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무구 리얼리티와 위풍당당 판타지를 천연덕스럽게 오가는 지브리 애니메이션풍 초특급 청춘소설 in 교토 라는 띠지에 적힌 글이 이 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주고 있는 것 같다. 간만에 참 재밌게 읽은책. 천진난만한 여대생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 판타지인데 말 그대로 로맨스와 판타지를 천연덕 스럽게 오가다보니 이 걸 어떻게 표현해야 이 책 그대로의 재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

다소 난감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 같다.

이 글은 그녀가 알코올에 잠긴 밤의 여로를 위풍당당 끝까지 걸어간 기록이자 주역은 커녕 길가의 돌멩이로 만족해야 했던 나의 쓰디쓴 기억이기도 하다고 되어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생각인 듯 ~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너무너무 재밌어 배꼽 빠질 하기도 했고, 아슬아슬 빗겨가는 인연에 안타깝기도 하고 그, 그녀의 고백에 두근두근 설레기도 했으니 말이다.

 

친구펀치를 구사하는 그녀와 나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방식인데 그녀의 또다른 이야기, 그의 또다른 이야기를 발견 할 수 있어서 그남자 그여자를 읽는 느낌도 든다. 클럽 후배인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아직 친근하게 말 한 번 주고받지 못한 사이다. 여기까지는 분명 로맨스인데 그 다음이 문제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심해어들, 편리주의자 가라사대, 나쁜 감기 사랑 감기 등의 네가지 이야기속 그녀를 지키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굉장히 판타스틱하게 그려지는데 밤이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서는 호기심에 가득 찬 아가씨가 교토 본토초와 기야마치 일대의 밤길을 순례하며 새로 사귄 사람들과 이 술집 저 술집 전전하며 신이 나서 돌아다닐 때 그 뒤를 쫓는 그는 으슥한 골목에서 정체 모를 괴한에게 팬티와 바지가 벗겨지는가 하면 엉큼한 아저씨에게 희롱당하기 직전인 그녀를 구하려는 찰나, 회오리바람과 함께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비단잉어를 맞고 그대로 뻗는등 말도 안되는 수난을 겪는 모습이 너무나 재밌어서 맘에 들었고 두 번째 심해어들 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 주인공이 되다보니 더 좋더라 ~

어릴 때 애지중지 읽고 또 읽던, 그러나 지금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헌책 라타타탐(꼬마 기관차의 신기한 이야기)를 되찾아주기 위해 청년이 헌책시장 한 귀퉁이에서 열린 '매운 요리 먹기' 대회에 나가 혼이 쏙 빠지도록 고생하는 내용속에 등장하는 '헌책시장의 신'의 모습이 넘 재밌었다는 ~

편리주의자 가라사대는 정체불명의 연극 괴팍왕 때문에 조금은 정신없었지만 '빤스총반장'을 비롯 재미난 캐릭터들과의 만남이 재밌었고 나쁜 감기 사랑 감기에서는 도시를 휩쓸어버린 몹쓸감기가 인연이 되어 아가씨에게 용기 내어 첫 데이트를 신청한 그와 그녀의 또다른 로맨스의 시작을 알려줘 내 자신이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고백받는 듯한 두근두근거림을 선사해줘서 넘 좋았다.

 

"젊은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늘 그걸 물으며 살아야 해. 그렇게 살 때 비로소 인생이 의미를 갖게 되지."

"도도씨 에게는 뭐가 행복인데요 ?"

"이렇게 지나쳐 가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 그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이것이 내 행복일지도 몰라."

 

여러분에게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소설에 나오는 여러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힘들게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늘 머릿속에서 넘쳐나 그걸 모두 소설에 이용하려 들면 소설이 끝도없이 길어질 것 같다고 말한바 있다고 하네요. 글을 써 책을 내는 작가는 보통 상상력으로 되는게 아닌것 같아요 ~ >.<

모리미 토미히코 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네요.

 

때로 말이란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진부하게 만들어 버린다. [P.341]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은 말대신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얘기하려한다는 점이 굉장히 독특한 것 같다.

첫 직장생활을 했던 그 곳은 극장 옆 회사라 항상 영화가 막 내릴때쯤 공짜표가 많이 돌아었는데 회사 동료이자 고등학교 학교 선배님들이었던 언니들과 단체로봤던 신은경 주연의 영화 '창' 부모님과 함께 가족이 단체로 봤던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등을 비롯해 수많은 순간들을 함께 했던 영화.

사진만 그 때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소설, 영화, 음악 그 어느것 하나 놓칠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 오늘은 '영화처럼'이라는 책을 통해 영화와의 만남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어 좋았다.

 

"극장의 어둠속에서 우린 재일 조선인도, 재일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지. 그러니까, 음, 이런거야.

불이꺼지면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또 어떤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이 우리의 머리와 몸 속에서 저점 부풀잖아. 그러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팡!'하고 터져버리지. 그때 우리란 인간도 함께 터져서 없어지고, 어둠 그 자체가 되는 거야. 그 다음은 스크린에 비치는 빛에 동화되면 그만이지. 그럼 우린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이 될 수 있어. 개똥 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극장의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신나고 가슴 설레는 것 아닐까 ? 어때, 네 생각은 ? [P.31]

 

GO, 레볼루션 NO.3, 연애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 등등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들이 인기있는 이유는 어떤 것이든 빙빙 돌려 얘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때문이 아닐까.

명쾌한 결말, 희망적인 이야기 그 어느것 하나 맘에 들지 않는것이 없다. 2년반의 기다림 끝에  선보이게 된 이 책 영화처럼 역시 그러하다.

태양은 가득히,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 페일 라이더, 사랑의 샘이란 다섯개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은 인연의 실끈으로 연결지어진 것처럼 연작 스타일로 펼쳐지는데 갠적으로 태양은 가득히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 좀 그랬지만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패닉상태에 빠졌던 주부가 비디오 대여점 '힐츠'에서 신랑이 빌린 비디오 반납날짜가 많이 지났다는 연락을 받고 반납하러 가면서 직원이 추천해준 코미디물 '에어플레인' 을 보고 신나게 웃고, 그것들을 반복하면서 점점 현실을 직시하고 이소룡의 '정무문'을 보며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결심하는 '정무문'이나 할아버지의 1주기를 맞아 도리고 집안 사람들이 모두 집합했는데 할머니에게 사라진 '괜찮아 오라'를 안타깝게 느끼고 어떻게 하면 할머니가 기운을 되찾을 수 있을가 궁리하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빈소에서 첫데이트때 봤던 영화얘기를 기억하고 로마의 휴일 상영회를 갖기로 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가족의 참된 의미를 돌아보게 만들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 그 사람에게 제 마음을 전하려 하겠죠."

 

"전하기만 하나?"

 

"자네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취해야 할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두 귀를 쫑긋 세우는거야. 그럼 자네는 그 사람이 자네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바꿔 말하면, 자네가 사실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그제야 평소에는 가볍게 여겼던 언동 하나까지 의미를 생각하며 듣고 보게되지.

'이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하고 말이야.

어려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대답을 찾아내려 애쓰는 한, 자네는 점점 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될거야.

왜냐, 그 사람이 새로운 질문을 자꾸 던지니까 말이야. 그리고 전보다 더욱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거고. 동시에 자네는 많은 것을 얻게 돼.

설사 애써 생각해낸 대답이 모두 틀렸다고 해도 말이지.

사람이든 영화든 뭐든, 다 알았다고 생각하고 접하면 상대는 더는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지 않지. 그리고 정체되기 시작하는거야.

그 노트에 메모한 좋아하는 영화를, 처음 본다는 기분으로 다시 한번 보라고." [P.325~326]

 

 

이야기 속에서는 현실이 강요하는 결말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죽은 자가 되살아나고, 마치 언제 죽었냐는 듯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도 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의 일들만 꿈꾸기만 넘 아까운 이 세상.

영화속에서, 책속에서 꿈꾸었던 나만의 이야기를 나눌 소중한 사람이 그리운 요즘 맘 따뜻한 영화 한편 보면서 추억을 얘기해보는 시간을 갖는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덥다는 이유로 추리소설에만 푹 빠져있었던 탓도 있지만 어지간한 내용이 아니고선 무뎌진 감수성을 흔들어대지 못하는 요즘 눈물콧물은 커녕 콧방귀도 끼기 힘든 상황에서 이 책 이별을 잃다는 눈물 펑펑 흐르는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더라. 현직 형사가 쓴 소설이라 더 진지하게 다가오지 않았나싶다.

이별을 잃다는 누구인지 모를 한 남자가 길바닥에 널브러진 채 피를 토해내는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해 보여주는데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고 왜 이런일이 벌어졌는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경찰관 한진수가 범죄자의 칼에 찔려 죽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죽는것도 산 것도 아닌 그 중간쯤, 영혼의 상태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하늘에서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데 쓰기로 한다. 그는 그것을 자궁안에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냥 알듯이 그냥 그렇게 알았다고 한다. 이 시간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며 축복이라는 것과 반대로 잔인한 아픔이며 괴로움이란 것을 안다.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고 불행한 비극의 시간으로 나를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가야한다.
그의 시선을 쫓아 첫번째로 만난 사람은 작은방 몇 개 있지도 않은 화장품으로 거울앞에서 얼굴을 가꾸어 여자가 되려는 엄마에게로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보기 위해 자주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몇갑씩 사러 들르고 잘 먹지도 않던 군것질거릴 사고 야식은 늘 그곳에서 라면으로 떼웠던 그 슈퍼. 아내와의 첫 경험, 신부가 예뻐보였음 좋겠고, 나보다 아깝다는 말을 들었음 좋겟고,  신랑 복터졌다는 말을 들었음 좋겠다 생각했던 결혼식 모습들을 살펴보면서 자신이 잊어버린 사랑의 감정을 떠올린다. 첫아이 지운이가 태어나는 순간 아내 곁에 있지 못했던 미안함, 안타까움을 영혼이 되어 마주하면서 감동하고 모습까지는 나름 참을만 했는데 . .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에 오열하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모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글자 하나하나를 읽기 힘들정도로 눈물이 쏟아져 너무 힘들었다. 그 어떤 말로 설명해야 죽음을 적절히 표현해낼수 있을까.

 

아빠다 하고 큰애와 작은애가 서로 먼저 달려오려 발걸음 소리가 요란한 그 소리를 좋아하고 그 모습을 사랑했던 그.

 

나는 그들에게서 "아빠!"라고 소리치며 뛰어올 행복을 빼앗아 가버린 나쁜 아빠다.

아무리 초인종이 울려도 그들은 더는 "아빠!"라고 소리치지도 못할 것이고, 먼저 나를 보려 경쟁하듯 달려와 현관문을 열어 주지도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습관처럼 아빠라고 소리치며 밖으로 나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을 열고는 내가 아님을 알고 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초인종이 울려도 거기에는 아빠가 서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는 그곳으로 뛰어가지 않을 것이고 서로 먼저 가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슬프다 [p.157]

 

나를 닮은 사람이면 좋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나를 닮아 당신과 아이들이 쉽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나를 닮지 않아 쉽게 나를 잊어버리면 좋겠어.

그래야 해. 힘들겠지만 그래야 해. 라고 아내에게 당부하는 장면에선 그의 그런 맘을 너무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슬프더라

정말 슬프다는 말밖엔 할말이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작가 후기를 보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냥 우리가 사는 게 행복임을, 가족과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소리내 웃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책으로 사소한 일상이 가장 커다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좋겠다 라는 글이 있는데 그 어떤 말보다 와닿더라.

부모님, 형제 가족들과 함께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는 시간을 갖어야겠단 생각도 했다. 뒤늦게 후회할 일 없게 !!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 되지 않게 웃는 얼굴로, 상냥한 안부인사로 그렇게 나를 조금씩 표현하는 습관도 갖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