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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양의 유수한 그림들의 노출에 익숙해 있다. 피카소, 모네, 미켈란젤로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방송가를 달구었던 ’행복한 눈물’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우리 그림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바람의 화원’을 통해 신윤복등의 그림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림 보다는 남장여자인 신윤복 개인의 삶을 조명한 듯 하여 그림 이해의 책을 찾던 내게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런가 하면 가끔 CF를 통해 스치듯 만나는 우리 그림들조차 많이 보기는 했어도, 누구의 그림인지조차 몰라 대략난감하였다. 그런차에 이리저리 그림책(?)을 찾다가 용케도 마음에 쏙 드는 책을 거머쥐었다. 무려 100여점에 달하는 우리의 그림들이 선사부터 조선후기까지 총망라 되어있어 내 눈이 때 아닌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달마도 (김명국, 17세기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번뜩이는 깨달음처럼 대상의 요체를 한 순간에 이끌어내고 있다 -p.145

너무나 흔하게 본, 특히나 금칠을 한 달마도는 연초에 절 주변으로 부터
마구 뿌려지는 것으로 익숙했는데, 사실 누가 그렸었는지도 몰랐다
무지한 나는 그저 어느 스님이 그린 그림인줄로만 알았다.
달마는 인도의 조사로 6세기경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 선종의 초대 조사가 된 인물이다. 9년 면벽의 용맹 정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禪은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체험을 강조하기도 했다.
최소한의 붓질로 대상의 본질을 잡아내는 ’감필법’의 좋은 예이다.
모필의 굴고 가는 변화와 빠르고 느린 힘의 분배가 한눈에 다 드러나
보인다. 담묵의 경쾌한 붓질로 얼굴이 드러나고 농묵을 거칠게 휘둘러
옷을 입혔다.

  서당 (김홍도,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김홍도의 사람 그림이 위대한 것은 이렇게 사람을 가까이 오래 보고,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껴안고자 하는 따뜻한 사랑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p.259

이 그림이야말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거의 다 아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가 김홍도는 앞 세대의 선구적인 시도들을 이어받아 자기화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 방면, 이른바 풍속화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
이 점은 정선이 진경산수를 이해하고 완성한 것과 같다.
그 시대 어느 동네에나 있었을 서당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은,
방 한가운데를  비워놓고 훈장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학동들의 구도나,
방이나  대청마루의 예스런 풍경을 모두 생략하고 몇 가지 소도구만으로
그림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이 그림들을 엮어낸 이, 박영대는 1961년 완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림 그리기와 글끄기를 함께 하고 있으며, 조상이 이 땅에 남겨 놓은 그림들을 통하여 우리 미술의 건강한 힘과 빛까과 격조를 탐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모아 놓은 그림들에는 이해를 돕기위한 자세한 해설이 곁들어 있어서 느긋하니 감상할 수 있다. 작가에 대한 소개도 고증을 통한 자료들을 인용해 두루 알려주니, 사람에 대한 이해가 그림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여기에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글은 저자 박영대님의 글을 옮겨놓은 것임을 밝혀둔다.

야묘도추 (김득신, 수묵담채, 간송미술관 소장)                  월하정인 (신윤복, 종이에 채색, 간송미술관 소장)
대상과 대상 간의 미묘한 심리적 상황이 야기하는                쓰개치마를 두르고 다소곳한 여인은 부끄러운 홍조를
해학적인 정서는 김득신 특유의 개성이다 - p.287                띠고 있고, 등불을 밝히고 선 사내 또한 은근히 내려다
                                                                                         보는 표정에 사랑이 가득하다 -p.295
  모CF에서 출연했던 그림. 기록에 따르면
김득신의 성품은 욕심이 없고 겸손하며 말수가 적은             세간에 화제가 되고있는 신윤복의 그림이다. 남의 눈을
편이었다는데, 그림이 그의 사람됨을 증명하고 있다.            피해 깊은밤 만나야 하는 두사람 사랑이 애뜻하다.

금강전도 (정선, 종이에 수묵담채, 호암미술관 소장)
강하고 약한 것, 부드럽고 단단한 것이 한데 어울려 이루어내는 화음 -p.195

이 그림은 정선이 59세 때 그린것이다. 젊은 날부터 수차례 이 산을 찾았던 정선이 눈을 감고도 훤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에 담아온 일만 이천의 뭇 봉우리를 모아 한 세계를 이루어내니, 그것은 차라리 화가가 꿈꾸어 온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봄에는 금강이고, 여름은 봉래, 가을이면 풍악이요, 겨울이면 개골인 것이 금강산이다. 그 다채로운 모습을 한 장의 종이에 담아내니, 누워서 유람하는 이른바 와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그림이라 하겠다.

불이선란 (김정희, 19세기 종이에 수묵, 개인소장)
이 나초의 뜻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심오한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한다 -p.349

이것은 아무래도 추사의 난이다. 애지중지 집에서 키워낸 난초가 아니며,
바람 부는 산야와 쓸쓸한 유배지의 벼랑 끝에 핀 야생의 난인 것이다.
김정희는 예의 단단한 뼛조각이 부서져 휘날리는 듯한 추사체로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아무래도 난초 그림만 그리고 붓을 놓기엔 서운한 구석이
많았던가 보다.
난 치기를 그만둔 지 어언 이 십년 우연히 붓을 들어 천성을 얻어내었네
문 닫아 걸고 찾고 또 찾은 것, 이게 바로 유마거사의 불이선이라네..
라고 써 놓았다.
바르르 떨리는 아래쪽의 잎새들 위로 오직 한 잎이 위로 솟구쳐 올라 허공속으로
묻혀버렸다. 그 잎과 평행한 꽃대 하나가 왼쪽에 나와 한 송이의 꽃을 피웠다.
붓끝을 스치듯 비벼 꽃잎을 만들고 나서 검은 먹을 찍어 중심부를 표현했다.

고사세동도 원량애국도 닭 호취도

위의 네 작품은 모두 장승업의 것이다. 구불구불한 둥치와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오동나무의 표현이 백미인 고사세동도와 고상하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원량애국도, 닭의 생태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속도감 있는 필치로 그려낸 닭 그리고 허공을 뻗어 나가는 나뭇가지의 거침없는 태도와 매의 형형한 눈빛에서 화가의 초상을 볼 수 있는 호취도이다. 특히 호취도를 보면, 그가 얼마나 능숙하게 붓을 다루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림이란 따지고 보면 물질의 세계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보기 좋은 것이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 물질의 세계란 소재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운동감의 변화가 그 하나이고, 그것을 질료를 통해 드러내는 물리적 특성이 또 다른 하나이다. 장승업은 이 물질의 세계를 천성적으로 터득한 거장이다.

서양의 그림이 색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단연 우리 그림은 선과 명암이 깃든 맑은 그것임에 틀림이 없을것이다. ’바람의 화원’같은 소설책도 열심히 읽고, 서양 미술사도 공부하고, 이쯤에서 우리 그림도 되돌아 보면 좋을듯 싶다.우리 그림을 유람하듯 들여다 보니 글솜씨도 젬병인 나 조차 절로 싯귀가 입안에 맴도는듯하다. 그리고 풍류가인이 된 듯 느긋함의 여유로 이 겨울밤이 고즈넉이 깊어만 간다.

후感...책읽는파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