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 넘어간다'는 말의 속뜻을 잠시 생각해본다.
이 책 <CEO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속고 속인다'는 말이 그다지 나쁘게만 들리지 않았다.
책 표지에는 '아는 것이 힘! 속지 말고 속아주자!'라는 문구가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속았을때의 기분은 비참하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를 속이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같다. 이 책을 읽고난 후에는 더 스릴있지 않을까?
나는 상사의 말에 힘을 얻기도 하고 때론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직장생활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을 얻었던 상사의 말은 십중팔구 보랏빛 청사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뤄진 것이 거의 없었다.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도 힘들었지만 일을 쉬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솔직한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대처해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와서 상사의 말이나 행동의 유형을 기억하기란 힘들지만 <CEO의 거짓말>을 읽고난 후 "아 맞아"라며 옛일을 떠올렸다.
이 책은 마흔다섯가지의 거짓말을 소개해놓고 있다.
뭐 이 정도로 거짓말을 모두 다 정리해놓기에는 부족하지만 독자로써 내가 읽어내려갔을 때 한번쯤은 경험했고 들었던 말이었다.
"남으면 여러분에게 전부 나눠주겠습니다"
어려웠던 경제시절-지금도 어렵지만-기업가들은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사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물질적인 공약을 서슴치않고 했다.
사실 나눠같기식의 기업문화가 정착됐다면 좋았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남아서 나눠갔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었다.
이 말에 대해 "남지 않으면 너희들에게는 국물도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순진한 직장인들은 이러한 CEO들의 말을 들을 때 '남으면'에 포인트를 두고 해석하지 않고 '전부 나눠주겠다'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CEO들의 낚시성 멘트, 즉 "내가 자네를 각별하게 생각하는거 알지?"라며 대부분 술자리에서 내뱉는 말,
직원들이, 특히 신입직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CEO들의 말이 있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하라고...!"
시간은 금인데 정말 천천히 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말대로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다가 낭패를 보는 직원들이 많다. 내 주변에서도 그런 상사, 동료, 부하직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에 가장 민감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사장이다. 그는 한달이라는 시간이 정확히 채워지면 반드시 직원들에게 월급을 줘야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단 하루도 늦추지 않고서 말이다.
이 밖에 "열심히 일해라, 내가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있다"는 분안조장성 멘트, "우리는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회사"라며 직원들에 대한 대우에 기준을 정하지 않는 행동,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소신껏 일하라"고 하지만 소신보다는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생각 등이 모두 우리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거짓말의 범주에 포함된다.
"내가 자제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뭐하나?"라고 말하지만 많은 CEO들은 직원들의 헌신과 희생이 필요한 상황이되면 습관적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자신의 말이 꼭 지켜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일부러 거짓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지켜지 못하면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거짓말인 것을...
재미있는 책이다.
거짓말 하나 하나를 분석한 저자의 내용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직장생활을 한다면 "혹시 저사람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의 마음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하는 선에서 그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신이 쌓이고 서로 속고 속이는 치열한 장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속지말자'가 아니라 '속더라도 알고 속자'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거짓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