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서랍장을 정리하면서 대학교때 쓰던 필통 두개를 발견했다. 필통만 발견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때부터 가지고 있던 책갈피도 무더기로 발견했다. 족히 10여년 전의 물건들이라 감회가 새로웠음은 당연지사. 내가 그 책갈피와 필통을 가방에 넣고다니며 열심히 수험공부하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데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믿지만, 그때는 취직도 못 했던 시절이라 앞날이 안개로 둘러싸여 막막하기만 해서 더 젊었던 시절이어도 다시 그때로는 돌아가기 싫지만, 그래도 나의 젊은 시절로 어느새 나의 감성을 되돌아가 옛추억에 잠기게 한다. 또 필통속에는 내가 그때당시 쓰던 형광펜과 각종 볼펜류, 또 공부할때 암기하려고 메모해뒀던 메모지까지 함께 있었는데 작은 필통과 메모지는 나의 옛시절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어(사물이 말을 걸어온다는 경험?) 지나간 나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았었다.

 

 제목에서부터 최첨단 아이폰을 다루며 속도감있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는 책임을 알 수 있다. 손때 묻은 물건을 앞에 두고 작가는 지적 유희를 느끼는데 내게는 그것이 유산계층의 놀이로 보이니 이것참 없는 사람의 부러움과 시기가 아니련가? 책에는 독일 유학시절 벼룩시장에서 산 닭장용 온습도계, 다과세트, 50년은 족히 된 액자, 손수 만든 열쇠고리, 몽당, 연필 한세트, 우아한 불빛을 발하는 청아한 램프와 멋진 자태의 촛대, 워드프로세서에 밀려 자취를 감춘 타자기, 그리고 우리나라를 소개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까지 정말 많은 그의 컬렉션이 소개되어 있다. 개인적인 스토리와 함께 콜렉션 하나하나에 그의 감성과 해석력이 덧붙여져 풀어내지는 책은 나도 이제부터라도 새것만 사려는 습성을 버리고 조금은 삶의 흔적을 담아내는 물건과 함께 하는 살아보자라는 의지를 갖게 한다.

 

 외로운 유학 생활은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그래서 더 부추기는 경향이 없지않겠지만 그래서 저자는 삶의 현장인 벼룩시장을 자주 찾게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 벼룩시장에서 삶의 이야기가 묻어있는 여러 소품들과 생활도구들을 만나며 삶의 온기를 느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서 벼룩시장에서조차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함부러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굶어가면서도 오래된 물건에 강한 끌림을 멈출 수 없던 그는 이렇게 한권의 책을 탄생시켜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환상을 꿈꾸게 한다. 오래된 물건은 거무튀튀하고 거칠지만 씹을수록 맛을 음미하게 되는 호밀빵을 굽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는 데 필자의 그 말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제목에 따라오는 수식어가 참 많기도 하다. 그냥 런던 스케치도 아니고 간호사가 그린 런던스케치인데 그 간호사가 일반병동의 간호사가 아니라 그것도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란다. 요즘은 해외여행 한번 갔다오고나서 간단한 말귀와 사진 몇장으로 구성된 여행에세이들이 붐을 이루고 있는 마당에 책 제목 한권이 나의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약간 칙릿소설 냄새도 좀 풍기는 것 같기도 하고 현재의 일상생활에서 탈피하기 위한 여행으로 런던에 갔다온 냄새도 나기는 하는데 간호사의 스케치까지 곁들어있다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책이기에 또한번 속는셈치고 여행에세이를 읽게되었다.

 

 처음에는 수많은 런던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나를 반긴다. 정말 런던은 사진기를 그냥 아무데나 디밀어도 모두다 그림이 되는 그런 도시같다. 풍부한 녹색의 자연공원과 하나하나 멋진 건물들과 나무 한그루, 조각이 멋지게 들어간 가로등까지 모든 사진이 너무 예뻐서 글귀보다 사진을 먼저 떠둘러보게 된다. 수많은 사진들을 마구 집어놓은 여행에세이기 아니라 사진 한장을 찍더라도 포인트를 주어 작가의 심미적 취향을 담아낸 여행에세이임을 책 몇장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다 사진에는 간호사의 시각으로 바라본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섬세한 스케치가 곁들어 있어서 한층 더 런던의 모습이 정답게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옥스포드 대학 시티와 제인 오스틴의 생가의 풍경은 정말 너무너무 가보고 싶게하는 구도였다. 사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보기에 아름다우면 되는 것 아닌가?

 

 처음에 제목에서 비춰지듯 저자는 간호사이다. 평범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일매일 들어주어야 하는 직업. 상호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타인간의 관계에서 상호 교감을 만들어내야 인간은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데, 하루도 아니고 몇 년을 일방적으로 들어줘야만 했으니 심적으로 많이 지쳐갔을 것에 동감한다. 그래서 책 전반적으로 사진은 참 밝고 화창한데 책분위기는 약간 멜랑꼴리하다고 느껴진다. 나만 그런가? 과히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고 삶의 뒷면을 한번씩 뒤돌아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평상의 삶의 단편의 소중함등을 저자는 매우 고마워하는 것 같아.) 그저 여행지의 정보와 자신의 느낀점, 흥분감을 마구 토해내는 여행에세이들과는 차별화를 이룬다.

 

 수많은 여행에세이 책들에 실망도 많이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행에세이들이 좋다. 내가 못 떠나 본 그 곳을 그들의 눈으로 나도 느껴볼 수 있기에 그러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런던의 박물관, 공원, 쇼핑센터 등을 내 마음대로 상상해보며 언젠가는 나도 그 장소에 서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꿈꿀 수 있기에 나는 아직도 여행에세이가 좋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소설분위기였다. 목차와 소개를 읽어보니깐 근데 그게 아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는 장난감, 의류, 가방, 손싸개 등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사주는 것보다 만들어주는 것을 더 좋아라하지만 막상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 소재는 뭘 사용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한 나에게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집으로 배달되어 온 책 겉표지를 보니 참 앙증맞기도 하다. 내가 책을 손에 드는 순간 어디선가 바람같이 나타난 딸내미가 같이 보자고 조른다. 겨우 3살짜리지만 귀여운 책표지와 그 안의 인형과 장난감 그림등을 보는 순간 아이도 완전히 빠져든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책의 그림을 가리키면서 달팽이, 사과, 나비 등 자기가 아는 것을 읊조리고 모르는 것은 나에게 물어본다. 빨리 책을 통독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함께 보자고 하는 통에 천천히 그림 하나하나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만드는 방법과 사용해야 할 천의 종류, 아기 어그부츠 한 켤레 만드는 도안 등을 살펴본다. 세상에 내 손으로 아기 어그부츠도 만들어줄 수 있다.

 집에 미싱이 없는 사람도 침착한 성격과 인내력만 있다면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아기를 위한 여러 가지 용품을 만들 수 있다. 어그 부츠 뿐만이 아니라 아기 턱받이, 담요, 기저귀 가방, 수유쿠션 등을 저자가 소개해 주는 방법으로 손쉽게 따라할 수 있다. 또 아이의 옷과 소지품 등에 아이의 이니셜을 예쁘게 수놓아 줄 수도 있다. 책으로만 읽으면 금방 다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은게 우리네 심정이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기자면 어려운게 손바느질이다. 그게 차별화된 정성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어려운 손바느질. 내 아이를 위해서 엄마의 정성과 마음을 담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을 해줄 수 있도록 이 책은 그 방법을 잘 안내하고 있다.

 죄송스럽게도 본인은 워킹맘이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육아에 치이다보니(네.. 변명입니다. 알고는 있습니다.) 책은 일주일 안에 딸내미와 다 읽었는데 아직까지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작년 12월 아이를 위해 무릎담요를 활용하여 수면잠옷을 만들어주었다. 집안의 쓸모없는 물품을 활용하여 내 노동력으로 아이의 필요한 의류를 손수 만들어준다는 기쁨이 무엇인지는 알기에 충분히 동감하는 책이었다.

책에서 안내하는 작품을 한번 꼭 만들고 다시 글을 수정하여 올리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