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오늘 20년전 또는 30년전 나의 모습이었는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면, 지금 나의 처지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거리다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진과 편지를 보면 과거의 기억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오랜 시간동안 변화된 나의 모습은 물론 시공간을 초월한 기억에 대한 음미는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고 행복이다.

이 책 <황혼>은 초등학교 졸업기념으로 묻은 '타임캡슐'을 시작으로 한 <나이프>, <소년, 세상을 만나다>, <비타민F>의 작가 시게마츠 기요시의 소설이다.

'황혼'이라는 단어는 흔히 죽음을 앞두고 몸과 마음이 자연적으로 마모된 사람들에게 부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이로는 거의 일흔 이상 칠순을 넘기신 어르신들에게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단어다. 그럼 이 책의 제목은 왜 '황혼'일까?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모두 칠순이 넘은 노인들일까?

책속의 등장인물들은 초등학교 졸업기념으로 묻은 타임캡슐을 열기 위해 26년만에 모인 열일곱명의 동창생들. 그러니까 마흔살의 남녀다.

또 한명 이들의 담임선생님이었던 '마리코가 시라이시'

소설은 이들이 타임캡슐을 열기 위해 모이는 장면부터 시작되고 그 속에 "여러분은 행복한가요?"라는 글귀가 적힌 선생님의 편지가 발견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없는 선생님. 복잡하게 얽힌 치정관계로 살해당한 선생님. 당시 이들의 담임선생님은 지금 한자리에 모은 열일곱명의 동창들과 같은 나이다. '행복'이라는 질문을 던진 한 통의 편지로부터 이들의 삶이 치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설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식으로 '남과 다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주변에 좋지 않게 보여서, 장래에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    라, 풍류를  즐기는 척하는 사람은 몹시 외로움을 타서 별일 아닐 때에도 절실한 걸 억지로 찾아내어 풍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동안 저절로 터무니없이  들썽이는 모습이 된다"(100쪽)

이 소설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설정한 드라마 같은 내용이다.

왜 26년이 지난 이들은 한자리에 모였으며, 이들이 모인 지금 이 순간 26년전 그들이 꿈꿔왔고 기대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잔잔하면서도 실랄하게 드러난다.

억대 일천엔에서 삼천엔으로 억대연봉을 받으며 경제적인 부와 자리를 차지했지만-모두 주인공들의 이름은 생략한다-자신이 꿈꿔왔던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잃어버리고 사는 인물. 하루 하루 입시에 나오는 문제를 적중하는 것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붓지만 정작 스스로의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길 없이 물간 생선취급받는 학원강사.

언제 짤릴지 몰라 하루 하루 살얼음판을 걸으며 후배들을 경계하고 동료애를 느낄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상사한테 비위를 맞추는 수동적이고 불쌍한 인간. 결혼과 이혼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자식들에게까지는 그 짐을 지우려하지 않는 남녀 동창.

남편으로부터 받는 폭력과 피박을 피해 안식처를 찾는 여인의 숨가쁜 곡예. 

......난, 지기 싫어하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 지는 것이 싫어서 거기서 필사적으로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과 지는 것이 싫    어서 거기에서  도망쳐서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장소를 찾는 사람. 우리 남편은 도망치는 편이야. 거짓말 같을지 모르겠지만 그래. 아    마 원래 성격이 그럴 거라고 생 각해. 믿을 수 있니?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교롭게도 질 만한 장소에 있지 않았던 것뿐이야.(186쪽)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들의 마흔살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남긴 선생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치정에 얽혀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선생님의 모습에서 이들 동창들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학교가 없어지는 계기로 만난 이들은 26년전 자신들의 보물과 시간속에서 잃어버린 보물을 서로 가진 채 마주앉아 있다.

꿈은 온데간데 없고 희망을 꿈꾸기에는 너무 먼 여정으로 피로했으며, 이제 우뚝서 다시 걸음을 재촉할 기운마저 26년속으로 내팽게쳐버렸다.

이 소설 <황혼>은 잔잔한 드라마같은 소설이다.

인간내면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유감없이 발휘되며 우리의 꿈과 희망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예리한 칼날처럼 번득인다.

한번쯤 나의 타임캡슐에는 무엇을 담았을지 아니면 앞으로 황혼에 무엇을 담을지 생각해봐야겠다.    

"용기란 건 신기하지. 옳은 일을 하는 용기도 있고 잘못된 일을 하는 용기도 있어. 잘못된 것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그건 당연한 얘    기지만, 인간이 란 잘못된 일을 할 때도 있어. 스스로는 옳다고 믿고 있어도 타인이 보기에는 잘못된 일도 많이 있는 거야. 이쪽에서    보면 옳아도 저쪽에서 보면 잘 못이기도 하고 말이야"(313쪽)

 

소설 <밀레니엄>은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넘나드는 장편의 작품이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고 있으면 여유가 느껴지고 사건발생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긴장감이나 스릴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같은 장르의 소설과 비교해 특이한 구조다.

오로라의 나라, 눈과 순록이 뛰어노는 풍경, 그리고 노벨상 등을 떠올일 수 있는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걸맞는 한벌의 옷을 입혀논 듯하다.

 칙릿이나 잔잔한 미스터리 소설과는 구분되는 이 소설만의 특징은 방대한 줄거리의 시간적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역자는 이 작품을 고전에 바탕을 둔 '밀실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소설이 가지고 있는 잔인함이나 빠른 전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연출 등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 밀레니엄은 탐사보도 전문 시사경제월간지의 이름이다. 모든 사건은 이 밀레니엄속에서, 즉 밀레니엄과 관련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참 친절하게도 앞장에 등장인물을 소개시켜 준 것은 다행이다.

만약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없었다면 읽는 내내 인물의 이름이나 직업, 심지어는 말이나 성격, 행동에 대해 시선을 맞춰 전체적인 줄거리를 놓칠 수 있었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이 경제전문지 기자로 '반예르' 그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의 중심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중심이란 사건발생의 매개가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는 키를 가지고 있으며 행동으로 옮기는 중심주체다.

또 중요한 인물 해커이자 보안업체 개인정보 조사원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대기업 반예르 그룹에서 은퇴한 전직 회장 헨리크 반예르 두명이 등장한다.

전직 회장에게는 형의 손녀 하리에트 반예르가 있었으며, 사건은 매년 은퇴한 회장의 생일에 똑같은 액자가-손녀가 선물해 준 것과 똑같은-배달되면서 시작된다.

간단한 설명을 들었을 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일들. 그렇지만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잔잔한 흐름속에서 거대한 파도를 숨기고 있는 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잔잔한 흐름속의 거대한 파도는 이 사건과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거래. 한마디로 두명의 인물간 거래를 통해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아마도 이 작품과 함께 몇백쪽이 더 첨가되도 충분히 이야기거리가 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녀의 죽음과 매년 배달되는 유화액자, 그리고 재벌가와 연쇄살인의 고리는 어떻게 이어놓았을까? 이 책의 줄타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건의 해결이 끝이 아닌 시작.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사실 지루함으로 인해 사건의 실마리와 해결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반부와 종반부로 갈수록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웨덴 미스터리에 대한 폐인모드'가 시작된다.

스웨덴 최대 금융사건이 '베네르스트룀 사건'이 등장하지만 이는 줄거리에 등장하는 하나의 씨실 역할뿐이다. 하리에트 사건,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반예르가의 역사, 밀레니엄이 실체 등 복잡다양하고 무수한 복선이 등장한다.

앞서 말했듯이 자칫 시선을 놓치거나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책을 첫장부터 다시 긁적이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럴정도로 방대하지만 정교하고 지루하지만 덮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또 하나 전직 기자출신인 저자는 스웨덴의 사회적 역사적 현상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풀어내고 있는 듯 보였다.

역사적인 배경, 금융사건, 살인사건, 그리고 재벌들의 부패와 정경유착 등이 하나의 사건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독자들의 터질 듯한 호기심은 이내 수그러든다. 

 

제2의 달이 출현한다면 어떤 혼란이 올까?

제3, 제4의 달의 출현으로 지구에 중력이 없어진다면 과연 인간들의 삶은 어떻게될까?

모두 상상속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고 호기심이 인다.

이 책 <무중력 증후군>은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저자 윤고은은 약관의 나이 마지막날에 독특한 소설 하나를 내놓았다.

소설속 주인공은 우리 시대 전형적인 셀러리맨이다. 대학을 졸업 후 짧은 시간동안 회사 여덟곳을 옮겨다닌 평범한 사회인으로 현재는 땅을 판다.

입사하자마자 과장으로 시작하는 회사. 속주머니에 사직서를 항상 갖고 다니며 언제든지 회사를 떠야겠다고 생각하는 직장인.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의 형은 어릴적부터 신동이라며 공부를 잘했지만 주인공은 정반대다. 학교졸업 후 형은 고시공부를 하고 주인공은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무중력 증후군>은 평범한 이 시대 남성을 주인공으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저자 특유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평범한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소재설정이다.

저자는 제2, 제3의 달이 출현으로 지구가 무중력이 된다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이상징후를 느끼는 '무중력 중후군'에 걸린다는 설정이다.

달나라 여행을 준비해 달의 땅을 파는 사람들, 달 특집 토론회, 달나라 납골당 주식회사, 달의 몰락 등의 소재는 상상을 넘어서 큰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다.

이어 저자의 과감하고 거침없는 언어의 표현이다.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라든지 어제 자녁 제2의 달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되었다는 둥 달구경 간다는 엄마의 편지와 한달동안 집을 나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아직 나이 어린 작가지만 표현력만은 어느 누구의 상상력을 초월하고 있다.

저자의 <무중력 증후군>은 달의 복제와 증식이 지구인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라고 한다. 주인공을 통해 패배의식과 그늘진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럼 왜 무중력일까? 지구에 중력이 사라지면 인간의 삶은 유지될 수 있을까? 그것은 저자만의 상상력으로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신종 질병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현미경으로 양파의 단면을 보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양파의 단면을 보던 순간을 기억하며 한겹 한겹 버껴내면 새로움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작품속에 쏟아냈다.

중력이 사라지면 그 순간부터 평범한 인간을 거부하게 된다. 중력이 있기 때문에 발을 땅에 디딜 수 있고 그러저럭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중력이 사라지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중력이 없으면 저자의 말대로 일반적이고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