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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쯤이었나.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 간 적 있다.

그날 초대된 문인이 안도현 시인이었는데 이름만 줄창 들어왔던 그를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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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리 호방하고 화통한 성격의 그를 보며,

나는 문득 그가 좋아졌다.

그리고 북콘서트에서 줄곧 얘기되었던 <그런 일>을 읽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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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은 안도현이 그동안 썼던 산문들을 엮어 낸 산문집이다.

그러나 산문만 줄창 들어있는 것은 아니고,

중간 중간에 시도 있고, 시작 노트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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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속에는 북콘서트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몇 개 들어있었다.

특히 그가 이번 정권에서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 씌어진 대목에서는 결연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소송을 당했다는 얘기도, 재판을 받았다는 얘기도 전혀 몰랐었기에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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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부터 가슴을 울리는 책은 매우 드물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데, 그의 필력에 나는 다시금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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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문 부분의 소설가 백가흠이 쓴 글을 읽으며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해직 교사가 된 안도현과 그의 제자였던 백가흠.

두 사람의 우정과 의리가 내게도 전혀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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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이 다시 시를 쓰고, 그 시가 모여 다시 시집이 출간된다면

나는 주저없이 시집을 구매하려 한다.

그 시가 닳고 닳아 마침내 농익을 때까지

두고 두고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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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미술에 깊은 조예가 없다하더라도 모나리자라는 작품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미(美)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나리자와 또 그 이름을 딴 바이러스는 어떤 관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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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참가자들이 탑승한 버스에 괴한이 들이닥쳐 참가자 전원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는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들이 폭파되고 미인이 있는 영상 사진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일그러지는 바이러스가 퍼진다.

그리고 전 세계의 벌들이 원인도 모른 채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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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헬렌은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것은 파트리크 바이시라는 사람에게 온 전화로,

그의 아버지 파벨 바이시와 헬렌의 딸 매들린이 연인 관계였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 두 사람이 함께 실종된 상태이며,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바르샤바로 올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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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참가자들의 실종 사건에 대해 추적하고 있던 FBI 요원 밀너는

벌들이 멸종하면 인간도 죽는다는 말을 되새기며 실종 사건과 벌들의 떼죽음이 서로 연관이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수사를 하던 도중 컴퓨터 바이러스와 파벨 바이시, 그리고 헬렌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된 그는

그녀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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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벌과 인류에 관한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고,

원본 모나리자에 동물성 접착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섬뜩함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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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설은 아름다움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 역시도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성형 관광이 생겨날만큼 세상이 많이 변한 것도 이러한 세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영화 <미녀는 괴로워>나 웹툰 <삼봉 이발소>가 떠올랐다.

비록 소재는 모두 달랐지만 모두 아름다움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면 미를 추종하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나 자신부터라도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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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집에는 그만의 장단점이 있다.

사건이 좀 진행된다 싶을 때 - 말하자면, 이제 좀 재미있어진다 싶을 때 -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게 단점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쉽고 간편하게 읽을 수 있고,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장편 소설과는 달리 책에 수록되어 있는 목록을 굳이 따라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장부터 읽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런 단편 소설집의 장점을 살려 여섯 가지의 단편 소설들 중 표제를 딴 '중국식 룰렛'부터 읽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중국식 룰렛'이 가장 먼저 나와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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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식 룰렛

​러시안 룰렛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중국식 룰렛이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동명의 영화가 나오고, "거짓된 진실게임"이라는 부가적인 설명이 따른다.

그 뜻을 알고 소설을 찬찬히 되돌아보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K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술집을 운영한다.

위스키의 이름을 가린 채 종류별로 잔에 따라 세 잔 중에 한 잔을 골라서 마시는 것이 이 집만의 원칙이다.

그렇기에 같은 돈을 내고도 어떤 사람은 값 싼 위스키를, 또 어떤 사람은 값 비싼 고급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K의 부름을 받고 그의 술집으로 갔다.

그 술집에서 '나'는 아르마니 양복을 입은 사람, 검은 테 안경을 쓴 남자, 그리고 K와 동석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에 이어 진실게임을 하며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을 질문한다.

그러나 그들이 답변의 진실성에 대해 1~9점 중 5점밖에 주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진실성은 불투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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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장미의 왕자

여섯 개의 단편 중 가장 난해한 소설이었다.

여자 손님이 놓고 간 수첩이 주인공 손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파악이 어려웠고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야말로 난해한 작품이었다.

* 3. 대용품 

학생들의 이야기로 시작되어서 그런지 가장 마음이 아픈 소설이었다.

키 큰 친구와 키가 작은 친구는 아이큐가 140이 넘는 소위 영재라고 불리는 소년들이었다.

영재 테스트를 받으러 가던 중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로 인해 ​키가 작은 친구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어느 결혼식에서 키 큰 친구는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에게 실은 호적신고를 늦게 해서 그들보다 한 살이 많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고,

그렇기에 아이큐가 140이라는 것은 거짓이라고 이야기 한다.

키가 작은 친구가 진짜였고, 자신은 그 친구의 대용품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을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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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불연속선

사진 작가인 남자와 자살을 시도한 여자의 가방이 공항에서 서로 뒤바뀌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다.

일주일씩이나 연락이 되지 않는 가방 주인(여자)을 기다리는 일은 답답함 그 자체일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호기심도, 답답함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가방을 열어볼 생각도 나중에서야 한 걸 보면.

새벽 한 시에 알람을 맞춰 둔 여자의 사연과 습식 사진을 촬영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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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별의 동굴

자취를 하면서 9년 째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그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생일이 ​같다는 것과 생일을 혼자 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산책 방향이 늘 반대 방향이라는 차이점도 갖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차 부정맥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느낀 그는 서둘러 수술 일정을 잡고 이사를 가게 된다.

두 사람의 인연이 여기에서 끊어질지, 아니면 계속 이어질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물론, 수술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 6. 정화된 밤

요셉과 젬마 사이에는 다니엘이라는 아이가 한 명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가톨릭 신자들이다.

젬마는 성가대 연습실에서 지휘자 가브리엘에게 한 눈에 반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는 요셉과 함께 보내게 된다.

그날을 기점으로 젬마에게는 아이가 생겼고 두 사람은 다음 해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던 어느 날, 가브리엘이 보낸 음악회 초청장을 받게 되고, 초청장에 적힌 문구가 요셉과 젬마의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고 다니엘과 공연을 보러 간 그의 여자친구인 엄지 역시 공연 내용이 요셉과 젬마의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 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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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얇은 책이었고, 각 단편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빨리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어내려갈 수 없었던 것은 다소 난해한 이야기 구성때문이 아니었을까.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 - 가령 누군가의 수첩을 줍는다든가, 공항에서 가방이 바뀌는 것 등 - 를

어렵고 복잡하게 풀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이 소설집은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두 번, 세 번 읽어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집을 접하는 사람들은 꼭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