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k방송 주말 드라마 '정도전'이 큰 화젯거리가 되는 듯 하다. 특히 아버지 세대인 5060세대에서 이 드라마에 대한 반향이 크다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요즈음의 혼탁한 정치 현실에 관심이 많은 세대기에 드라마가 다루는 시대와 정도전의 삶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는 탓이리라.

 

사실 방송매체를 통해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한 것은 어린 시절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용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도전을 보니 그 때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받은 느낌과 용의 눈물을 보며 받은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용의 눈물을 보았을 때의 정도전의 이미지는 '이방원'이라는 걸출한 군주를 거스르는 권력 추구에 혈안이 된 모사였다. 그렇지만 지금 이 드람의 정도전은 그야말로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한 고려 왕조를 때려 엎고, 민초를 위한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대업'을 가슴에 품은 혁명가가 아닌가. 이처럼 너무나 상이한 두 정도전 사이에서의 혼란, 그리고 아무래도 방송보다는 서적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낫다 싶어서 이 책을 골랐다.

 

책은 정말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씌어진 오명을 벗겨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시작부터 책은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하기 위해 씌운 누명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즉 이방원의 정도전 살해가 '국가 안정'이 아닌 '정적 살해'였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책은 정도전이 참으로 꿈꾼 새 왕조가 어떤 것이지 상세히 적어 나가고 있다. 토지 제도의 대개혁, 사병 혁파,  서양에서는 몇 백년이나 더 흘러야 나올 법한 고도의 민본주의적 정치 철학, 무능한 왕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한 오늘날의 내각제에 가까운 재상 중심의 신권강화 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하였던가. 정도전은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이와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의 학우 정몽주, 스승 이색, 끝내는 태종 이방원까지.. 시대는 정도전의 걸출한 희망을 다 걸머지기를 두려워하였고, 끝내 그는 신권이 아닌 왕권을 강화하고, 대중국 외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였던 이방원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였던가. 결국 이방원이 제시한 방향대로 흘러간 조선 왕조는 그토록 조선 건국을 반대했던 포은을 추앙했고, 조선을 세운 정도전은 역적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이래서 역사라는 학문이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며 정도전이라는 한 인물에 대해 잘 알게 되어 너무나 다행이다. 정말로 저자가 정도전을 위해 충실히 변명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였던가. 책을 읽으며 산과 강을 경계로 땅을 나누어 먹던 권문세족 밑에서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던 백성들이 굶어 죽던 고려 말의 상황이 가진 자들의 더 큰 욕심 때문에, 동네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요즈음의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되어 자뭇 걱정스러웠다. 정녕 역사가 반복된다면, 오직 혼자서 이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려고 다른 이들을 등쳐먹는 이들이여. 역사의 흐름을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다.

 새로 나온 책들을 보다 이 책을 발견하고 몹시 기뻤다. '병자호란'에 대해 다룬 책이 나왔다니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다. 임진왜란에 대한 책은 넘쳐나도 병자호란에 대해서 다룬 책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아서 참 아쉬웠는데, 이번에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도 편안히(?) 읽을 수 있는 평설 형식의 책이 나온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무튼 저자인 한명기 교수가 예전에 쓴 광해군에 대한 책 역시 재미있게 읽은 터라 어김없이 이 책을 구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단 책은 말 그대로 평설 형식의 책이라 읽기가 매우 수월하다. 조금이나마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은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우리 민족이 지금 처한 현실과 명청교체기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에 착안하고 있다. 명과 청이라는 거대한 세력의 각축 속에 종속변수였던 조선이 겪어야 했던 처참한 상황은 대한민국에 다시는 도래하지 않아야하는 역사적 비극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반도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엄혹하기만 하다. 전통적으로 의지해오던 미국의 세력이 동아시아에서 약화되고, 중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기에 저자는 병자호란이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이 시대의 비망록'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점에 공감할 수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였다. 저자는 당시 사람들이 상황을 '주관적'으로만 해석한 것이 참극을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일본과의 기나긴 7년 전쟁 때도 이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전쟁을 바라지 않던 쓰시마 사람들이 도대체 당신들은 왜 일본의 전쟁 준비를 눈으로 보고도 혼자만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기냐면서 참으로 답답해 했다고 한다. 병자호란에 앞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국내 정치와 달리 철저한 이해관계와 힘의 논리가 강요되므로 기민한 상황대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저자는 '재조지은'을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킨 인조정권의 취약성이 바로 당시 명청의 세력 역전의 현싱릉 외면하게 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청나라의 침입을 불러 일으키고도,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국방대책이나 민생안전에는 '아예 귀를 닫아버린' 당시 위정자층이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말대로 병자호란 당시의 비극은 언제든지 지금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많은이가 이 책을 읽고 무섭게 떠오르는  중국이 '너희는 우리 덕분에 먹고 살면서 왜 미국만 끼고 도느냐?'고 따지는 지금앞으로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신중하게 모색하였으면 한다.

  임진왜란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언제나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바로 전쟁 전체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점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책이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그렇다지만 여하튼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전과 후, 그리고 전쟁 전체를 조망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바로 위의 아쉬운 점을 어느정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제목을 보면 그 글이 어떤 글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에 글의 제목을 선정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이 '임진왜란'이 아닌 '7년 전쟁'인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바로 임진년에 왜놈들이 일으킨 난리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이라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으로 인해 격변했던 동아시아의 정세를 이 책을 바라보겠다는 저자의 의도가 제목에서 이미 드러난다. 마치 유럽의 어느 전쟁을 가리키는 듯한 7년 전쟁은 이처럼 그 제목에서부터 지나치게 편협한 피해망상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 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의 이러한 의도는 책 전반에서 관찰된다. 전쟁이 벌어지기 몇 년 전부터를 1권에 걸쳐 서술하면서 모든 일본인들이 이 침략주의적인 전쟁에 동의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조선 측 통치자들의 무능함과 안일한 사태 파악 및 대처, 그리고 민중들이 얼레빗같은 왜군보다 더한 참빗이라고 칭한 명나라 군대의 횡포 등 기존의 7년전쟁에 대한 상식을 부수는 참신한 내용들이 많다. 아마도 작가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이 책을 쓰기 위해 10년이나 관련 사료들을 조사한 덕분이리라.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문체에서도 잘 배어나고 있다. 씹으면 씹을수로 단 맛이 나는 밥처럼, 아무 반찬도 양념도 없는 맨밥같은 덤덤한 문체이지만 참으로 담백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7년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독자 역시 어느정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항상 되풀이된다고 하였다. 실제로 일본은 몇 세기 지나지 않아 다시 대륙으로의 세력 팽창을 꾀하며 우리를 식민지화하였고, 지금 역시 중국(대륙세력)과 일본(해양세력)은 자웅을 다투고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고작' 몇 백년 전에 이 땅을 참담하게 할퀴고 간 이 7년 전쟁을 잊지 말기 바란다. 특히나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이 책의 속표지의 문구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萬斬)이 부족한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