들을 (가능한 한) 통섭적으로 탐색하는 데 주력했다. 이른바 [가로지르는 역사]로서 미술 철학의 역사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머리말'중에서 / p.6) 

서론

역사 가로지르기와 미술 철학의 역사

인간의 욕망은 늘, 그리고 어디서나 가로지르려 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유목민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리 욕망은 물론이고 영토 욕망, 심지어 제국에의 욕망조차도 따지고 보면 <생득적>이다. 이처럼 지상(지도)을 가로지르기(횡단성,공시성) 위해 노마드nomade로서의 인간은 공간에 존재한다. 인간은 시간적 존재라기보다 공간적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시간보다 공간의 영향을 지배적으로 받는다. 같은 시대라도 어디에 살았느냐, 어떤 사회적 구조나 환경에서 살았느냐에 따라 사고방식이 다르고 에피스테메(인식소)도 다르다. 미술사를 포함한 모든 역사가 시간의 기록이라기보다 공간의 기록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통섭사로서 미술 철학사는 역사의 이해와 서술에서 요구되는 통일과 건조의 과정을 [철학에 기초하여] 진행한다. 그리고 통섭사로서 미술 철학사는 철학으로의 환원이 아닌 [철학이 지참된] 미술의 역사이기도하다. 
시대를 가로지르려는 조형 욕망이 맹목과 공허를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학을 지참한 채 과학과 종교, 신화와 역사, 문학과 음악 등 다양한 지평과의 리좀적 통섭과 공시적 융합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수준 높은 철학적 지성을 지닌 미술가일수록 미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우선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마티스가 [위대한 예술가는 자기 시대의 사상과 철학의 각인이 가장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문에 미술 철학사는 [미술로 표현된] 철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론'중에서 / pp.20~21)

누구나 사고방식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리 보인다. 재현 양식이 달라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철학이 새로운 미술을 낳는 것이다. 예컨대 메디치가의 코시모와 로렌초의 시기만큼 철학이 미술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정신적 지주가 되었거나 지렛대 역할을 했던 경우도 흔하지 않았다. 다름 아닌 메디치가의 이데올로기였던 신플라톤주의 때문이었다. (......) 신플라톤주의의 영향과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예술가는 산드로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였다. (......) 보티첼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이나 피렌체의 여인들을 통해 [미의 이데아]를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플라톤이 레테(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영혼의 고향과 다시 만나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거기에서 일종의 하이퍼리얼이 재현되길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그렇듯 기독교적 시공의 실재에 구속되지 않는 보티첼리의 새로운 사유의 장 모두가 당시로서는 또 다른 하이퍼리얼이었다. 
('I. 욕망의 지렛대가 된 철학'중에서 / pp.106~115)

많은 남성들에게 [모나리자]는 그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리고 욕망하는 여인상이었다. 이 그림에 대해 지금까지 보여 온 남성들의 호들갑이 병적인 까닭도 그 때문이다. 더구나 거기서 암수 한 몸인 안드로진androgyne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떠벌리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리스어로 남성을 의미하는 안드로andro와 여성의 의미인 지네gyne를 결합한 여성이면서도 남성인 남녀 양성인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L.H.O.O.Q.](1919, 도판18)로 [모나리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초상 욕망까지도 희화한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통해 잠재된 욕망을 배설하려 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나르시시즘(자기도취)과 더불어 그것을 표출하려는 초상 욕망을 지니고 있다. 화가들이 잠재된 욕망을 초상화로 표층화하면 관람자들은 그들이 그려 놓은(배설한) 초상화로 재배설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한 점의 초상화는 양자의 나르시시즘을 배설하는 욕망의 공동 화장실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앤디 워홀은 [서른 개가 하나보다 낫다](1963, 도판19)에서 모나리자의 복제 30장을 여섯 장씩 5열로 배치함으로써 욕망의 화장실 효과를 무색하게 한다. 그는 거대한 풍차를 거인이라고 착각하고 덤벼든 돈키호테처럼 방탄유리 안에 갇혀 있는 욕망의 블랙홀과도 같은 그 허상을 파괴하려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역설적 패러디인 뚱뚱하고 못생긴 [모나리자](1977, 도판20)처럼 [모나리자]는 미술사에서 이미 해학과 골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I. 욕망의 지렛대가 된 철학'중에서

모름지기 역사란 성공한 반역의 대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새로움의 창출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의 역사에서도 부정적 욕망이 [다름]이나 [차이]의 창조에 주저하지 않을수록, 나아가 이를 위한 자기반성적(철학적) 성찰을 깊이 할수록 그에 대한 보상 공간이 크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은 조형 예술의 두드러진 흔적 찾기나 그것의 연대기적 세로내리기(통시성)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그보다 이 책은 시대마다 미술가들이 시도한 욕망의 가로지르기(공시성)가 성공한 까닭에 대하여 철학과 역사, 문학과 예술 등과 연관된 의미들을 (가능한 한) 통섭적으로 탐색하는 데 주력했다. 이른바 [가로지르는 역사]로서 미술 철학의 역사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머리말'중에서 / p.6) 

서론

역사 가로지르기와 미술 철학의 역사

인간의 욕망은 늘, 그리고 어디서나 가로지르려 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유목민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리 욕망은 물론이고 영토 욕망, 심지어 제국에의 욕망조차도 따지고 보면 <생득적>이다. 이처럼 지상(지도)을 가로지르기(횡단성,공시성) 위해 노마드nomade로서의 인간은 공간에 존재한다. 인간은 시간적 존재라기보다 공간적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시간보다 공간의 영향을 지배적으로 받는다. 같은 시대라도 어디에 살았느냐, 어떤 사회적 구조나 환경에서 살았느냐에 따라 사고방식이 다르고 에피스테메(인식소)도 다르다. 미술사를 포함한 모든 역사가 시간의 기록이라기보다 공간의 기록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통섭사로서 미술 철학사는 역사의 이해와 서술에서 요구되는 통일과 건조의 과정을 [철학에 기초하여] 진행한다. 그리고 통섭사로서 미술 철학사는 철학으로의 환원이 아닌 [철학이 지참된] 미술의 역사이기도하다. 
시대를 가로지르려는 조형 욕망이 맹목과 공허를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학을 지참한 채 과학과 종교, 신화와 역사, 문학과 음악 등 다양한 지평과의 리좀적 통섭과 공시적 융합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수준 높은 철학적 지성을 지닌 미술가일수록 미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우선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마티스가 [위대한 예술가는 자기 시대의 사상과 철학의 각인이 가장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문에 미술 철학사는 [미술로 표현된] 철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론'중에서 / pp.20~21)

누구나 사고방식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리 보인다. 재현 양식이 달라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철학이 새로운 미술을 낳는 것이다. 예컨대 메디치가의 코시모와 로렌초의 시기만큼 철학이 미술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정신적 지주가 되었거나 지렛대 역할을 했던 경우도 흔하지 않았다. 다름 아닌 메디치가의 이데올로기였던 신플라톤주의 때문이었다. (......) 신플라톤주의의 영향과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예술가는 산드로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였다. (......) 보티첼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이나 피렌체의 여인들을 통해 [미의 이데아]를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플라톤이 레테(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영혼의 고향과 다시 만나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거기에서 일종의 하이퍼리얼이 재현되길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그렇듯 기독교적 시공의 실재에 구속되지 않는 보티첼리의 새로운 사유의 장 모두가 당시로서는 또 다른 하이퍼리얼이었다. 
('I. 욕망의 지렛대가 된 철학'중에서 / pp.106~115)

많은 남성들에게 [모나리자]는 그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리고 욕망하는 여인상이었다. 이 그림에 대해 지금까지 보여 온 남성들의 호들갑이 병적인 까닭도 그 때문이다. 더구나 거기서 암수 한 몸인 안드로진androgyne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떠벌리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리스어로 남성을 의미하는 안드로andro와 여성의 의미인 지네gyne를 결합한 여성이면서도 남성인 남녀 양성인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L.H.O.O.Q.](1919, 도판18)로 [모나리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초상 욕망까지도 희화한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통해 잠재된 욕망을 배설하려 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나르시시즘(자기도취)과 더불어 그것을 표출하려는 초상 욕망을 지니고 있다. 화가들이 잠재된 욕망을 초상화로 표층화하면 관람자들은 그들이 그려 놓은(배설한) 초상화로 재배설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한 점의 초상화는 양자의 나르시시즘을 배설하는 욕망의 공동 화장실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앤디 워홀은 [서른 개가 하나보다 낫다](1963, 도판19)에서 모나리자의 복제 30장을 여섯 장씩 5열로 배치함으로써 욕망의 화장실 효과를 무색하게 한다. 그는 거대한 풍차를 거인이라고 착각하고 덤벼든 돈키호테처럼 방탄유리 안에 갇혀 있는 욕망의 블랙홀과도 같은 그 허상을 파괴하려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역설적 패러디인 뚱뚱하고 못생긴 [모나리자](1977, 도판20)처럼 [모나리자]는 미술사에서 이미 해학과 골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I. 욕망의 지렛대가 된 철학'중에서

그녀는 경주Gyeongju, Korea 기차역 앞 작은 버스 정류장에 쪼그리고 앉아서 오렌지를 판다. 종일 팔아야 하는 오렌지는 다섯 개씩 쌓아올린 열 무더기가 전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지도 맴도는 비둘기들을 쫓지도 않는 그녀는 세상에 손톱만의 폐도 안 끼치려는 듯 최대한 웅크리고 앉아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오는 사람들은 그녀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지나칠 만큼, 그녀는 오래된 정물 같다.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두리번거리다 만난 그녀. 푼더분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그녀의 오렌지를 사고 싶어졌다. 값을 묻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삼천 원이란다. 허리춤에서 쭈글쭈글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오렌지를 담아주는 그녀에게 난 오천 원을 건넸다. 거스름돈을 받으려는데 그녀가 멍하니 망설이고 서 있었다. 내 눈을 오롯이 바라 보고 선 채로 아무 말도 없이. 그러더니 전대 손을 넣어 안에 있던 돈을 전부 꺼내 두손에 받쳐 들고는 쫙 펼쳐 내 가슴께에 밀어놓았다. 셈을 못한다는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은 표정. 그러나 돈은 벌어야 겠다는 마음. 그러나 속고 싶지 않은 삶. 그것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집어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집어드는 돈을 보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내 두 눈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의심하는 눈빛도 애원하는 눈빛도 아니었다. 당신의 셈을 믿는다고, 당신도 내 오렌지를 믿고 사지 않느냐고, 당신은 세상에서 누군가를 속이지도 않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 거라고 말하는 듯한 눈동자. 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건네는 말 앞에서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슬쩍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그녀는 세상의 불신에서 무장에해제된 사람처럼 그제야 말을 꺼냈다.

내겐 모두가 선생이니까···.

쉰 후반쯤의 여자가 내게 선생이라니. 돈  세는 데엔 너무도 익숙한 내가 셈할 줄 모르는 그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생각했다. 돈 헤아릴 줄은 알아도 사람 마음 헤아릴 줄은 모르고 살았구나. 돈과 물건이 아닌, 마음을 주고받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상인이구나. 
버스를 타고 바다에 도착하기까지, 그녀의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를 다디달게 먹었다. 완전한 믿음을 가르쳐준, 세상에서 가장 맛있던 그 오렌지는 지금도 의심 많은 내 눈초리를 아래로 아래로 내려준다.

정영 <때로는 나에게 ❜ 쉼표> 'Racconto 08 : 내게는 모두가 선생(part.1)' 중에서... 


내가 그랬던 적도 있다. 처음 외국에 나갔던 터라 돈 계산이 쉽지 않았다. 지폐와 동전의 가치를 익히랴 환율을 셈하랴 정신이 없었다. 프랑스 작은 시골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떠나려던 아침이었다. 길목의 작은 빵집에서 갓 구운 빵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왔다. 서둘러 기차를 타러가던 나는 빵집에 들러 빵 몇 개를 골라들었다. 그러나 가격표도 붙어 있지 않았고 말이 통할 리는 만무했다. 기차 시간이 촉박 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급한 마음에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모두 꺼내 그의 가슴께에 내밀었다. 그 순간의 나는 빵이 먹고 싶지만 셈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정확한 손놀림으로 내 손바닥 위의 돈을 모두 집어갔다. 그러고는 내 눈을 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 표현했다. 그가 그때 얼마를 집어갔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눈빚은 갓 구워낸 빵만큼이나 따뜻했다고 나는 그때도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기에 내 손바닥에 놓여 있던 돈이 빵 값과 우연히 일치했을 것이란 걸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믿는다. 어쩌면 조금쯤 모자라는 빵 값을 그가 말없이 깎아준 것일 거란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집의 갓 구워낸 빵 맛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를 믿음으로써 그도 나를 속이지 않았다는 그 믿음의 빵 맛. 그를 완벽히 믿음으로써 시간을 아껴 기차를 놓치지 않았다는 기쁨의 빵 맛. 지구의  낯선 땅에서 낯선 이를 완벽하게 믿었다는 생각만으로도 우쭐하고 뿌듯했던 기차 안에서의 빵 맛. 그러니 그 작은 마을의 작은 빵집 안의 그 자그만 제빵사도 내겐 크나큰 선생이었다.

선생이라는 말, 가장 흔하게 쓰이는 이 말이 온통 거짓 같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함부로 쓰지 못할 큰 호칭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선생이란 말에 황금빛 더께를 씌우는 바람에 갖게 된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었다. 
고개 빳빳이 쳐들고 가던 나를 넘어뜨린 나무뿌리도 선생, 앞 뒤 분간 못하고 혼자 가려던 내 다리를 붙잡은 갯벌도 선생, 허풍을 부풀리고 있던 내 이마 이에 똥싸고 날아간 새도 선생, 앙다문 내 가슴에 못을 박은 옛 애인도 내겐 선생이었으니까.
겨울을 나기 위에 제 초록을 스스로 떨쳐내는 저 숲도, 먹장구름 쏟아내야만 가장 맑은 얼굴을 보여주는 저 하늘도, 이 늦은밤에 귀가하는 당신들의 발소리도 내겐 모두 선생이시다.

정영 <때로는 나에게 ❜ 쉼표> 'Racconto 08 : 내게는 모두가 선생(part.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