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 쑤퉁,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그러나 첫 만남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 중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장이모우가 감독하고 공리가 출연한 영화 <홍등>이 쑤퉁의 작품<처첩성군>을 극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랬구나, 뭔가 그 때 그 영화를 보면서 느껴졌던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영화에서 여인들의 삶은 처절하고 치열했다. 살아 남고자 하는 욕망이 강렬한 붉은 빛의 등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여인들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영화는 그저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난 생각했다. 저렇게 사는 건 너무 불행하다고, 불쌍하다고 말이다.

<홍분>은 쑤퉁의 작품 중 여성의 이야기 세 편을 담고 있다. 산다는 것이 고행처럼 느껴지는 삶이었다. 그들에게 행복은 어디쯤 있는 건지 보이질 않았다. 문득 내가 왜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나 사실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따라 묵묵히 살아 가고 있고 나는 그들의 모습을 잠시 훔쳐 본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 사는 모습을 보며, “쯧쯧, 정말 안됐군.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지?”라고 한다면 어떨까?  “당신이 뭔데 내 삶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라고 화를 낼 것이다.

다행히 영화 속 여인들도, 책 속의 여인들도 나에게 화내지 않는다.

나의 세속적인 잣대들을 생각하며 혼자 부끄러웠다. 누구의 삶을 가지고 불행하다고 판단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왜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모두 작가 쑤퉁 때문이다. 그는 그저 담담하게 다양한 여인들의 삶을 들려준다. 마치 이웃집 누군가의 삶을 잠시 훔쳐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그녀들은 평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극적이지도 않은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그래서 무심결에 그녀들의 삶을 가지고 왈가왈부했다. 그러다가 내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시련은 삶에 있어서 필연적이다. 시련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가?

작가 쑤퉁은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다.

누구도 삶을 자기 뜻대로 선택하지 않았다. 이미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나약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 편의 이야기를 보면서 연약하고 힘없는 그녀들이 오히려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련을 더 많이 겪는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보여주지 않은 그녀들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쑤퉁이 들려준 이야기는 바람결에 울리는 종처럼 고요함 속에 울림이 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느껴지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만나는 수퉁의 3번째 작품, 홍분!  지금까지의 어떤 책보다 고운 느낌의 표지는 작가가 분명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하려는것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이 책은 3가지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의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시대의 힘에 거세게 휘말려버린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삶을 굳건한 의지로 헤쳐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삶을 놓아버리지도 못했던 가엾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사실 난 지극히 전형적인 21세기 여자인지라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이 여자들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 영화사 사장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인생과 꿈을 포기하기하게 되는 씨엔이나 젊었을때는 남자를 두려워하고 늙어서는 남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까 힘들어하는 샤오펀은 도저히 이해도 공감도 가지 못하는 캐릭터들이다. 사실 이 캐릭터들은 그시대의 여자들이라기 보다는 요즘에도 볼수 있는 흔한 캐릭터들이긴 하다. 내가 유난히 자발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며 살아가는 인간상이다보니 이 캐릭터들을 그저 소설속의 캐릭터로만 보지 못하고 같은 여자로써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로 치부하게 된 것뿐이다. 수퉁의 "홍분"에서는 이처럼 마음의 공감대를 가질수 있는 캐릭터들을 만날수 없었다. 먼저 읽었던 다른 두 소설보다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지는 캐릭터와 인생살이가 등장하는데도 말이다. 차라리 기생에서 후 비구니로, 다시 곱사등이의 아내로 살아가게 되는 치우이나 연약하고 사치스러웠으며 남편을 죽음에 몰아넣었으나 삶에 다시 조우하게 되는 샤오어가 그나마 이해가능한 인물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삶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그 삶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나가는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수퉁의 다른 소설을 읽을때도 그리 영상화시키면 그럴듯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니 역시나 이번책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부녀 생활'은 장쯔이 주연의 '재스민 꽃이 피다'란 영화로 제작되었고 역시나 '홍분'도 리샤오홍 감독에 의해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작가가 작품을 집필하면서부터 영상화시킬것을 예상하고 작품을 집필하는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수퉁의 작품은 유난히 영화화 된것이 많고 또 아닌 작품들도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작가인 김탁환이 작품을 집필할때 영상화시킬것을 의도하며 집필을 한다하던데 수퉁의 자연스러움과 비교해서 영상화를 고려한 작품이라는 면에서 비교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수퉁의 이야기는 그만큼 자연스럽고 어쩐지 처절하기도 하다. 그것은 수퉁이 그리고 있는 시대가 중국의 혼란기여서 일지도 모르고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극을 이야기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인간이 역사안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가엾은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기에 그럴지 모르겠다. 수퉁은 쓸쓸하고 애잔한 인간사의 비극을 조명하는데 있서서는 확실히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가을에는 어울리는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조금쯤은 내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책이 좋다. 이렇게 울적한 이야기보다는 말이다.

 

중국 작가 쑤퉁,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그러나 첫 만남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 중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장이모우가 감독하고 공리가 출연한 영화 <홍등>이 쑤퉁의 작품<처첩성군>을 극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랬구나, 뭔가 그 때 그 영화를 보면서 느껴졌던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영화에서 여인들의 삶은 처절하고 치열했다. 살아 남고자 하는 욕망이 강렬한 붉은 빛의 등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여인들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영화는 그저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난 생각했다. 저렇게 사는 건 너무 불행하다고, 불쌍하다고 말이다.

<홍분>은 쑤퉁의 작품 중 여성의 이야기 세 편을 담고 있다. 산다는 것이 고행처럼 느껴지는 삶이었다. 그들에게 행복은 어디쯤 있는 건지 보이질 않았다. 문득 내가 왜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나 사실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따라 묵묵히 살아 가고 있고 나는 그들의 모습을 잠시 훔쳐 본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 사는 모습을 보며, “쯧쯧, 정말 안됐군.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지?”라고 한다면 어떨까?  “당신이 뭔데 내 삶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라고 화를 낼 것이다.

다행히 영화 속 여인들도, 책 속의 여인들도 나에게 화내지 않는다.

나의 세속적인 잣대들을 생각하며 혼자 부끄러웠다. 누구의 삶을 가지고 불행하다고 판단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왜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모두 작가 쑤퉁 때문이다. 그는 그저 담담하게 다양한 여인들의 삶을 들려준다. 마치 이웃집 누군가의 삶을 잠시 훔쳐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그녀들은 평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극적이지도 않은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그래서 무심결에 그녀들의 삶을 가지고 왈가왈부했다. 그러다가 내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시련은 삶에 있어서 필연적이다. 시련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가?

작가 쑤퉁은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다.

누구도 삶을 자기 뜻대로 선택하지 않았다. 이미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나약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 편의 이야기를 보면서 연약하고 힘없는 그녀들이 오히려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련을 더 많이 겪는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보여주지 않은 그녀들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쑤퉁이 들려준 이야기는 바람결에 울리는 종처럼 고요함 속에 울림이 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느껴지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