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샌닥의 판타지는 아이의 동경과 행복을 양분 삼아,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가고 싶은 그곳으로 안내한다는 강점이 있다.
마음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과 읽고 싶은 것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모리스 샌닥 유년의 결핍과 갈망에서 뻗어나왔다.
절친한 친우인 크리스 반 알스버그와 함께 현대적인 그림책 세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확립한 것과는 상관없이,
투쟁적이기까지한 거칠 것 없는 메시지에 우리는 그만 항복할 수 밖에.
미키는 너무나 소란스러워 잘 수가 없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알몸으로 어느 커다란 주방에 떨어진다. 그것도 빵 반죽 속으로.
딱 보기에도 빵 꽤나 굽게 생긴 '빵스러운' 삼등신 파티쉐들이
"반죽에 밀크를, 반죽에 밀크를"- 행복한 캐치프레이즈로 외치는 맛깔스러운 작업장,
주방 안에서 한밤중의 야단법석이 시작된다.
미키가 들어간 손이 불쑥 튀어나온 반죽을 미키오븐에 굽기 시작하고 나서,
솔솔 맛난 냄새가 풍겨나올 무렵, 미키가 부푼 반죽을 뚫고 나온다.
빵 반죽 옷을 걸치고, 빵 비행기를 뚝닥뚝닥 만들어 타고 선,
"난 밀크가 아니야, 난 미키라구"라고 한바탕 요란하게 자기선언을 한다.
삼등신 파티쉐 트리오의 열망을 들어주기 위해,
빵 비행기로 밀크를 찾으로 '밀키웨이'로 날아오르는 우리의 미키.
정말 우리가 아침마다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미키의 별스런 수고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모리스 샌닥은 굶주리고 병약했던, 존재감 없던 아이였다.
미키 마우스가 좋아서 모사하기를 즐겼다고 하는데, 디즈니에게 큰 빚을 진 기분이다.
맨하탄의 빌딩 숲은 샌닥의 붓끝에서 군침도는 생명력을 가진 피사체로 탈바꿈한다.
우유병, 밀가루봉지, 버터상자, 마멀레이드병, 비스킷 통, 찻주전자, 휘팅크림, 케익가루 통들이,
삭막한 마천루로 그득한 뉴욕의 번화가를 풍요롭고 생기있게 바꾸어준다.
뉴욕의 그 낯익은 스카이라인이 이렇게나 먹음직해 보일 수 있다니,
읽는 내내 밀크 티 한 잔에 곁들여 나온, 버터를 잔뜩 발라낸,
한 입 베어물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긋한 스콘 한 조각 대접 받은 기분!
샌닥의 작품 속에서 아이는(맥스 그리고 미키) 판타지의 심장부로 걸어들어가,
(무모하게도 보이지긴 하지만)그 체험을 고스란히 겪어낸다.
질릴 때까지, 일상이 그리워질 무렵까지.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서야 아늑한 제자리로 돌아오는 샌닥의 주인공들.
(맥스가 저녁밥이 기다리는 방으로, 미키가 겨우 고요함이 깃든 자신의 침대로)
아이의 욕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 이해를,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 자문한다.
건강하고 건강하게 공상하고, 그 경계에서 때론 일상을 놓치면서도 살아가는 아이들,
더 믿어주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햇살과 나무꾼'에서도 활동하신 강무홍씨의 번역은 정말 맛깔스럽다.
원작을 최대한 리듬감있게, 빵내음 솔솔 풍기며 우리 말로 풀어내신 그 솜씨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나는 누나가 좋아>나 <깡딱지>, <까불지 마>, <아빠하고 나하고> 등등...
강무홍씨 자신의 동화에서도 문장을 정말 제대로 요리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무홍'이라는 이름 하나로도 주저하지 않고 책을 집어드는 일도 있을 정도니까.
<깊은 밤 부엌에서>를 조카에게 여러 번 읽어 준 뒤 눈을 감게 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스스로도 다 외워버렸고, 조카도 함께 암송할 경지에까지-
그만큼 강렬하고 만족스러웠나보다.
작가의 명성이란 이렇게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지. 그 미소를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