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자서전과는 사뭇 다른 내용으로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주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주연배우이기를 포기한 러셀 베이커는 객석에 내려와서 자신의 인생에 등장한 인물들을 선명하게 그려냅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도리스는 거의 열 사람 몫의 적극성을 가지고 있었다.
도리스의 나이가 여섯 살이었을 때, 식료품점에서 중량을 속여서 판 치즈를 도로 들고 가서
지배인에게 법적인 조치을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원래 무게에 용서해주겠다는 조건으로 명 온스를
덤으로 받아들고 위풍당당하게 돌아왔다.
어머니에겐 그것이 가슴 아픈 일이었다.
적극성은 죄다 딸한테 갔으니 말이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훤하지 않든 출세시키려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팻 외숙모의 활기 넘치는 도시 스타일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식용유가 튀거나 이웃집 아디오의 소리가 크게 들릴 경우, 혹은 집세를 받으러 제 날짜보다 하루 일찍 집주인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팻 외숙모가 외치는 "예수, 마리아, 요셉이시여!"하는 소리에 집 전체가 들썩했다.
외숙모는 생활의 전선에서 완벽한 대비 태세를 갖춘전사였다. 적이나 도전자와 맞닥뜨리는 순간에는 반드시 "본때를 보여"주었다.
구호식량을 받으로 갔던 날 비록 맛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 많은 것을 돈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얻었다는 얼떨떨한 기분은 집이 가까워지면서 차츰 당혹감으로 바뀌어 갔다.
"손수레를 끄니까 땀이 나네요. 스웨터를 벗을래요." 더운 날씨는 커녕 오히려 쌀쌀한 편이었다. 옷을 벗어서 수레 위에 올려놓았다. 내 스웨터로는 손수레에 담긴 물건들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어머니도 갑자기
더워지신 것 같다. "좀 덥긴 하다. 그렇지?" 어머니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수레 위에 덮어씌웠다. 이젠 완전히
가려졌다. 우리는 인생의 낙오자들이라는 사실을드러내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엄마 오늘 허브 아저씨랑 결혼했다"어머니는 마치 세상에서 제일 흔해빠진 일이 결혼이라는 것처럼 들렸다.
어저씨 자신의 무식함을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고 당신이 내게는 관심거리조차 될 수 없음을
깨우쳐주었다. 직접적으로 모욕을 주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아저씨를 괴롭힐 수 있었던 데에 내 교활함이
있었다. 허브 아저씨의 인내는 초인적이었다. 나는 아저씨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내가 당신을 그토록 무시하고 괴롭히던 시절에 대해 얘기를 꺼내시는 법이 없었다.
내 학창시절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 앞에서 내 글을 읽어주었고, 놀랍게도 한급 전체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렸고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프리글 선생님조차 두어 차례 읽기를 멈추고 특유의 점잖은 미소를 흘렸다.
고등학교 졸업을 코앞에 두고서야 내 천직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서스먼이 서류뭉치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물었더니 대학입학지원서를 쓰고 있다며
넌 어느 대학 갈거냐고 묻길래 난 대학 안간다고 했다.
서스먼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집 형편으로는 대학등록금을 낼 수가 없다고 하자 "장학금을 신청을 해."서스먼이 명령하듯 말했다.
열여덟 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두고 해군비행단에 입영 희망원을 제출했다. 생일이 지나고 며칠 후 소집 영장이 날아왔다. 내가 집에서 보내 마지막 주 내내 어머니는 쾌활한 표정을 유지하려 무척 애를 쓰셨다.
하지만 다시는 못 볼 살마을 기억에 각인시키려는 듯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여러차례 목도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애틋하고 깊은 감정이 흐를 때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흘리거나
껴안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머니는 날 올려다보시면 한번 씽긋 웃어 보이셨다.
"기차 놓치겠다. 어서 가거라."
읽는 내내 웃음을 터뜨리게 한 책이었다. 마지막 어머니의 병문안 장면은 안스럽기도 했다.
다만, 울루프 아저씨와 엄마 사이에서 오고가는 편지의 분량이 다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조금은 지루했었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나열한 내용이라 더욱 더
그렇게 느껴졌다.
텍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