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자, 떠날 때가 되면 언제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해라.

이곳을 떠나게 되거든 ,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돌아와야 한다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야. 인생은 원과 같은 거야. 알아듣겠니?

넌 앞으로도 언제나 에스페란자 일 뿐이거든. 그리고 너는 앞으로도 망고 스트리트의 일부분이기도 해. 누구도 자신의 기억을 지워 버릴 순 없단다.

너도 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 버릴 수 없을거다. [p.188]

책을 펼치면 두장 가까이 펼쳐지는 목차에 시선이 확 갑니다. 이 책은 짧은 단편단편이 모여 한권의 책을 이룬다고 말해도 될 정도인데요.

초등학생이 쓴 일기같은 느낌의 굉장히 단순한 표현방식이 주를 이루는데 다 읽고나면 가슴한켠이 먹먹해지는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독특하게 다가오는 이 책 망고 스트리트.

내 이름은 에스페란자. 영어로는 '희망', 스페인어로는 '글자수가 너무 많다'는 뜻을 가졌다.

우리 가족은 모두 여섯명. 엄마와 아빠, 남동생인 카를로스와 키키 그리고 여동생 네니와 나.

학교에 가면 아이들의 내 이름이 마치 깡통으로 만든 것 같아서 입천장을 다치게 할 거라며 놀려댄다.

그래서 에스페란자 대신 리산드라 혹은 마리차, 혹은 제제디 엑스와 같은 이름을 원하는 나.

반짝반짝 까만 눈동자가 빛이 날 것 같은 에스페란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집세를 내고, 아래층 사람들과 앞마당을 함께 써야하고, 빗자루로 천장을 두들겨대는 집주인때문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집.

수도관이 망가졌지만 집이 너무 낡았다는 이유로 고쳐주지 않아 옆집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했고, 날마다 커다란 우유통으로 먹을 물을 길어 날라야만 했던 그곳을 떠나 정착한 곳이 망고스트리트4006번지 이 집.

두 분은 입버릇처럼 언젠가는 우리집을 갖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해마다 이사를 다닐 필요도 없을 거라 말씀하셨다. 물도 잘 나오고 수도관도 멀쩡한 집. 텔리비젼 속의 저택처럼 멋진 계단도 있고 지하실은 물론이고, 욕실도 세 개쯤 있을 것이기 때문에 목욕할 때마다 가족들에게 일일이 알리지 않아도 되고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새하얀 그 집에는 울타리 없는 널찍한 앞마당에 푸른 잔디가 자라고 있을 것이라 했다. 아빠는 복권을 살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엄마는 우리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꿈을 꾸듯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하지만 망고 스트리트에 있는 우리집은 두분이 들려주시던 그런 집과는 완전 딴판. 현관앞에 아주 좁은 계단이 딸려있는 조그맣고 붉은 색을 칠한 집. 창문들은 너무 작아서 마치 숨을 꾸욱 참고 있는 것처럼 답답해보이고 집 주변엔 깨진 벽돌들이 널브러져 있는데다 현관문은 화라도 난 것처럼 늘 퉁퉁 불어있어서 있는 힘껏 밀어야만 열 수 있다. 앞마당도 없고, 차고는 있지만 자동차가 없고, 집 양쪽에 가까이 붙어 있는 집들 때문에 더욱 작게 느껴지는 우리집 . .욕실도 하나, 침실도 하나라 온가족이 한 방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우리집.

이 꼬마 숙녀의 집에 대한 이야기는 시종일관 저의 시선을 붙잡았는데 나도 이렇게 저렇게 꾸민 이런 나만의 집을 갖고프다~ 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많이 닮아있어서 그런 듯.

남자는 자동차, 여자는 집이라더니 국적불문,애어른 상관없이 다 그러나보네요 ~

마지막 언젠가는 잘 가라는 인사를 하리라 내용을 보면 나는 남들에게 이야기 해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늘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라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 망고 스트리트는 저자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멕시코계 미국인 어머니와 스페인 어를 사용하는 멕시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시카고의 빈민 지역에서 성장한 저자는 유색인, 여성 그리고 하층민이라는 3중의 마이너리티를 가지고 있었다고. 작가의 지난 세월이 모두 담긴 이 소설의 주인공 '에스페란자'는 현실에서 꿈을 이룬 저자가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선사하는 '희망'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 구석구석 내용내용들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소소하면서도 진지합니다.

남편이 죽어버린 이자우라 아줌마, 남편이 죽어버린 욜랜다 아줌마, 남편에게 맞고 사는 라파엘라, 외톨이 샐리,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이에게 영어는 안된다고 쓰지 말라고 하는 마마시타 등등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약하지만 강한 '여자'들의 이야기.

그래서 책 첫장 A las Mujeres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란 멘트가 적혀 있었나봐요.

허름한 집은 안된다. 뒷골목에 있는 공동주택도 안된다. 남자들을 위한 집도 안 되고 아빠의 집도 안 된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집.

나를 위한 현관과 나만을 위한 베개와 예쁜 진홍색 페튜니아가 있는  . . . 내 책들과 내 삶의 이야기들이 있는 . . .

침대 밑에는 늘 내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누구도 내 평화를 흔들어 대지 않는 . . .

따라다니며 주워야 할, 남들이 버린 너절한 쓰레기도 없는 . . .

언제나 눈처럼 조용한 집. 나만을 위한 공간. 시를 쓰기 전의 깨끗한 종이 같은 . . .

역자후기를 보니 망고 스트리트를 발표하고 샌 안토니오에 바이올렛색의 아름다운 집을 장만했다고 합니다.  짝짝작 ~

원하는 자기만의 집을 갖게된 그녀는 행복할까요 ?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나, 힘겨운 삶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 수많은 장애물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질 때 쳐다보았던 네 그루의 나무를 기억하려나 모르겠어요.

"마에노는 상대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생각이었다는 거예요.

야마오카에게 왜 그렇게 마에노를 괴롭혔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대요.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느냐고 재우쳐 물어봤는데, 딱히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아무튼 마음에 안든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그 말만 자꾸 하더군요." [p.316]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 '악의'

용의자 x의 헌신을 능가하는 감동과 반전 그리고 충격적 결말이란 글귀가 적힌 띠지에 시선이 확 ~

이제껏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다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용의자x의 헌신과 방황하는 칼날을 그의 최고작품으로 꼽는 나.

그래서인지 이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 받자마자 읽지 않을수 없었다. 나에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그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답니다.

용의자 .. 를 능가하는 감동은 못느꼈지만 반전은 확실!! 책 속 자꾸만 몇몇 글들은 이 책을 읽은지 한참 된 지금도 절 쓸쓸하게 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후두부에는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고, 전화코드가 그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히다카의 젊은 아내와, 친구이자 아동문학작가인 노노구치 오사무.

만날 약속을 하고 찾아온 노노구치가 사건을 담당하게 된 사람은 한때 노노구치와 과거에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

그는 노노구치가 사건에 관한 수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수기를 토대로 사건을 수사하던 중 노노구치의 알리바이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범인은 바로 노노구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노노구치는 체포된 뒤에도 작가로 데뷔하는 데 도움을 준 친구를 왜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만 지키고 있다. 노노구치의 석연치 않은 태도에 가가 형사는 사건의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이 있음을 감지하고 노노구치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고스트라이터였음을 밝혀낸다. 어째서 노노구치는 그 오랜 세월을 히다카 구니히코의 고스트라이터를 해왔던 것일까? 이 의문에 대답해줄 사람은 노노구치 본인뿐이지만 여전히 그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그리고 연이어 밝혀지는 불륜과 치정, 모의 살인, 그리고 뒤이은 협박과 더러운 협잡 등이 밝혀지며 살인자인 노노구치는 가여운 희생자로, 또 희생자인 히다카는 더러운 협잡꾼이 되어버린다.

한 꺼풀씩 드러나는 진실, 그리고 뒤바뀌는 가해자와 피해자. 이유 없는 인간의 악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뒤틀린 모습이 드러난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깊디깊은 악의가 잠재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악의가 이길 때,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되겠지요."

인간의 마음, 그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어둠의 이면

뒤바뀌는 피해자와 가해자, 엇갈리는 진실과 거짓.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죽음을 둘러싼 쫓고 쫓기는 두뇌게임!

이 책을 읽게되면 아 ~ 하고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게 되고, 또 아 ~ 하고 탄식의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이 책은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와 가가 형사의 독백, 가가형사의 기록, 그들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가형사의 회상, 가가형사의 해명등 범인 노노구치 오사무와 가가 형사 기록을 번갈아 보여주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그 글들을 읽을때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잘한 오류나 편견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것을 알았을때의 당혹스러움이란 ~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를 읽으면서 살인사건을 접하게 되고, 가가형사의 독백을 통해 조금은 이르다 싶을 타이밍에 범인을 찾게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깊숙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그럴수 밖에 없는 다소 독특한 형식의 이야기에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누굴까. 어떻게,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됐을까.

한 사건속 그들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부분을 읽다보면 우리가 보고, 믿고,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건지 알 수 있습니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그리고 나. . .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는 건 착각 위에 성립되는 거야. 교사는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다고 착각하고 학생은 뭔가를 배우고 있다고 착각하지.

그리고 중요한 건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행복하다는 거야. 진실을 알아봤자 좋을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거든.

우리가 하는 일은 말하자면 교육놀이에 지나지 않는거야."[p.83]

적극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인간이란 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통해 희열을 얻으려는 인종이고, 어디 그럴 만한 기회가 없는지, 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는 누가 됐건 상관없는 것이다.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