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지아비로 모시고 살아갈 신랑 이름을 처음 듣는 드 순간까지도 까마득히 몰랐다.
여울같이 평온하고 잔잔하던 자신의 인생이 시집살이를 시작하면서 무섭게 변해버릴 줄은.

김정부인은 혼례를 치르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갔다가 6년만에 돌아온 남편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조금도 구박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했으니 그 부덕이 실로 대단하다.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깊은 뜻이 숨어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하루이틀도 아닌 6년 동안이나 남편의 자리를 비웠던 이유라도 알아야 살아가면서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원래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김정부인의 눈에 며느리 강씨는 조금도 벗어나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강씨의 오라버니가 찾아와서 밥상을 차리는데 김치를 한 사발 가득 담는 거였다. 잠시 뒤 물린 밥상엔 그 김치가 고슨란히 있었다.
며느리는 김치를 썰지 않고 통김치를 그대로 내놓은 거였다.
사돈 집에서 체면을 차리느라 손도 대지 못했던 거다. 김정부인도 자신보다 더 지독한 며느리라고 생각했을 거싱다. 시어미니처럼 그녀 또한 꼼재이였던 것 같다.
26살인 외아들을 잃고 식음을 전폐한 어머니를 위로하는 며느리는 우리끼리라도 잘 살아보자. 아이들 잘 키워야 먼저 간 아범도 맘이 편할 거라고 한다. 남편덕과 아들 덕이 없었던 김정부인이지만 며느리 덕은 많았던 것 같다.

김정부인은 단순히 온정을 베푸는 자선사업가만은 이이었다. 뛰어난 두뇌로 위기 상황을 넘기는 지혜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다른 지역의 동학군이 진주군에 사는 대단한 재력가인 김정부인 집에 들이 닥쳤다. 온 집안을 샅샅이 두져도 돈 한 푼이 나오지 않자 창고에 샇아둔 쌀만 가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사실은 재래식 화장실인 변소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경남 제1의 대부호로 불릴 만큼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상도에 어긋나고 부정 축재 했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에는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한다.

견리사의를 몸소 실천하면서 자손들을 가르쳤으면 바른 경제 도리를 지켜 나간 김정부인.
숱한 역경르 헤치고 덕행과 부를 쌓아 고종 황제가 비단을 하사할 만큼 모두의 존경과 신뢰를 받던 김정부인.
구한말 여성교육의 선구자로서 최초의 여학생 교실을 지어 기증한 김정부인.

나도 이 책을 통해서 김정부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많이 본받아야 인물인데도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

머리말에 적고 있는 내용이다.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그 색깔, 그대로 써라.
다만, "지금 내가 흉내 내고 잇는 것 아냐"라고 계속해서 물으면서 써라.
흉내 낸다는 것은 하나로 흡수되는 것이니 그건 개성의 함몰이고, 작가의 죽음이다.

2008년 에세이스트지에 발표된 글 중에서 발췌된 대표 수필들이다.

각도
각도기의 중심에서 보면 1도라는 각은 아주 작다. 그러나 각이 벌려 놓은 거리는 점점 커지게 된다.
삶의 각도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가까운 친구가 사기를 치고 도주한다.
그 일로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경계심을 품는 성격으로 변했다.
이십 칠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녀가 여전히 지인들과 연락을 끊은 채 숨어 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왠지 울적했다.

내 마음을 상대방의 마음자리에 놓아보고
그 마음의 각을 읽어내는게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냇물 속에 발을 들이밀고 일어서려는데 발등위로 모래무지가 였다. 몹시 놀라 모래두지는 얼른 모래 밑으로 몸을 숨긴다. 그 순간, 골목 모퉁이를 돌아 급히 몸을 숨기는 중년 여인의 뒷모습이 연상되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제인에어>중에서
어떤 것에 대해 미운 마음을 품거나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꼬치꼬치 캐고 들거나 속상해하면서
세월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은 거라고 했듯이 지은이도 그런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잡초는 밟힌다거나 차인다거나 뽑힌다거나 베인다거나 하는 온갖 곤란한 일을 겪는다.
그래도 잡초는 어떤 환경에 놓이든 도망치지 않는다.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는 역경 속에서 아름답게 자신을 꽃피우는 방법을 몸에 익힌다. 이런 잡초의 삶 앞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잡초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꽃이 아름다운 타래난초는 수술과 암술이 겹쳐져 있다. 수술 끝에는 접착제가 붙은 꽃가루 덩어리가 준비돼 있다. 이 커다란 꽃가루 덩어리를 자신을 찾아오는 벌레의 몸에 통째로 붙여 버린다.
그리고 암술 끝은 더 찰기가 있는 접착제를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벌레가 다가오면 잽싸게 벌레에 붙어 있는 꽃가루 덩어리를 떼어낸다. 이렇게 당 한 번에 가루받이를 끝내 버린다.
타래난초의 씨앗은 너무 작기 때문에 발아에 필요한 영양분조차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무서운 전략 하나를 생각해 냈다.
난균이라는 곰팡이 무리를 불러 모아 자신의 몸에 기생하도록 만든다. 그 균사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해서 발아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난균까지 완벽하게 분해, 흡수해서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부능로 삼는다. 그러나 까닥 잘못하면 거꾸로 균의 침입을 받게 돼 큰 피해를 입을수도 있다.
마치 '살을 자라 뼈를 세우는'것과 같은 위험한 작전이다.

괭이밥의 씨앗 꼬투리 안에는 작은 씨앗이 가득 들어 있는데 놀랍게도 그 하나하나에 로켓과 같은 발사 장치가 잦춰져 있다. 그 발사장치는 흰 주머니 모양을 씽사을 품고 잇느넫, 바깥 껍질은 더디게 자라는데 반해 안쪽 껍질은 세포 분열을 반복하며 씨앗의 생장에 맞춰 계속 자란다. 안팎이 이렇게 다르게 자라기 때문에 마침내 안쪽 껍질의 세포는 한껏 줄어든다. 더 참을 수 없는데ㅏㅂ축이 된 세포는 안쪽부터 터지는데, 이어서 바깥 껍질이 갈라지면서 꼬투리는 순식간에 거센 힘으로 뒤집어진다. 이때 주머니 속에 가득 들어차 있던 접착 물질이 씨앗과 함께 날아간다. 사람의 신발이나 옷에 붙게 돼 있다.
괭이밥은 해가 질 때가 되면 잎을 닫는데, 밤에 잎으로부터 열이 달아나느 것을 막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열 에너지를 헛됭이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잎만이 아니라 꽃도 닫는다. 건물에 가려 그늘이 지거나 구름이 끼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도 꽃을 열지 않는다. 벌레가 찾아올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꽃을 닫고 꽃가루의 분실을 막는 것이다.
늘 상황을 판단하면서 에너지나 자원의 절약에 힘을 쓰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TV켜 놓은 채 잠이 들거나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로 목욕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이 찔리는 이야기 일것이다.
괭이밥은 황금풀이란 별명이 이ㅆ에 먹히지 않기 위해 수산을 잔뜩 머금고 있어서 괭이밥 잎으로 쇠붙이를 닦으면 번쩍번쩍 빛이 나게 된다.
괭이밥의 꽃말은 '빛나는 마음'이다. 허황된 일확천금으로 부자가 되기를 바라기보다 우리들도 열심히 우리의 마음을 닦는 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