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나를 칭찬하는 말과 나를 지적해주는 말, 너무도 사탕발림인 듯한 지나친 칭찬, 질책의 말들을 듣고 살아가지요. 그런데 지나친 칭찬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답니다. 달콤하게 날 유혹하는 것에 자신을 빼앗겨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가끔은 그것이 사탕발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요.

요사이 세상이 너무도 뒤숭숭하고 위태위태하다보니 아이를 밖에 내보는 것 자체마저 힘겨워지고 있지요. 행여 낯선 사람과 접촉하지는 않는지, 낯선 사람을 따라나서지는 않을런지 아이를 둔 부모라면 걱정을 안고 살고 있는 셈이지요.  

엄마로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그러한 내용을 알려주어야 할때 어떻게 이야기해주면 좋을까 고민한다면 바로 [거미와 파리] 그림책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류시인 메리 호위트는 아이들에게 짤막하지만 유쾌하지만 무언가 깊이 여운을 남기는 시를 지어주지요. 바르 그 시가 토니 디터리지라는 그림작가를 만나 작품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 바로 이 [거미와 파리]라는 그림책이랍니다.

이 이야기는 달이 어스름한 밤, 어두컴컴한 대저택에 옷을 어여쁘게 차려 입은 파리 아가씨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거미 아저씨는 파리 아가씨를 초대하지요. 거미 아저씨는 자신의 멋진 응접실과 맛있는 음식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저씨의 초대는 정중하고 끈질깁니다. 거미 아저씨의 외모는 조금 탐욕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파리 아가씨를 향해 부드럽고 달콤하게 말하지요. 하지만 파리 아가씨는 거절합니다. 가느다란 팔을 들며 “싫어 싫어요.”를 외칩니다.

파리 아가씨는 그러다가 떠나지만 거미 아저씨는 초조해 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습니다. 거미 아저씨는 파리 아가씨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어떠한 유혹에도 끄덕하지 않던 파리아가씨가 왜 거미 아저씨를 찾아가게 되는 걸까요? 파리에게는 어떤 것이 달콤한 유혹 즉 덫이었을까요? 정말 그 생각대로 파리 아가씨는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결과란…… 그렇지요.  파리 아가씨는 거미 아저씨에게 잡아먹히지요.

오직 흑백 검정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약간은 공포의 분위기마저 감돕니다. 그러나 그 흑백 그림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듯 찾아가는 재미가 끝내줍니다.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낸 그림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림 작가 토니 디터리지는 1920년대 공포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말처럼 이 책의 검은 배경과 은박의 느낌은 어두운 극장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책 속 그림들도 살펴봅니다. 달을 배경으로 보이는 빅토리아 풍의 저택. 이 저택은 물론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양식이래요.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화려해 보이고 번영을 누렸지만 정작 사회 내부에서는 흉흉한 사건이 일어나고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이 등장하는 괴기 소설이 유행했던 시대라고 하네요. 책에서 이 집을 배경으로 쓴 것은, 안과 겉이 다른 모순된 분위기를 말하는 것일까요? 또 클로시 모자를 쓰고 플래퍼 원피스를 입은 어여쁜 파리 아가씨의 모습은 미국의 ‘재즈 시대’라고 불렸던 1920년대에 유행했던 패션이랍니다. 파리 아가씨는 그 시대의 새로운 세대로서 매력 있고 자신감 넘치지만 결국 자신을 너무 믿고 타인을 경계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외에도 이 책은 볼거리들이 많습니다. 끊임없이 파리 아가씨에게 거미 아저씨의 정체에 대해 눈치를 주는 귀뚜라미 할아버지와 나비 부인, 이미 요리된 곤충들과 벽의 무늬들 하나하나가 재미를 주지요. 눈을 크게 뜨고 그림과 글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읽다보면 숨어있으면서 파리 아가씨를 도우려고 애쓰는 유령들을 보게 된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 역시 거미에게 희생당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달콤한 유혹의 결말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자신과 같은 일을 다시는 되풀이되게 만들지 않기 위해 파리 아가씨 곁을 맴돌며 요령껏 도우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그 애쓴 보람도 헛되게 파리 아가씨는 가장 치명적인 유혹의 손길을 이겨내지 못하고 제 발로 스스로 그 유혹의 중심부로 덜컥 들어서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답니다. 그 순간순간들을 재치있는 표정으로 그 음침한 응접실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흑백만으로도 표현해 낼 수 있다니 토니 디터리지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답니다. 

마지막에 거미가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글을 읽어보세요. 거미의 위치에서 자신을 정당화하지만 어린이들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고 있답니다. 이 세상에 거미만이 사냥꾼이 아니고 벌레만이 희생자가 아니라고. 우리 주변에 사냥꾼과 희생자들이 있답니다. 달콤한 유혹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맛있게 저녁식사 후 이야기를 전해주는 거미의 친절한 마음씨(?) 까지도 느낄 수 있답니다.

 아이와 함께 읽어나가다보면 그림이 주는 으스스한 느낌 때문에 겁을 잔뜩 먹고 바라봅니다. 그러면서도 그림이 주는 흥미로움에 눈을 빼앗기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파리가 점점 거미의 유혹의 손길에 빠져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외치게 된답니다. 이 쯤 되면 엄마가 해주고 싶어하는 말을 쉽게 이해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친절한 거미의 가르침이 다시 한번 아이를 꽉 잡아주면서 타일러 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