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판인의 추천서적에 있던 책이었다. 그래서 샀다. 사실 클래식에 문외한이고 음악이론에 대해서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다만 음악이나 미술을 감상할 때는 편견없이 들으려고 한다. 무언가를 구분하고 이론을 제시하고 사조를 따지고. 물론 알면 좋지만 나처럼 모르는 이들은 일단 스스로 감상하고 내안에서 소화시키되 더 큰 틀을 찾고자는 열망이 있을 때 이론이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구입하고 읽었다.

만족스러운 서적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직관적이고 명확한 통찰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들에 취하기 전에 일단 그것들을 제대로 길들이기는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이라 괜스레 어깨에 힘마저 들어가며 뿌듯해 했다.

이렇게 음악이나 예술 전반에 대한 무식자도 쉽게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강의를 듣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음악가가 강의를 하거나 서적을 내는 일은 사실 드물다. 예술인이자 창작자가 혹여 자신의 창작물을 틀안에 가두는 해석을 유발할 수 있을 뿐더러 대중들의 상상을 가둘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창작예술자는 말이나 이론이 아닌 창작물로써 표현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반례가 충분할 정도로 스트라빈스키는 철저히 대중들의 눈높이와 예술가만의 통찰을 보여준다.

다만 가끔씩 예술가 본연의 완고함이나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예술의 본질과 형식에 대한 스트라빈스키의 생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정반합으로 이어질 이야기이다.

스트라빈스키, 민음생각, 음악의시학

불멸의 역작 괴테의 파우스트. 실제로 파우스트라는 박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비참한 운명으로 인한 주변의 소문이나 이야기가 떠돌아다녔고 이를 바탕으로 희곡으로 재가공하여 쓴 것이 지금의 파우스트다. 파우스트도 괴테뿐만이 아니라 다수 작가의 버전이 있지만 평생에 걸쳐 죽기 전까지 수정하며 쓴 괴테의 파우스트가 가장 유일하게 빛나고 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파우스트 박사가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온갖 세속을 누리다가 결국은 악마와의 계약에 명시된 지침을 어기게 되고 죽는다. 하지만 그는 구원받고 잠든다. (이렇게 보니 데스노트가 어디서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와 비유들이 향연을 이룬다. 고대그리스철학과 종교와 과학에 대한 괴테의 통찰. 미망과 구원에 대한 탐구. 특히나 논란이 일었던 발푸르기스의 밤의 향연도 인간세상의 끝없는 욕망과 갈증을 아주 탁월하게 표현했다고 하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다. 아마 세세하게 이해하려면 강의를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보통 우리가 살면서 괴롭고 힘든 미망이나 욕망에 시달릴 때를 떠올린다면 그리 이해 못할 것도 없으니 두려워 말고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일러스트로 텍스트를 풍부하게 살려준다는 데 있다. 유명 작가들의 판화는 적재적소에 위치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파우스트를 시작하는 데 있어 이 책이 가장 유용할 것이라 믿는다.

파우스트, 문학동네, 일러스트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135억 년 전 발생한 빅뱅으로 인한 우주의 시작 그리고 공간과 시간 즉 물리학의 시작. 원자와 분자의 출현 즉 화학의 시작.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과 문화인류의 시작 즉 역사의 시작. 저자는 우주의 시작과 그로인한 지식과 학문의 계열을 명료하고 알기 쉽게 서술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언급하며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사피엔스의 출현과 그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 살육도 흥미롭게 파헤친다. 종교와 이야기, 뒷담화는 인간의 결집을 만들었고 법인과 단체의 기원처럼 무형의 자산이 된 것이다. 

농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통합으로 가기 시작하고 과학혁명은 산업과 자본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제 우리는 제4차 산업과 인공지능, IoT를 이야기하는 시대에 있다. 사피엔스가 어디까지 문명을 발전시킬지 그 길이 멸망의 길인지 신으로 가는 길인지 우리는 다시 모여서 토론을 해봐야 한다.

사피엔스, 유발하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