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좋은 날, 낮고 짙게 깔린 구름과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잿빛 하늘 그리고 습기 가득 담은 바람. 그런 날이었다. 삼청동 아니 정확하게 청와대 가는 길 오른쪽 동네 팔판동에 위치한 카페 <팔판동까뻬>로 가던 길, 걷기엔 조금 후텁지근했지만 일찍 나섰으면 걸어와도 좋았을 그 길을 택시타고 들어와 카페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나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늘 종일 희한하게도 그런 소나기를 피하고 다녔다. 우산을 들고 갔으나 장식품이 되고 말았던 날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눈여겨보았던 <팔판동까뻬>의 입구엔 오늘의 주인공 변종모 작가의『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의 출간 기념 광고판이 서 있었다. ‘출간즉시 베스트셀러’^^ 사진 한 장 찍고 들어서자 반가운 님들이 반겨주었다. 까페가 어찌나 깜찍하고 예쁜지 들어서면서부터 감탄사의 연발. 작가님을 소개해주겠다는데도 여기 저기 사진 찍느라 딴전이었다. 테이블로 가니 변종모 작가는 탁 트인 주방에서 그날 오는 독자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고 있었고 그 와중에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에 나오는 작가 사진과는 조금 달라 보였지만 훨씬 잘 생긴 얼굴이었다.(^^) 주먹밥을 만들면서 정신없어 하는 그를 두고 자리에 앉아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새로 구입한 믿음직한 캐논G10, 간만에 실력 발휘했다.(아, 나중에 작가 블로그에서 <팔판동까뻬>의 매장 사진 찍은 것을 보고 말았다. 많이 배워야겠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내밀지도 못하겠다. 으~~)
변종모 작가는 출판사에서 작가가 ‘직접’ 만드는 브런치라고 해서 자신이 진짜로! 만들어야 하는 줄 알고 열심히 준비했단다. 아침부터 준비하는 고생이 안쓰러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출판사 측에서 알려주자 그제야 조금 억울해했지만, 덕분에 그의 손맛이 담긴 주먹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레스토랑도 아니고 식전부터 들이닥주일밖에 되지 않았던 그곳에서 오늘처럼 단체(!) 손님하니 짓궂은 생각이지만 작?가 해주는 요리(!)를 언제 먹을 수 있겠냐 싶었다.
한 명 두 명 오늘 모임의 참석자들이 모여 들었다. 하나 같이 어여쁜 처자들! 일부러 그렇게 골라도 힘들었을 것 같았지만 좀은 감성적인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를 읽고 공감했다면 남자 독자보다는 여자 독자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12시가 조금 넘어 변종모 작가가 정성스레 만든 브런치가 나왔다. 주먹밥을 만들어 본 경험에 의하면 우선 밥을 꼬들꼬들하게 지어야 하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내야 하므로 여간 손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걸 알기에 그의 정성이 듬뿍 담긴 주먹밥이 더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김가루와 깨, 오이를 두른 주먹밥이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그리고 피클. 피클 좋아하는 나는 피클이 나오자마자 맛을 봤는데 향신료의 독특한 맛과 함께 입에 딱 맞는 상큼한 피클이었다. 변종모 작가는 피클을 좋아해 매번 직접 피클을 만든다고 했다. 오!!
알고 보니 변 작가, 손재주가 장난 아니다. 요리뿐만 아니라 주방 앞 그의 책들 사이에 놓인 매우 독특하게 생긴 헝겊 인형은 어젯밤 그가 손수 만들었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바.느.질.하.는.남.자.라닛!!! 꼼꼼한 바느질 솜씨가 제법 손재주가 있다고 장담하는 나도 그렇게 만들긴 힘들었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이런 것 선물해주는 남자 있으면 좋겠다!)
잠시 후 앞치마를 두른 채 변종모 작가가 독자들 앞에 와 앉았다. 앉자마자 청산유수로 말을 하는 그, 아주 재미있는 분이라는 댓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했다. 프로필 사진과 실제의 모습이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나보다. 사실은 나도 조금 놀랐다. <팔판동까뻬>의 위치를 검색하다가 지금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사진을 보고 ‘헉!’ 놀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위의 사진을 보다시피 아주 잘 생기셨다.(^^;)
이미 2006년에 『짝사랑도 병이다』라는 인도 다녀온 책을 낸 적이 있는 변 작가는 처음에 책을 내자는 제의를 받고도 망설였단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글을 써왔던 사람도 아니어서 막막했는데 여행할 때마다 써온 일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그의 블로그에 가면 메모 같은 그의 일기를 볼 수 있다. 글씨가 얼마나 예쁜지!)
카페 한쪽 면에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걸어두었다. 책에 나온 사진들도 있고 처음본 사진들도 있다. 책에도 그렇지만 액자 속에 유난히??하는 인물 사진들은 모두 그와 관련이 있는 사진이란다. 외로움이 많은 그, 그 사진들을 보면 그때가 떠오르며 마음이 따듯해진단다. 여행만 가면 게을러지는 성격 탓에 돌아다니지도 않는다며 책에 나온 훈자 마을에서도 그는 살구가 다 떨어질 때까지 있겠다고 삼청동보다 작은 마을에서 두 달을 보냈단다. 그 느슨한 시간동안 동네 아이를 사귀고 구구단을 가르쳐주며 놀았다. 그러곤 헤어질 때 이 남자, 가슴이 먹먹해져 눈물까지 흘렸단다. 그러곤 책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눈물이 많아졌다.”
제목에 ‘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탓에 친구들은 그의 책을 두고 ‘의학서적’이라고 놀린단다. 그러고 보니 그의 첫 책 제목에도 ‘병’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궁금했다. 변종모라는 이름으로 펴낸 두 권의 책에 왜 하필이면 ‘병’이란 단어를 넣었을까? 사랑은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상처를 주고 간다. 여행도 그렇다. 한 번 다녀오고 나면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게 여행이다. 사랑도 여행도 어쩌면 치유를 위해 하는 것인데 본인의 의지 없이는 치유되는 일이란 세상에 없듯이 결국 사랑도, 여행도 병일 수밖에 없는 것.(사실, 그가 이렇게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이 아니라 하다 보니 길어졌고 대충 이런 식으로 혼자 이해하고 말았다.)
그는 이제 겨우 두 권의 책을 낸 사람인데다 이런 자리가 매우 어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할 이야기는 모두 하는 것 같았지만(^^) 앞으로 열 권정도의 책을 내면 작가답게 멋진 자리를 다시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날 한 테이블에 모두 앉질 못했다. 앉을 수도 있었지만 다들 편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곤 작가가 돌아가며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우 독특하고 조금은 번잡스럽기도 했으나 중간 중간 쉴 틈(!)이 있어서 동반한 친구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고 그 자리를 즐길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벤트의 형식으로 간 자리였지만 주말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듯한 느낌. <팔판동까뻬>의 분위기와 내리는 게 아니라 쏟아지는 비와 유리문 사이로 보이는 나무들과 조용하게 나오는 음악들과(Donde voy라니! 이 얼마만에 들었던 노래인지;;)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다리던 사인의 시간, 왜 기다렸냐고? 그의 블로그에 갔었다. 여행을 다니며 일기를 쓴다던 그의 글씨가 예술이었다. 그 글씨로 사인을 받으면 정말 멋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예쁜 글씨체로 사인을 해 준 작가를 뽑으라면 그 첫 번째가 당연(!) 이병률 시인의 사인이었다.(^^) 그리고 김중혁 작가의 사인과 김연수 작가의 예쁜 글씨, 이제 변종모 작가의 사인도 그 멋진 사인들 중에 포함시켜야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그림도 잘 그린다는 그에게 그림도 하나 그려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글씨 자체가 그림 같았기 때문에 엉뚱한 요구는 하지 않았다. 서울 온지 이십 년이 다가오는데도(헉!) 고쳐지지 않는 발음 때문에 ‘롤러코스트’로 해달라고 말을 하자 ‘롤러코스터’죠? 하고 되묻는다. 이런-.-;;; 작가는 독자마다 다른 멘트로 사인을 해주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자기에게 해준 멘트를 보며 그랬다. “아무래도 애프터신청 같아!“-.-;;
행사가 끝나고 마당에 나왔다. 아주 예쁜 마당이 있었는데 소나기 같은 비가 내린 후 촉촉이 젖은 장독과 잔디와 작은 나무들과 작은 오두막. 너무 예뻤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나오며 밖에 나와 있던 변종모 작가에게 인사를 하자 대문(!)까지 배웅을 나와 준다. 다음에 또 오라고 그땐 많은 얘길 나누자며 인사를 한다. 그 말이 꼭 진심 같아 어쩐지 꼭 다시 한 번 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특히 비 쏟아지는 날에 말이다.
<팔판동까뻬>를 나온 후 같이 간 친구들과 삼청동을 걸어 다녔다. 쏟아지던 비는 그쳐 있었고, 예전에 삼청동에서 2년을 살았건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한옥마을을 구경했다. 어디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서울 한 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멋지다.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관광을 온 관광객처럼 새롭기만 한 골목길을 누비며 다니다가 <루소 앤 루소>라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근데 우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주인인 듯한 분이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를 들고 있었다. 우린 그 분이 왜 그 책을 들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으나 책 좋아하는 사람들답게 그냥 추리를 해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
친구의 차를 타니 또 비가 내린다. 라틴아메리카 화가들의 그림을 무료로 전시한다고 하여 가는 길에 전시회를 보러 갔다. 보고난 후 버스를 타야 하는 합정에 올 때까지 내리던 비가 합정에 도착하니 뚝 그치더니 버스를 타자마자 또 쏟아 부었다. 그리고 집 앞 정류장에 오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뚝 그쳐버렸다. 오늘 종일 그랬다. 비가 나를 피해 다녔는지 내가 비를 피해 다녔는지, 후텁지근하고 습기 많은 날이었고 날아갈 듯 바람 분 날이었지만 그래서 즐겁고 행복하고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
<팔판동까뻬> 정보!!
궁금한 것들은 이곳으로=>> 팔판동까뻬
변종모 작가의 블로그인데 카테고리에 <팔판동까뻬>가 있다. 그곳에 가는 길과 자세한 정보들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