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값어치의 예술작품이 당신것이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가 로또에 당첨되면서 ’인생역전’의 대박실현을 맛보는 몇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혹 듣곤 한다.

하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후세 자신의 자화상이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또 문학작품속에 주인공이 된다면 고된 삶으로 어두운 1평 남짓한 공간이 편안하고 기쁨의 공간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빈센트 반 고흐는 그런 화가다. 불멸의 화가다.

시대의 아픔을 담은 소설, 인간내면을 후벼파는 소설에 맛을 들인 나는 ’스릴러’라는 개념이 한낱 흥미위주의 상업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한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스릴러소설과는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

이 책 <배반의 자화상>은 빈센트 반 고흐의 현존하는 자화상 2점 중 귀에 붕대를 감은 그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의 이야기다.

그리고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촉발했던 9.11테러를 시작으로 2주일간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건의 시작은 9.11테러 하루 전인 9월10일 영국의 귀족가문 엔트워스가의 주인이 살해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의문의 죽음.

그리고 9.11테러 몇시간전 미국의 최대금융그룹 총수 브라이스 펜스턴 회장 앞으로 소포가 하나 배달된다. 잘린 귀.

이 사이에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있다. 귀가 잘린 고흐의 자화상. 엔트워스가는 고흐의 그림을 소유하고 있는 집안이다.

이로써 저자 제프리 아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흐의 그림, 이 그림을 소유한 주인의 의문의 죽음, 그리고 배달된 잘린 귀. 미스터리 스릴러의 요소를 담은 상황설정을 결말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게 한다.

이야기의 중심이되는 주인공 안나 페트레스쿠. 안나는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체스크의 공포의 정치시절 죽음을 피해 미국에 정착했다. 이 정착을 도운 것은 바로 펜스턴 회장. 펜스턴의 아버지는 철도공무원으로 재직했으며, 이 후 펜스턴은 독재정권에서 정보를 파는 일을 담당했으며, 펜스턴의 수하로 소설속에 살인마로 등장하는 크란츠 역시 지하비밀조직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요원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를 쫓는 FBIㅇ요원 잭, 안나의 친구 티나, 펜스턴의 수하이지만 반전의 주인공이 되는 키프만, 그리고 엔트워스가의 안방마님 빅토리아 엔트워스와 그의 동생 아라벨라,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경시청의 렌턴총경 등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 루마니아 시절 독재자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안나의 계획에 큰 도움을 주는 세르게이. 

이 책 <배반의 자화상>은 엔트워스가, 펜스턴 그룹, 그리고 이 테두리의 인물들의 이야기로 국한된 듯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새로운 인물들이 또 등장하고 결말을 상상할 수 없도록 내용을 꾸민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누가 고흐그림을 가지고 있는가?

누가 고흐그림을 소유가게되는가?

목이잘린 3건의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

주인공 안나의 운명을 어떻게되는가?

이런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500여쪽에 달하는 책의 첫장부터 끝장까지 훑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반 고흐 애호가들이나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고흐의 작품 35점 중 귀를 자른 후에 그린 것은 단 두 점뿐이하고 한다. 그래서 귀가 잘린 자화상은 그 가치를 숫자로 매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런 가치때문에 미스터리스릴러의 중심에 세워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 하원의원이 된 저자 제프리 아처는 정치스캔들로 2년간 복역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체스크 정권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것 같다. 주인공의 국적을 루마니아로 설정한 것, 중간에 안나를 도와준 세르게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지를 회상하면서 그 참혹했던 현실을 소설속에서 고발했다.

저자의 정치적 소신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루마니아의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재판을 통해 차우체스크 부부가 교수형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식어가는 것을 목격했던 나도 기억한다.  

한편의 작품속에 우리들이 담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많다. 저자 역시도 자신의 작품속에 아주 많은 메세지들을 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이런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평가를 내리고 심지어는 독자 멋대로 작품을 평가한다.

제프리 아처의 다분히 정돈된 듯한 이 책 <배반의 자화상>을 통해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의 행방, 살인사건, 그림의 주인공, 그리고 독재정권의 후광으로 성공한 기업가 등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시켰다는데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가끔 세상의 중심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우선 '나'를 세상의 중심에다 놓고 삶의 방향을 정한다.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나로부터 시작하고 나라는 개인이 서로 얽히고 얽혀 복잡다양한 세상이 된다.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지 개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수도 있다. 시대라는 공간적인 의미는 개인의 삶이라는 것들이 모여서 이뤄진다. 반면 시대를 시간적으로 계산한다면 우리들 역시 시간의 선상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명인 작가의 <은밀한 유산>은 우선 백여년의 시간을 넘나들면 벌어지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다. 아니 우리들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공간적 개념에서 볼 때 우선 조선말기, 일본침략, 한일합방, 그리고 2007년 FTA협상까지 역사의 한 부분 부분이 이뤄져 줄거리를 만든다.

이 소설에서는 고라실과 너븐들이 나온다. 고라실과 너븐들은 이 소설의 시작이요 끝의 배경이며, 이야기의 시작이며, 그리고 우리 역사, 우리 고향이다. 이 두마을은 겉으로는 평화롭고 평온한 삶을 사는 가까운 이웃이지만 속내는 서로 앙숙이며, 으르렁거리는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대대로 자식복이 없어 대 잇기에 항상 어려움을 겪고 고민이던 고라실 마을, 반면 대이을 자식걱정은 대대로 하지 않는 너븐들사람들.

두 마을의 이야기는 너븐들 집안의 난설로부터 시작된다. 비운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난설.  그녀는 신식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3.1운동의 중심에 섰던 유관순을 만나게 된다.

이명인 작가는 이 부분에서 역사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서 역사속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의식,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위해 이야기판을 만들어 놨다. 역사의 한풀이를 위한 굿판을 벌인 그 이야기속에는 아픔이 있다.

결국 3.1운동에 참여하면서 관순이 모진 고문에 죽음을 당하는 그 날까지 난설은 도피와 유학생활로 전전긍긍 목숨만은 부지한다.

그리고 난설의 오빠들도 역시 일제 시대 학생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고 결국 죽게된다.

한가지 학생운동을 했던 당시 인물을 두고 후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정도로 취급했지만 후대 이들은 독립운동가의 반열에 오르게된다. 참 역사공부까지 할 정도의 줄거리다.  

고라실 집안이 대대손손 대를 이를 자식걱정을 하는 것은 원앙에 대한 저주하는 부분이 나온다.

결혼한 후 시집살이를 하던 고라실의 어느 여인이 결국 아이를 갖지 못해 나무에 목을 매 자실하고 그 나무가 벼락에 맞는다. 고라실 마음 사람들은 이 나무를 가지고 원앙 한쌍과 새끼 원앙 3마리를 만들고 가보로 여긴다. 이 원앙은 단순히 가보가 아니라 고라실의 족보를 이어주는 영물로 여긴다.

이 영물은 고라실에서 사라진다. 어떻게 사라진지 모르는 이 원앙.

80년이 지난 현재 고라실과 너븐들의 아들의 아들이 다시 만난다. 고라실과 너븐들을 한 가족으로 이어줄 것 같은 만남. 서로 마음을 열고 사랑을 하게 되는 현진과 영인. 

'어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그것으로 너는 세상의 중심이 되리라' 

한 가문에서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었듯이 우리는 그 어버지의 아들의 아들, 그리고 또 아들이라는 세대를 거쳐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나'다.

고라실이 왜 명문의 가문인지, 그래서 어떻게 멸문하지 않고 이어졌는지는 바로 우리 조상들, 우리 아버지들의 희생이 있었다. 아니 희생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삶의 이유라는 강한 의식이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속에서 예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금 종손집안에서 대를 잇기 위해서는 작은집에서 양자를 들여 멸문만은 막았다. 같은 집안의 씨는 그렇게 인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자는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 본관이 뭇엇인가, 어느파의 몇대손인가, 시조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낯설지는 않는다.

이명인 작가가 이 책 <은밀한 유산>을 집필했을 때도 우리의 뿌리에 대한 강한 갈증이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뿌리.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고 이념을 초월하고 우리의 삶을 초월하는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아마 은밀하게 세대를 거치며 내려오는 유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