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나비를 기르셨다고 해요.

크기를 알 수 있도록 자와 함께 찍습니다.

 

지금 작업 중이신 애벌레 그림책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우리는 늘 성충만 보고 잠자리다, 나비다, 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그 애벌레들은 자기 이름이 없어요. 
모두 그냥 통칭해서 모두가 싫어하는 벌레들이라고 하지요.(웃음) 풀숲에서 사향제비나비 애벌레를 보게 되면 
누구나 주춤하게 됩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색이 화려하고 징그럽게 보여요. 하지만 애벌레는 살아남기 위해 
징그럽게 보이려고 애쓰는 거지요. 바로 애벌레한테 속은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징그러운 애벌레가 아니라 누구나 
좋아하는 나비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실 곤충들의 일생을 보면 대부분이 애벌레로 사는 기간이 더 길어요. 
성충으로의 삶은 짝짓기와 알을 낳는 종족 번식의 수단일 뿐이죠. 나무나 풀숲에서 마주치는 애벌레가 나비라는 
것을 알게 되면 걸어가는 길이 훨씬 즐겁지 않겠어요?

홍점알락나비 에벌레의 실제 모습입니다.

세밀화로 다시 태어난 홍점알락나비

10년 후에 작가님은 뭘 하고 계실까요?

‘내가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무엇일까?’란 생각을 고등학교 때부터 늘 화두처럼 달고 다녔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하면 “아니 지금 몇 살인데 그런 얘기를 해요.”라고 하지만…….(웃음) 늘 마음속에는 
내가 과연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사실 따져보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10년 후 그때도 이렇게 
곤충 세밀화 작업하면서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가님에게 있어서 그림책은 뭘까요?

그런 질문 하지 말아요.(웃음)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어요. ‘내가 어린 시절 마음으로 돌아가서 궁금한 것 관찰하고 애벌레도 길러보고 그림일기 
그리듯이 관찰 기록하는 것’이 내 그림책 이예요. 내가 좋으면 아이들도 좋아할 거라 믿어요.

 

좋은 그림책이란 어떤 그림책일까요?

그런 생각도 안 해 봤는데…….(웃음) 내가 곤충을 아무리 잘 그려도 실제로 살아서 움직이는 곤충보다는 
감동이 덜합니다. 나는 내 그림책이 곤충을 대신해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을 곤충이 있는 들판으로 데려가는
책이 되길 원합니다. 주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지식이나 정보들 속에 묻혀있는 책이 아니라 작은 풀꽃 하나, 벌레 
한 마리에서도 귀엽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애벌레 세밀화를 살짝 엿볼 수 있었어요.

세밀화 작업에 열중하고 계신 모습이예요.

01   02   01 신작 그림책 《강아지》 02 작가가 그린 자화상 03 장호 그림 작가

03   해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 책 박람회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장호 작가의 신작 그림책 《강아지》출간에 맞춰, 장호 작가를 작업실에서 만났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밝게 웃는 작가의 모습에서 노마를, 또 기동이를 만날 수 있는 2시간이었다.

Q.	우선,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선정 소식을 듣고 느낌은 어떠셨나요?
	"처음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연락받았습니다. '선정됐다.'는 말씀에 의외로 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더니, 이상했나 봐요. 그 후에 책 편집을 담당했던 박은호님과 아트디렉터 고선아님께 전화를 했더니 무척 좋아했습니다. 해당 출판사 담당자에게도 전화했더니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때서야 조금씩 실감이 나더군요."
Q.	선정될 걸 예상하셨나요?
	"아니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떨어지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이 됐습니다. 신청 관련해서는 이메일로 받았지만, 이런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편집 담당자가 신청하자고 제의해서 신청하게 됐습니다."
Q.	어떤 이유로 선정되셨다고 생각하세요?
	"그림이 좋아서. 하하. 고민해서 5점을 골라 보냈지요. 또 올해 우리나라가 볼로냐 주빈국이기도 하고, 모르는 분이지만 이원복 선생이 한국인 심사위원이라 선정되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후에 계기가 생겨 연락드렸더니, 그림이 좋았기 때문에 된 거라고 말씀해주셨고. 볼로냐에 참가하면 선정 이유를 설명해주실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 장호 그림 작가의 인터뷰 모습들
Q.	어린이책 작가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입시 미술 학원 강사로 15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 작업을 함께 해왔습니다. 점점 나이도 들고 입시 스타일도 바뀌면서, 고민하다가 그만두었지요. 마침 평소 아는 화가 선생님을 뵈러 간 자리에서, 함께 있던 친구로부터 책 일러스트 작업을 제안받았습니다. 이효석님의 원고를 받고 보니, 그중에 '산'이 마음에 들어 한 장을 그리는 줄 알고서 작업하겠다고 했지요. 후에 알고 보니 이효석 단편집 전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Q.	첫 작업은 어떠셨나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그림을 꼬박 일주일 동안 그렸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산사나이 그림을 제일 먼저 그렸지요. 마음에 들었어요.“
Q.	이전의 개인 작업과는 어떤 점이 다르셨어요?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2002년쯤에 길벗어린이 아트디렉터와 편집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개인 작업만 할 때지요. 그 자리에서 일러스트 제의를 받았을 때는 거절했었어요. 책그림에 대한 편견-출판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이 있었던 터라 그리했던 거 같습니다. 더군다나 그때는 오직 초상화에만 관심을 갖던 때이기도 했거든요. 인물 변형스타일의 개인작업은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사실적인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초상화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딸아이의 초상화를 그리고 나선 '초상화로 먹고 살아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초상화로는 먹고살 수가 없었죠. 막상 어린이책 그림을 그리면서 제 편견은 바로 잡혔고 그림으로 살아갈 길이 보였고 초상화기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고기가 물을 만난 거지요. 첫 책이 나왔을 때, 참 좋았습니다. 처음에 같이 하고 싶었던 길벗어린이 아트디렉터에게 전화를 걸어 첫 작품을 같이 못한 아쉬움을 얘기했습니다. 그 후에 《강아지》로 인연을 맺게 된 거지요.“ ▲ 작가가 직접 그린 가족의 초상화.
Q.	이제는 어린이책에 집중하시고, 초상화 작업은 안 하시나요?
	“아닙니다. 사실 저에겐 두 가지 일이 똑같아요. 처음 한 책그림들은 한지(장지:3배 접지)에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먹을 아주 연하게 소묘식으로 그리고, 묽게 탄 색을 물들이듯 여러 번 그렸습니다. 초상화와 같은 방법이었지요. 풍속화이면서 초상화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풍속화로, 사람의 모습은 초상화로 표현했거든요. 저에게 책그림은 일러스트의 통념이나 관념을 뒤엎는 것입니다. 일러스트와 회화 작업은 같이 할 수 없다는 통념이 주변에 아직도 남아 있지요. 그룹전에 책그림을 출품했을 때, 제 일러스트를 보고 개인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형 그림을 좋아할까?' 라며 우려했었습니다. 나중에 전시하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제 그림에 빠져들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Q.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전에 친구에게 '그림이 안 된다'고 넋두리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친구 말이 '기본기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학원 강사할 때 아이들에게 늘 했던 말이기도 하죠. 그래서 잠시 머리 식히면서 '기본기에 충실하자'고 다시 다짐합니다. 그림이 안 된다고 술을 마시거나 하진 않습니다. 술 먹고는 절대 그림 그리지 않습니다."
Q.	그림 그리실 때 모델이 있을 것 같은데, 주로 누구 신지요?
	“처음 그린책《메밀꽃 필 무렵》의 인물은 저 자신을 모델로 그렸습니다. 제 스스로 하나하나 포즈를 취해가면서 사진도 찍고 거울도 보면서 그렸죠. 여자 아이는 주로 제 딸 아이입니다. 《달은 어디에 떠있나》, 《명혜》등 딸 아이를 모델로 작업했습니다.”
Q.	《명혜》에서는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셨는데요.
	“네. 12색 볼펜으로만 작업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주로 밑그림을 그리는데, 어느 날 연필을 가지고 가지 않았어요. 옆에 볼펜이 떨어져 있길래 그걸로 작업을 한 거지요. 해보니깐 괜찮았습니다. 그전까지 밑그림을 하면서 피드백을 주고받았을 때, 반응이 별로였는데, 볼펜 그림은 좋아 했습니다. 원래 볼펜으로 처음 그린 그림은 《어린 엄마》예요. 살짝 채색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전작과 똑같이 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명혜》는 그림작가들에게 칭찬받았던 그림이기도 합니다. 헤이리 동화마을 정병규씨가 《명혜》를 보고, '그림책이었으면 전시를 하겠는데…' 하면서 많이 칭찬하셨어요.“
Q.	글 원고를 보시면, 어떻게 그려야겠다고 바로 떠오르시나요?
	“두세 번 읽으면 대체로 그림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리는 방법을 작품마다 바꾸려 노력하는데, 재료만이라도 바꾸면 더 흥이 나고 힘이 나거든요. 덕분에 글 원고에 어울릴만> 작가의 그림 재료들. 작가는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매번 새로운 그림들을 그려낸다. ▶

《강아지》에서는 사실적인 그림이라기보다는 감정선이 드러나는 그림이 많다. 노마의 얼굴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 있어, 그림만 보아도 노마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Q.	지금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오셨는데, 《강아지》에 유화 재료를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강아지》는 제가 그리던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려서는 안 될 내용이었습니다. 활기찬 아이들에겐 활기찬 표현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길벗어린이에서도 자유롭게 풀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처음 어린이책 작업을 시작하면서, 1학년이던 딸 아이에게 딱 6년만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해보니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 계속하려면, 새로운 방법으로 다양한 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출판사 관계자분들과 만날 때마다, 만화처럼도 할 수 있다, 시켜만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스타일을 원한 출판사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강아지》를 작업하게 되었고, 자유롭게 만화처럼 다양한 표현을 회화적 느낌이 나게 하는 데에는 유화가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출간된 책을 받고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출판사 담당자에게,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했죠.“
Q.	초상화 쪽에 관심이 많으셨으니,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계속 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아지》에서는 사실적인 그림이라기보다는 감정선이 드러나는 그림인데요. 이런 생각의 전환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네. 쉽지 않았지요. 개인 작업할 때에도 풍속화엔 감정선이 드러나는 작업을 해왔는데, 벽지에 그린 '탈'그림(그림 제목은 '사랑')이 기초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강아지》 작업 중간에 편집자와 아트 디렉터에게 '탈'그림을 보여줬는데, '아주 맘에 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도 많이 보여줬는데, '사랑' 그림이 너무 좋다며, 《강아지》도 그렇게 표현해보자고 했습니다. 저와 생각이 맞닿아 기뻤습니다." 작가가 개인 작업할 때 그렸던 「사랑」이라는 제목의 탈 그림. 이 그림이 《강아지》의 감정선을 나타내는 기본이 되었다. ▶
Q.	《강아지》에서 가장 애착 가는 페이지는 어딘가요?
	"가제본이 나왔을 때는 뒤표지, 속표지, 면지의 아이들과 강아지만 오려낸 모습을 보고 '너무 자른 느낌 아닌가?' 했습니다. 하지만, 출간된 책을 보았을 때 새롭게 보이더군요. 잘라낸 부분이 꼭 점토 인형 같았습니다. 목각 인형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이 부분이 제일 맘에 듭니다."
Q.	《강아지》에서 가장 그리기 힘드셨던 그림은 어떤 그림인가요?
	"첫째는 숲 속을 표현하는 장면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그리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자세하게 숲을 묘사했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몇 번을 고쳐 그렸죠. 사실적으로 나무를 표현하느냐 마느냐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둘째로, 강아지도 그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아트 디렉터에게 '강아지가 진짜 힘들다'고 얘기했더니, '형 난 엄마가 만들어 준 인형강아지가 제일 맘에 들어'라고 말하더군요. 사람은 변형시켜 표현하면서 강아지는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그럼에도 강아지는 참 어려웠어요. 때맞춰 도움이 된 강아지들이 있었어요. 강아지로 고민하던 당시, 소록도를 들렸다가 우연히 만난 강아지, 처가에 갑자기 생긴 강아지가 그들인데요. 그때 강아지 보러 처가에 자주 갔습니다. 셋째는 살아있는 아이들 표정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노마만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좋아서 보고 있으면 너무 그러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죠.“
Q.	《강아지》의 노마는 모델이 있으셨나요?
	"사진과 동네 아이들, 그리고 도서관의 아이들을 보면서 비슷한 친구들을 많이 찾았습니다. 주인공들이 다 예쁘고 잘 생겨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기동이는 잘 생기게, 노마는 좀 못생기게 그리려고 생각했죠. 노마는 정대세 축구선수를 모델로, 기동이는 잘 생겼으면 하는 마음에 배우 장동건씨를 모델로 그렸습니다." 《강아지》의 노마(왼쪽)와 기동이(오른쪽) ▶
Q.	그림책 《강아지》를 보는 독자들이, 어떤 부분을 꼭 챙겨 봐주면 좋을까요?
	"우선, 아이들 심리가 너무 예뻐요. 기동이를 나쁜 아이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아이들도 친구 휴대용 게임기를 잠깐씩 빌려 하면서 갖고 싶은 마음들이 있을 거에요. 딸 친구들이 함께 놀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게 보입니다. 또 우연한 기회에, 인형을 가지고 너무 재미있게 노는 아이와 그걸 되찾고 싶어하는 뚱한 아이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 아이들의 마음과 세계를 엿보니 눈물 나게 예쁘더군요. 둘짼 주인공 노마의 성격입니다. 가지고 싶어 한 강아지를 가질 수 없게 됐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상자갑으로 만들어 보는 적극적인 아이의 성격을 보면 감동이에요."
Q.	《강아지》에 작가 나름의 장치가 있으신가요?
	"기동이의 옷의 줄무늬를 호랑이와 같게 하여 똥침의 대상이 호랑이가 아닌 기동이가 되게하고, 며칠 지나 세발자전거 타는 기동이 옷의 줄무늬를 빼서 이어지는 또 다른 아이들의 세계를 그렸습니다." ▲《강아지》3페이지에서는 기동이의 옷이 줄무늬(왼쪽) 였다가, 28페이지에서는 민무늬 노란색 옷(오른쪽)으로 바뀌였다. 또한 기동이의 옷의 줄무늬(가운데)는 호랑이의 무늬로 표현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