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선생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저자 전우익 선생을 '깊은 산속 약초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전우익 선생을 생각하면 항상 간고등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전 선생은 서울을 다니러 올 때 그 먼길 비린내가 진동하는 간고등어 몇손을 들고 "신성생님 저 서울에 왔니더, 간고등어니더, 안동장에서 안 샀는겨. 산골이라 먹을 게 이것밖에 없는기라"며 건네주신다고 한다.

시골 노인의 모습과 자연인 전우익 선생의 그러한 모습이 그려진다.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이 뭔데>에서도 그랬듯이 전 선생은 시골에서 나무, 풀, 씨앗 등을 심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경외하는 삶을 산다.

이 책은 모두 편지글로 엮어졌다. 그래서 더하고 빼고 다듬고 가식적인 글이 아님을 알았다. 글의 깊이와 솔직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 '더불어사는 삶'을 주제로 방학 때면 성당에서 글짓기 모입을 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더불어사는 삶이 무엇인지, 공동체가 무엇인지, 함께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눈을 뜨게 됐다.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는 지금 어릴적 눈을 떴던 그 삶에 얼마나 충실하게 살고 있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볼 사이가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나만 혼자 잘 살아감에 의미를 두지 않고 싶다. 

<혼자만 잘 잘믄 무슨 재민겨>

우리는 모두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을 부여잡고 있으며, 서로 언제 놓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겻눈질하며 살얼음판위를 걷고 있다. 

부모와 자식, 친구, 연인, 부부, 사용자와 노동자, 그리고 인간과 자연 모두 원(서클) 안에서 바둥대며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 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운다.

노동자들이 임금투쟁을 하듯 농산물 제값받기 요구와 우리의 농사를 위축시키고 압살시키는 외국 농산물 수입반대투쟁도 하는가 봅니다.

세상이라는 틀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잘못된 틀은 사람을 잡습니다. 논밭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여겨 왔는데 세상이란 큰 틀이 잘못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깨달은 농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동투의 깃발아래 모인 노동자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위해 모이고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농민들 역시 일년 열두달 땀과 노력으로 기른 농산물이 제값을 받고 우리 식단에 오르기를 희망할 뿐인데... 

#엄동설한 눈 속에 삿갓 하나 받치고

보살님, 우리가 지금 빗자루 들고 쓸어야 할 것이 정말 눈입니까? 불도저로 약으로 눈을 밀어내고 녹이고 그 사람들이 지난날 그리고 앞으로도 영락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로는 민주와 통일의 물결까지 막을 장본인들임에 틀림없을 것 같아요.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풀을 뽑는 일이기도 합니다. 곡식은 뿌려야 나지만 옛날부터 지난해까지 떨어진 풀씨가 수없이 돋아납니다. 부정적인 역사의 유물과 유습들이 우리의 전지늘 가로막듯 잡초는 수없이 돋아납니다. 그걸 뽑아주지 않으면 곡식이 오그라지고 시들어 녹아 버립니다.  

잘사는 세상은 바로 이것인가 보다. 씨를 잘뿌리고 좋은 약을 주는 것보다 쭉정이를 잘라내고 필요없는 풀들을 속아내는 일이 더욱 중요하듯이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도 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선구자들이 올곧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옆에 기생하는 기생충들, 버러지들, 쭉정이 같은 인간들로 인해 그들의 모습이 퇴색되고 우매한 민중들을 정신병자로 만들지 않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구경꾼과 구경거리로 난무하는 세상에 아픔과 고통을 진정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순례자가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 전우익 선생의 마음이 느껴진다. 사람이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노동이 제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노동이 곧 사회적 실천이고 새 세상 만들기 운동이겠지요. 이것은 노동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 하는 말입니다만 노동의 고역에서 벗어나 노동 과정 자체도 즐거워야 하고 그 결과도 흐믓해야 합니다.

다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수 있는 신나고 즐거운 인생이라고 떳떳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삶이란 아픔이다.

인간이 집단적으로 진실로부터 뒷걸음질 치면 진실은 사방에서 더욱 가까이 인간을 포위해 들어온다. 하기야 나라에서 댐을 막는 것은 물만 싹게 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솔직하게 다목적 댐이라고 실토했지요. 그러자 충직한 백성들이 위락 시설을 만들어 맞장구를 쳐서 집단적으로 세상을 병들게 하니 궁합이 척척 맞아 떨어집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말라' 시인 푸쉬킨은 이런 싯구가 떠오른다.

진실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인간들은 그들이 짜놓은 퍼즐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서슴지 않고 하는 무서운 인간들. 이 인간들의 범주에 버젓이 나 또한 포함될 수 있지만 가급적이면 나는 그런 집단에 속하지 않고 싶은 열망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무척이나 자주하고 많이 한다.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텐데. 

#가짜와 진짜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말하고 하는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열정으로 다가가고 희생해본적이 있는가 반성해본다.

뿌리가 좋아야 잘 자라고 실한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있는 능력을 갖길 바랄 뿐이다.

뿌리는 근본인데 사람이 바뀌자면 역시 근본이 바뀌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람이 탄생할 수 없고 새로운 사람들의 집단적인 탄생 없이는 세상은 바뀌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도나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바뀐 토대위에서 제도가 새로워지는 것이 진짜 발전이지요. 사람은 그대로인데 제도만 바뀌어서야 페인트칠 색깔만 바뀐 가짜가 아닐까요?

전우익 선생의 이 책은 삶, 사랑, 우정, 자연, 사상, 통일, 국가 등 모든 분야에서 선생의 생각이 그대로 잘 나타나있는 산문집이다.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난 전 선생은 일제 시대 중학교를 마친 엘리트였지만, 해방 후 '민청'에서 청년 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되면서 징역살이를 한 고통의 시간을 안고 살아가는 노인이다.

선생은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에서 혼자 산다고 한다.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선정도서로 뽑히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읽혔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의 삶 역시 온 국민들이 지켜봤다.

'잘산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산골 한 노인의 안타까운 삶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깨달았으면 하는 욕망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민들레와 제비꽃, 그리고 제비와의 관계와 같이 도라지밭에서 얻은 자연법칙을 나도 발견하고 싶다.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캐듯이 나도 자연에서 뭔가 얻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하는 책 속의 발췌문>

정신과 육체의 수많은 병이 나돌고 사람들은 약으로 수술로 병을 다스리려 드는데 말도 안돼요. 병은 크게는 세상에서 작게는 생황에서 옵니다만 세상과 각자의 삶을 고치려 들지 않고 병만 고치려하는 것 같아요. 

올 봄에 도라지밭에서 나는 냉혹한 자연법칙과 아무리 힘겹고 어려워도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문제는 풀린다는 걸 배웠습니다. 미봉책인 제초제를 썼다면 나의 삭막한 인간성을 더욱 처참해졌을 거고 뿌리가 살아 남은 풀은 다시 돋어나 어차피 다시 풀을 뽑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포기와 대응, 미봉책과 근원적 해결, 발뺌과 책을 흔쾌히 지고 살아가는 겸손한 외경심, 이런 것들을 풀을 뽑으면서 되새겨 봤습니다.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애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