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형식과 경이로운 내용의 책이다.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는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 박사가 자세츠키라는 한 사람을 25년간 연구하고 관찰했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럼 자세츠키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전쟁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또 전쟁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어 심한 뇌손상으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비롯해 말과 글까지 잃어버린 기억상실증과 실어증 환자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에 대한 관찰과 연구, 그리고 왜 기억상실증에 걸렸으며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의 의학적인 기록은 물론 인간적인 연민까지 보여준다.

'기억'에 관한 보고서. 의학적인 연구논문의 성격을 넘어서 기억을 잃어버린 한 인간의 삶을 관찰하면서 우리들에게도 언젠가 있을 기억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를 일깨워준다. 

이 책에서 "인간의 삶은 되돌아보고, 진실로 기억되고 적절히 활용되기 전까지는 진정한 삶이 아니다"라는 보편적인 진리가 숨어 있다.(18쪽) 

이 책의 형식은 연구와 관찰에 대한 루리야 박사의 기록과 함께 자세츠키와의 대화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기억상실과 실어증을 앓고 있던 그는 기억과 생각이 떠오를때마다 메모를 했다. 어떤 기억이 떠오르고 어떤 생각이 머리속에 맴돌면 자기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이는 아예 기억 자체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뇌손상은 기억까지 잃게되는 현상을 병리적이고 의학적인 상황으로만 정의내릴 수 없다.

자세츠키는 불굴의 의지와 인내심으로 20년 넘게 3천쪽에 달하는 메모를 썼다고 한다.

그는 전쟁 중에 총상을 입었으며, 그 부분이 좌반구 두정엽이다. 이 부분이 손상될 경우 신체적 특이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쓰려고 할 경우 그 자체에 대한 행위는 인지하지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써야하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을 전혀 알지 못한다.  

사물을 인식할 수 없다. 연필로 글자를 따라 왼쪽으로 간다면 연필의 움직임이 시작된 곳은 볼 수 있지만 글자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66쪽)

다시 말해 '탁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물들과 연관이 있는지 신속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저 그 단어가 친숙하다고 느낄 뿐 더 이상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145쪽) 

'공간인식장애' 그가 설명하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장작을 쪼개고 수저를 잡을 때 자신의 팔을 통제할 수 없으며 자신의 방에서 물건을 찾을 때도 눈가리개를 하고 손으로 더듬어 찾는 것처럼 서투른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자주 말하곤 하는 '공간인식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은 무엇일까?(79쪽)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의사와 환자의 대화로 이뤄졌다. 그렇다면 왜 이런 내용을 담았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것은 의학적으로 재활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의학의 힘을 빌어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의 처절한 투쟁이다. 20년동안 3천쪽에 달하는 메모를 남겼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회자거리가 아니지만 글을 쓰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조차 잃어버린 남자에게는 처절한 삶의 행위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읽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었다.(120쪽) 내가 이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실어증을 극복하고 싶기 때문이다.(122쪽) 

우리는 사고는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기억을 잃어버린다. 아마도 '치매'라고 잘 알려진 병리적인 현상이다.

말과 글을 잃어버리는 것을 넘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목석같은 존재가 된다면 우리는 어떨까?

모음 자음 숫자 하나 하나 다시 배워가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처절하게 싸워갈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들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이야기.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기묘하고 이상한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생각과 표현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의 이야기다.

아니면 설명할 수 있어도 쉽게 이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현상을 기묘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 책 <기묘한 신혼여행>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이 책은 표제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묘한 신혼여행>을 비롯해 모두 11편의 단편들을 한데 모아놓은 단편집이다.

소설들의 특징은 남자와 여자의 성에 대한 혼란, 기괴한 살인사건, 분노와 복수의 기록, 웨딩드레스에 대한 집착 등 현실속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사이의 성의 혼란속에서 화상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은 주인공, 여자도 남자도 아닌 괴물이 되었다고 울부짖는 그녀의 마지막이 인상적인 <마지막 꽃다발>이 첫장을 장식했다.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사람이 아닐까요'라는 말을 남기며 어릴적 이모를 밀어 물에 빠져 죽게했던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주는 <붉은 강>

여자의 상반신과 남자의 하반신이 하나가 된 살인현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파헤친다는 내용의 <겹쳐서 두개> 등 모든 작품들이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범줄주를 넘어서 인간세계에서 해석하기 힘든 일들이 주를 이룬다.

한편으로는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작가들의 노력이 돋보이면서도 단순한 추리물이 아닌 지나칠정도로 상상력이 가미된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주는 선물이 무엇일까?

<기묘한 신혼여행>에서는 신부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과 신혼여행 등 누구나 한번쯤 꿈꾸고 영원히 한번밖에 없기 때문에 설레는 결혼을 주제로 한다. 마지막 반전은 시쳇말로 '뜨아~'를 연발하게 한다.

"당신, 바보아냐. 이 녀석은 여자가 아니야. 버젓한 남자라고.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내 눈은 못 속여."

"오늘 같은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이 책 <기묘한 신혼여행>은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표제처럼 기묘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기묘한 이야기들속에 해학과 웃음이 있다. 인간의 끝이 없는 욕망의 부조리를 꼬집는 작가들의 역량이 돋보이며, 그 사건의 진행이 빠르면 예상외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트렌스젠더, 호모, 레즈비언 등 우리가 금기시하고 있는 성에 대한 교착에 대해 저자들은 아무런 꺼리김없이 풀어나가고 있다. 이 점이 단편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미친 타우너 휘트니.

이 책의 처음은 주인공 타우너 휘트니가 1인칭 화자로 자신은 미쳤으며 5대째 집안 내력은 미친 것을 자랑한다고 밝힌다.

<레이스 읽는 여인>은 독특한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독특함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를 정도로. 심하게 말하면 말하려는 것들을 한줄 두줄 읽다보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이 책은  제목에 '레이스'가 등장했다는 것을 성장소설이나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미뤄 짐작했다. 하지만 첫장을 펼치고 읽는 순간 미스터리 소설이나 드라마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럼 도대체 '레이스'의 의미는?

저자 브루노니아 배리는 미국에서 레이스를 보고 점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레이스 점을 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완성했다. 타우너 휘트니는 아마도 레이스의 모양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과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예지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자신까지 5대째 내려오는 집안내력을. 중간 중간에서 나오지만 주인공은 스스로 미쳤다고 할만한 이유가 있다. 쌍둥이 동생의 죽음이후 환각과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첫째 레이스점을 치는 집안, 그 집안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것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 하다. 듣도 보도 못하고 처음 접하는 레이스점. 이 소설의 매력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는가?

고향을 떠났던 주인공이 자신의 안식처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의 고모할머니의 죽음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줄거리.

전개되는 이야기속에서 각 부분 부분마다 '레이스 읽기 가이드'가 등장한다. 저자는 독자의 주위를 환기시키고 레이스점과 연결시켜 소설의 주요 단서를 제공하는 매개체로 활용한다.

이것이 바로 두번째 흥미로운 특징이다.

 

|레이스 읽기 가이드|

레이스를 투명하게 하는 것은 기쁨

읽는 사람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기도와 명상

읽히는 사람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오직 호흡이다 

|레이스 읽기 가이드|

중요한 것은 레이스에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레이스 읽는 사람이 가장 명심해야 할 의무이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결말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가진 예지력과 쌍둥이 동생의 죽음사이에 회의를 느끼고 고향을 떠나지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향 세일럼은 '마녀사냥'이라는 치욕적인 미국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5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비밀을 알게된다.

그렇다면 '가족사의 비밀'을 과연 무엇일까? 아마 비밀은 레이스를 통해 점을 치는 예지력, 마녀사냥을 통해 억울한 죽음, 진실과 거짓으로 점철된 것이다.

예지력, 청교도들이 정착해 만든 미국사에서 캘빈주의자들과 도착민들의 오해의 역사가 들춰진다. 이 부분이 굳게 닫힌 주인공 타우너 휘트니의 가족사의 열쇠가 등장한다.

분명히 소설이 허구임을 밝히는 저자는 배경과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인물과 인물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 예를들면 마녀사냥, 레이스점, 한 고장에서 뿌리는 내린 가족 5대의 삶은 곁들였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 과연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열심히 찾는다. 만약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저자의 능력을 탓하거나 자신의 무능을 한탄한다. 이 소설에서도 '레이스'를 왜 등장시켰으며 '마녀사냥'을 통해 현대의 어떤 부조리를 지적하려 하는지 발견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난해하지만 의미가 많은 소설이었다.

잔잔하게 전개되는 줄거리 자체와 문체 역시 저자의 특징이겠지만 인내를 필요로 하는 소설이었다.  

<레이스 읽는 여인>의 여인들은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용서와 이해로 감싸 안는다. 할머니는 딸과 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타우너의 엄마 메이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인들의 탈출을 돕고 보금자리와 일을 제공한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타우너와 신경전을 벌이던 로버타 역시 위험에 처한 타우너를 돕는다. 남자들의 세계가 의리와 우애로 맺어져 있다면 여인들의 세계는 깊은 공감과 끈끈한 유대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각 장의 서두에 삽입되어 시처럼 잠언처럼 독자를 이끄는 '레이스 읽기 가이드'는 타우너의 할머니가 레이스 읽는 여인들을 위해 쓴 것으로, 레이스를 만드는 제작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소설의 리얼리티를 강화한다. 특히 베를 짜듯 여인들이 함께 모여 실을 잣고 숨죽여 레이스를 완성하는 모습에서 ‘함께 먼 길 걸어온’ 여인들의 유대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숨 쉴 틈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 문장의 힘, 미스터리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레이스 읽는 여인』은 재미와 감동을 넘어 가슴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독자를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