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왕국.

선인장이 그려져 삐죽삐죽 아플것 같지만 그 날카로운 가시마져 부드럽게 만들어버리는 파스텔 표지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책이다.

나와 가에데를 둘러싼, 길고 이렇다 할 재미도 없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동화보다 유치하고, 우화라 하기에는 교훈이 없다. 어리석은 인간의 삶과, 약간 묘한 각도에서 바라본 이 세계.

결국은 좀 삐딱한 옛이야기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속에 아주 사소한 좋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내 이름은 시즈쿠이시. 할아버지가 즐겨 재배한 선인장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약초로 만드는 차의 명인인 할머니. 어려서부터 할머니를 도우며 약초차 만드는 법을 배우며 자란 시즈쿠이시. 

새벼 다섯시에 일어나 약초를 캐고, 오전에는 캐 온 약초를 말리고 자르고 특별한 샘물과 햇살 속에서 고르고 다듬으면서 보내고, 오후가 되면 차를 사러 오는 사람들을 맞는 생활

궁핍했지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 나름 부족함 없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며 보냈는데 산이 개발되면서 돋아야 할 곳에 풀이 돋지 않고, 약효도 줄어 차의 질이 떨어지자

할머니와 헤어져 도시로 내려온다. 그로 인해 시즈쿠이시의 작고 조용한 세계는 변화한다.

눈이 안 보이는 점술가 가에데와의 만남, 선인장과 교류하는 원예사 신이치로와의 불륜, 가에데의 동성 애인이자 후원자인 가타오카 씨와의 대립

내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피할 이유도 없는 소재들.

이 모든것들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잎새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워 읽는데 부담없어 좋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너무다 푸릇푸릇 상큼한 이런 글귀들 때문이리라.

몇번이나 뒤돌아보며 고마워하고 눈물 어린 채 고향을 등졌다. 마지막으로 물가에서 심호흡을 했다.

언제까지나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늘 만나는 벌레들과 계절마다 찾아오는 새들, 앉아 있던 나무 등걸과 흙냄새를.

비탈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졸졸 솟아나는 깨끗한 샘물의 맛을. 물에 젖어 매끈하게 빛나는 폭신폭신한 풀고사리와 이끼의 감촉을.

그러면 그 푸르름은 영원해진다. [p.35]

얼마전까지는 잃어버린 것이 아쉬워 탄식만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안다.

자신의 몸과 마음과 혼, 그것만 갖고 있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 하나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늘 같은 분량의 무언가가 눈앞에 있다.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만약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문제다. [p.16]

"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을 게다. 보다 큰 의미에서 말이야.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나쁜 것과 가장 좋은 것이 함께하는 법이란다. 에너지를 증오하는 데 함부로 써서는 안 돼.

끊임없이 가장 좋은 것을 찾도록 해라. 흐름에 몸을 맡기고 겸허해지도록 하고.

그리고 산에게 배운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늘 사람들을 돕도록 해라. 증오는 너의 몸 세포 하나하나까지 무차별적으로 상처를 입힐 거야." [p.35]

언제나 우리의 대화는 수긍과 납득으로 끝난다. 그런 관계가 진정한 친구이리라. [p.90]

곁에서 보아도 사람이 지닌 물건에서 전해지는 것이 늘 멋지고 좋지만은 않다.

거짓말과 어둠. 뒤틀린 가족관계 때문에 얽히고설킨 생각과 친절함의 이면에 숨어있는 시샘들.

그래도 가끔은 그 안에 첫눈처럼 반짝거리는 마음의 빛이 마치 보물처럼 묻혀있다.

아무리 하잘것없는 상담에도, 아무리 흔해빠진 애증극에도 무언가 아주 아름다우면서도 허망한 것이 숨어 있다.

질퍽질퍽한 진흙탕 속에서 그런 것을 찾아내고, 또 그런 것이 반드시 있음을 믿는 것이 가에데의 일이다. [p.63]

그리고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아름답지만 허망한, 보잘것없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뭔가를 발견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했다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낮이든 밤이든, 오늘이던 내일이던, 맑은날이던 흐린날이던 분명 먼 훗날, 분명 내가 본,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모습으로 빛을 내는 그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를테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