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10년 후에 어떻게 변해 있을까 ? 그때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 그리고 그때 우리가 이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 궁금하지 않니 ?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지나온 일들, 일테면 소림이 얘기, 너하고 나하고 싸운 얘기 모두가 꿈만 같을 거야."

"아냐." 내가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거야. 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할거야. 난 세월이 지나간다 해도 우리의 일들, 그리고 내가 지금 느끼는 이런 감정 모두를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을 테야. 설사 어른들이야 늘, 너희 나이 땐 모른단다, 좀 더 나이를 먹어 봐야 한단다, 그런 말을 하지만 난 우리 때의 이것이 가장 소중한 것으로 믿고 싶어." [p.148~149]

책일 읽는내내 학창시절의 자잘했던 사건 사고들이 떠오르는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답니다.

앨범속 사진한장으로 정지해버린 그 시간속 내 이야기 같고, 부모님의 이야기같은 그런 이야기들 ~

[머저리 클럽]은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책이 아니었나 싶네요.

갑자기 여드름이 솟는 것 같고 공연히 어머니에게 덤벼들어보고 싶고, 몰래 숨어들어가서 본 청춘영화에 출연한 윤정희를 보고 한숨 몇 번 쉬던 기억은 가지고 있게 되는 참 어정쩡한 나이.

타교에서 온 주제에 이 낯선 분위기에서 한발 앞장서 악동 노릇을 하는 영민이란 아이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싸움

하지만 그 싸움에서 영민이의 매력을 느끼게 되고 여섯 명의 악동들이 똘똘 뭉친 <머저리 클럽>이 탄생합니다.

다소 불량해 보이는 어깻짓과 얘기 중에 퉤퉤 뱉는 타액, 자주 움직이는 손의 제스처, 눈 밑까지 내리누른 모자. . .

아무렇게나 입은 포대자루 같은 바지, 지저분한 손, 월요일이건 화요일이건 영어책과 헤르만 헤새의 [데미안]이 들어있는 책가방

지저분하고 교복 팔꿈치가 때에 절어 번들거리고 있지만 분방한 자유가 충만해 있는 영민이에 대한 부러움으로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나.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한번 부러움을 느끼는 나.

이웃 여학교의 <샛별 클럽>과 독서 모임을 결성해 크리스마스날 고아원을 방문 50여벌의 옷과 300여벌의 책, 학용품과 과자류를 사서 산타크로스 옷을 입고 선물을 나눠주며 아이들 하나하나 칭찬해주는 장면이 최고 근사했던 것 같아요. 저절로 눈시울을 붉혀지더군요.

서툴고 유치한 연애지만, 시가 오가는사이 더욱 신사적이고 낭만적으로 변하는 분위기.

김광림의 양지, 박목월의 4월의 시, 구자운님의 그대들 둘이서 하나를 이루려면 등등 덩달아 좋은 작품을 알게 되서 좋았고, 연애편지 속 꼭 한나씩 들어있던 그런 애송시를 읽는 기분이라 가슴 두근두근~

우리는 이렇게 자라고 있다. 어릴 때 보던 호박순은 보이지 않을 때 움썩움썩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 호박순이 언제 자라나는지 알기 위해 한나절 동안 지켜본 적이 있었다.

마치 시계의 장침이 한 시간에 정확한 원을 그리는 윤전을 지켜보듯이. 하지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시침은 도저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한눈을 팔았다 싶으면 어떤 보이지 않는 공간에 일정한 획을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

자라나는 호박순도 마찬가지로 한밤을 지새우고 나면 찬란한 아침 이슬 사이에서 놀랍게 자라 있다. 키 크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꽂아 놓은 받침대 위에서 더듬더듬 움썩움썩 자라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이 보이지 않는 무위의 시간에서 움썩움썩 자라온 모습을 보았다. 나는 지난겨울보다 성장했다.

하루하루의 달력을 찢어 가며 나는 보이지 않는 눈금 위에서 상승하였다. [p.271~272]

여러분 모두가 이 책을 통해 여섯 악동들이 더듬더듬 움썩움썩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들이길 바랍니다.

화려하게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군데군데 검은 그늘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인 것인지도 모른다. [p.171]

야나기하라 케이의 신간 [사기꾼]을 재밌게 읽고서 이 작가의 다른책도 얼른 읽어보고싶단 생각에 어렵게 빌려온 콜링입니다.

역시나 이 책의 내공도 만만치않네요. 한 여자의 죽음으로 인해 시작되는 많은 사회문제들. 요즘 이렇게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 자꾸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네요.

다니던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실업자가 된 준야와 정화조 청소 일을 하다 유독성 물질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레이는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특수청소를 선택한다. 그럭저럭 괜찮은 실적을 올리며 살아가던 그들은 어느 날, 난이도 초A급 청소- ―즉 엄청나게 끔찍하고 더러운 상태의 자살 시신과 그 흔적의 청소 의뢰를 받아 처리하게 된다. 그 후 소극적인 준야는 그 여자, '쓰시마 에미'의 원혼에 시달리게 된다. 조사가 계속되어가면서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과 결말이 인상적인 미스터리물이다.
<콜링>의 도입부에서 끔찍하게 부패된 시체와 허옇고 흐물흐물한 원혼의 등장으로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작가는 이내 진정한 공포는 이런 게 아니라며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인구 1천만이 넘는 대도시 도쿄의 중심가에서조차 철저하게 타인으로부터 잊히고 소외된 여성. 그 이름조차 기억해 주는 이가 없어 존재했었다는 사실의 근거까지 완전히 말살당한 여인.

이 소설의 진정한 공포는 바로 이런 사회적 말살과 소외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쓰시마 에미는 왜 그렇게 외롭게 죽어가야 했는가? 누가 그녀를 현실 사회에서 격리하여 외로운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왜? 어떤 방법으로?

"일기나 올라온 글만 해도, 말이 통할 때는 좋지요. 그러다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생기면 바로 잘라버리죠.

존재조차 지우고, 깔끔하게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게 인터넷이죠." [p.276]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에 따른 사이버공간의 허와실. (사람의 닉네임만을 알고 있고 실체는 모르는 실태를) 보여줍니다.

얼굴만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뀌리라고 생각했다. 보다 화려한 인생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직장을 바꿈으로써 오히려 형편이 나빠졌다. 불만만 커졌다.

나는 이런 데 있을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끝날 사람이 아니다, 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하지 않나요 ? 그러다가 사실은 별 볼일 없는, 시시한 인간임을 깨달았을 때 깜짝 놀라는거죠." [p.286]

한번 성형이 가진 기적의 힘을 맛본 다음에는 나빠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 .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보여지는 지옥.

죽을때까지 영원히 이어지는 지옥. 성형과 성형중독에 대해서도 얘길 합니다.

197페이지에서 198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됐던 '선풍기 아줌마 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한 언급을 해 놀라기도 했네요.

그리고 광우병의 위험까지 !!!!

"얼굴은 아니지만, 몸에 난  상처 가지고 노상 왕따를 당했지. 내 등에 담배로 지진 흉터가 몇 개 있잖냐. 그게 기분 나쁘다, 징그럽다고들  했지.

인간이란 어딘가 남의 약한 구석을 찾아내면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헐뜯고 해서 우위에 서려는 맘이 드는거야. 딱하게도 그게 인간의 본질이지.

그래서 왕따라는 건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거야. [p.115]

"아냐, 사람들의 작은 배려나 자상함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거라고 난 믿어.

그런걸로 사람은 구원을 받기도 하고, 그런걸 엊지 못해서 죽을 정도로 추락하기도 하는 거야."[p.199]

믿고싶어요 !!!

읽고나서 많이 쓸쓸했고, 그래서 더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네들의 모습을 이 책에선 많이 보여줬던 것 같아요.

무엇이든, 무슨일이든 장단점이 있잖아요.

나를 외롭게하고 힘들게 하는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나를 기쁘게 하고 즐겁고, 행복해 하는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언제나 힘차게 나아가야겠단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