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우유부단하고 신경질적이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를 햄릿형 인간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도 유명한 햄릿. 각종 연극과 영화로도 여러 번 리메이크 되었던 그 작품. 그런데 그 햄릿에 대해서 가와이 쇼이치로가 분석해서 책을 한 권 냈다. 햄릿의 수수께끼를 자신이 풀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과연 햄릿이 왜 그토록 복수를 하지 못하고 자꾸 뒤로 미루었었는지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문화는 그 시대의 거울이라고 했다. 따라서 햄릿에 대해 제대로 분석을 하려면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집필한 당시의 사회상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낭만주의 시대에는 햄릿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는라 고뇌하는라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섬세한 성격의 지식인의 내면적 갈등에 높은 점수를 줬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자신의 내면적 갈등으로 지성만 잔뜩 부풀어져 혼자 고민만 하는 우유부단한 햄릿이 탄생했다. 20세기에 들어서 낭만주의의 햄릿 찬가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불안과 의심이 만연해진 시대상의 영향으로 말만 앞세우는 인생 낙오자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햄릿이 탄생하게 된 시대에는 무엇이 유행하고 있었을까? 그때의 화풍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기묘한 관점, 즉 투시도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고, 대상이 평면거울에서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고 볼록거울로 보면 일그러져 보이는, 즉 보는 사람이 가진 마음에 따라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햄릿에 눈에 보이는, 심지어 관객의 눈에도 보이는 아버지의 유령이 왕비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천사와 악마가 함께 그려져 있는 그림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천사만 보이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악마만 보이지 않았던가? 햄릿은 아버지 유령의 명에 따라 숙부에게 복수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유령은 악마라는 생각이 팽배했었다. 자신의 아버지 유령의 명령에 따르면 악마의 명령에 따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햄릿은 이성적으로 완벽히 행동해야 하지만 정의의 칼을 휘두르기에 자신은 나약하고 힘없는 인간이기에 햄릿은 고뇌에 고뇌를 계속하게 된다. 그는 신중해야 한다.
어떤 이는 햄릿이 자꾸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를 한번에 복수를 행하면 극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라고 치부했었다. 그러나 이는 햄릿을 복수극으로 보았기 때문이란다. 햄릿은 복수극이 아니란다. 가와이 쇼이로치는 도대체 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왕위를 빼앗기고,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어머니는 숙부에게 시집을 가 버렸는데 어째서 햄릿은 행동하지 못하는가? 그 모든 것이 햄릿이 한가지 특정 사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눈으로 아버지의 판타즘을 보고, 르네상스 시대의 독특한 모순된 인간관에 괴로워하면서도 르네상스적 남성의 이상형을 추구하는 햄릿이 어떤 신화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자신을 엄하게 다스려서 보다 높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헤라클레스가 되고자 했던 햄릿의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햄릿’의 주된 이야기거리였던 것이다.
햄릿에 대한 완전한 새로운 평가이다. 그 누구도 이렇게 햄릿이라는 작품을 분석한 적은 없었다. 책표지의 멋스러움과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라는 제목이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지만, 가와이 쇼이로치가 여러 다른 사람의 의견과 고증을 곁들이다보니 쉽지만은 않은 책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나도 모르게 읽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햄릿이 복수를 안하는지 뭐라고 저자가 설명할 지 궁굼해서 자꾸 읽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