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시리즈의 6권인 <기나긴 겨울>에서, 7년마다 닥치는 혹독한 겨울이 있는데, 그 세 번째 7년인 어느 해에는 7개월 동안이나 계속될 가혹한 겨울이 예고되고, 실제로 일어나버리고 만다. 읍내에는 양식과 땔감이 떨어지고, 심각한 생존위기가 닥쳐온 가운데, 정의롭고 용감무쌍한 두 명의 청년이 어느 개척자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밀 부대를 찾아 나선다. 키보다 높이 쌓인 눈 더미와 한 치도 내다볼 수 없는 눈보라를 헤치며 풍문으로만 들었던 개척자의 집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흙집에서 피어나는 따스한 연기 때문이었다.

 

 

     내게 '흙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란 생의 의지와 구원이다. 거창한 듯하지만, 목숨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청년들에게 다시 삶의 희망을 믿을 수 있게 했던 개척자의 아늑한 흙집이 주는 인상이 그랬다. 흙집은 이미지이자, 표상인 채 소중하게 간직되어 온 꿈의 편린이었던 탓에, 흙집 짓기를 가르쳐주는 한 권의 책과의 만남은 꿈과 현실 사이의 매개체가 되어주고도 남았다.

 

 

     『일주일 만에 흙집짓기』라니, 실현가능성이 어째 의심스러울 수밖에. 아무나 최소한의 안내서 하나면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흙집이란? 우리네 농촌에 터를 잡고 만들어질 흙집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만 같아, 책을 읽는 내내 반신반의하며 궁시렁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물론 흙집을 떠나 생태주택이나 귀농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한결 수월했을지도 모르지만, 기술적인 것의 전수만이 아닌 집짓기를 통한 인간성의 회복을 논하는 저자의 집 짓는, 글 짓는 솜씨에는 절로 마음이 간다.

 

 

     정신노동에만 몰두해왔다는 철학박사였던 저자는 귀농을 결심하면서, 농사와 생태주택 짓는 일을 배운다. 무엇보다 공감할 수 있었던 조언은 의식주의 차원을 전환하는 파격을 단행하기 앞서, 가족들의 충분한 동의를 구하고 행하라는 것이었다. 흙집이며 유기농 텃밭에 가족들의 이해와 공생의지가 깃든다면 무엇보다 든든한 후원에 힘입어 좌초하지 않을 원동력이 될 것도 같다.

 

 

     고관대작의 기와집이 아닌, 초가와 너와집이야말로 우리네 흙집의 소중한 원형인데, 선 목수를 자처하던 저자가 흙집 짓는 공동체의 길라잡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뭉텅뭉텅 생략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땠을까 짐작이 영,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숱한 시행착오와 자기 수행의 결과로 얻은 노하우를 전달하는 과정이 쉬울 리만은 만무하다. 집 구조물을 설명하는 전문용어나 공구의 이름이며 쓰임 하나하나 생소하지 않은 것이 없어, 손재주 없는 이에게는 전혀 단순해 뵈지 않는다.

 

 

     공부 없이, 체득 없이, 뭔가 절박하고 절실해지지 않으면 흙집을 지을 최소한의 자격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명을 좀먹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도 없고, 의식주를 변혁해서 얻는 충만한 생명 에너지를 감내할 만큼의 절실한 터닝 포인트를 찾아낸 것도 아니니, 흙집에의 탐색은 여전히 이상적 견학으로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화려한 카피에 현혹되어 집어 들게 되는 책이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짧은 시간에, 그만큼 열광하는 데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좋은 세일즈와 입소문은 가장 확실한 마케팅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팔리는 만큼, 이슈를 양산하는 이상으로 '양서'인 것은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자기계발서가 읽히게 되는 첫 번째 조건은 동시다발적인 화젯거리와 '나만 안 읽은 거야?'라는 위기감의 발로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크릿』은 화려한 쇼맨십을 전면에 내세우는 책이다. 동명의 영상물이 거둔 성과를 확장시켜, 책을 통해 DVD를 홍보하고 있는 효과까지 얻고 있는 치밀함도 보인다. 얼마 있으면 분명, 국내 케이블 TV에서 먼저 방영한 후, 공중파까지 진출하여 방영될 것도 같다. 저자 초청강연 같은 이벤트 정도는 이미 예정되어 있을 수도-. 점점 실체를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을 닮은 독자가 되지 않기 위해, '포장'을 벗기며 읽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성공을 위한 비결?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을 위한 비밀'을 알려준다니, 이렇게 고마울 때가! 그렇지만 실망(!)이 큰 만큼, 곧바로 수긍하게 되는 것도 빨라진다. "성공을 상상하고, 진심으로 추구하라"정도로, 딱 한 줄로 요약해도 충분한 이 책의 테마에 자동적으로 냉소적이 된다면, 이 책의 효용가치는 거기서 끝이다. 원래 성공하는 인생관을 설파하는 모든 책에는 특별한 비결이 아닌,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지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상식'의 범위 내에 전부 포함되어 있는 이론들이 변주되어 실려 있지 않은가. 요컨대 성공을 지향하는 이들은 책을 집어 들게 아니라, 약간의 습관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쉽게 이룰 수 없는 '평범함'에 대한 자기위안과 자기혐오의 반대급부로 자기계발서를 그토록 열심히 읽게 되는 것일지도.

 

 

     성공하고 싶다면 그 성공을 상상하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회의를 가지는 순간 우주적 질서는 틀림없이 그 메시지를 수신 받는다. 회의하지 말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믿어야한다. 성공의 모델이 있다면,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을 미리 가장해서 성공의 결과를 미리 맛보는 것도 좋다. '척'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해내야하고, 긍정적인 자기 암시만큼 효과적인 비결은 없다. 플라시보 효과처럼, 성공한다고 믿는다면-철저하고 완벽하게- 당신은 그렇게 될 수 있다-

 

 

     시종일관 주창하는 '시크릿'은 그리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성공의 비결이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성공하는 이들이 1%에 불과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일상을 변혁하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긍정의 힘없이 세상의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냉소하고 회의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 성공의 비결은 꼭꼭 감추어져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의 기치 아래 성공과 부를 얻을 수 있는 이들의 대열에 합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만약 실패한다면, 늘 그런 푸념으로 일소해버린다면... 성공은 자연스레 멀어질 것이고, 책임은 바로 '당신'에게 있는 것이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성공을 믿지 않았던 당신에게!

 

 

    

     이쯤 되면 진심으로 이 책이 무서워지려고 한다. 책임공방에 대한 소재를 '철저하고 완벽하게' 독자의 몫으로 돌려놓은 수 있는 자신만만함. 아, 그렇다. 이 책은 성공한 자기계발서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훌륭한 모델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의심하는 자, 성공도 없다!(피라미드 조직과 뭐가 다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의심하는 순간, 성공이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고전을 완독하려는 노력보다, 쉽게 풀어 읽어주는 해설서를 고르는 것에 심취하는 것은 중국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중국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은 논객들의 저서들이 속속 국내에도 출간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중텐의 『초한지 강의』는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입맛에 딱 맞는 쉽게 읽히는 <<초한지>> 안의 영웅들을 분석해 놓은 책이다.

 

 

    그러나 분명히 저자가 내세운 명분은 한나라 건국과정에서의 파란만장하게 스러져간 영웅들의 행적에 대한 분석으로, 원제 또한 '한대풍운인물'이라 명명해놓았는데, 이것을 『초한지 강의』라는 제명으로 확대해놓은 것은 분명 오류가 아닐까한다. 어디까지나 무게중심을 한고조 유방과 건국공신들로 잡고 있으니, 항우에 대한 분석 자체가 비중 있게 등장할 리도 없으며, 원전으로 삼고 있는 텍스트 또한 <<초한지>>라기 보다는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한 건국 초기의 제왕, 제후, 공신들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사실 <<초한지>>는 끝내 패권을 차지하지 못한 실패한 영웅인 항우의 최후를 감상적이며, 극적으로 그려놓았기에 그에게 많은 동정이 쏠리도록 유도한 것도 있었다. 출신성분이 좋지 못하고, 호걸다운 재기와 매력이 부족한 유방보다 호쾌한 군신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항우의 일대기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어, 끊임없이 회자되며 사랑받는 레퍼토리가 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고조 유방은 항우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자질들이 산재하지만, 절대적으로 앞서는 제왕의 자질이 있었으니, 그것은 인재에 대한 등용과 전폭적인 지지였다. 군사를 다룰 수는 없지만, 군사를 다루는 장수들을 거느릴 줄 아는 유방이기에, 한신, 장량, 소하, 진평, 조참 등의 희대의 영웅호걸들이 천하를 개벽하고, 호령할 수 있었다.

 

 

    항우와 유방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자랑하는 한초군담의 영웅, 한신의 씁쓸한 최후에서 개국공신의 입지만큼이나 화려하면서 위태로운 것이 없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한다. 어찌 보면 토사구팽당한 가장 유명한 고사의 주인공으로 유명을 떨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유방 진영의 제일가는 살림꾼으로 건국 후 승상과 상국의 지위에 올라 호사를 누린 소하. 그렇지만 그의 능력과 충성은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정치적 줄다리기 선상에 있던 알력다툼으로, 그 위기를 차례차례 극복해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실로 놀라웠다.

 

 

    중국 황실의 악녀에 대한 논의가 있으면 가장 이름을 앞세우는 존재인 여치에 대한 평가로 빼놓을 수가 없다. 지혜로웠으나 기질이 강인해서, 여인이 가져야할 마땅한 자질을 뛰어넘어버린 야심찬 행로는 당대나 후대의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비난을 면치 못하는 요인이 되었다. 실질적인 한의 제 2대 황제나 마찬가지인 권력을 휘두르고 여씨 천하를 만들려다 사후 멸문을 당하는 정해진 수순을, 우리는 앞으로도 유구한 중국역사 속에서 몇 번이고 볼 수 있게 된다.

 

 

    중국의 최초의 통일 국가라기에는 진의 위용이 보잘 것이 없어, 한나라야말로 그 시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대풍운인물'이라는 원제처럼, 변혁의 시대, 영웅들이 샘솟았던 혼돈의 시기를 만들었고, 스러져간 영웅호걸들의 일대기를 다시 읽는 것은 흥미진진함을 넘어, 인간군상의 영광과 몰락의 행동 유형을 다시금 숙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