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은서 편입돼 있었던 공화국들이 독립선언과 함께 주권국가로 재편성되면서 붕괴돼 재정러시아시대의 명맥을 이어 수도를 모스크바로 하는 러시아로 지금 시대를 맞았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앙아시아와 유럽 접경지역 공화국들은 잦은 내전과 서구 열강들의 간섭, 그리고 인종분쟁 등을 통해 수많은 국민들의 피이 대가를 치러야했다. 역사속에서 지워질 수 없는 끔찍한 홀로코스트였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 한 채 소설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드>를 읽었다면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그리고 아들로써 또 아버지로써 남편으로써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민속에서 살았는지 좀 더 실감하며 느겼을 것이다.
책 표지를 보면 ’톨스토이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슬픈 영웅이야기’라는 부제가 눈에 띤다. 이 정도로 소설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하지 무라드’가 바로 인간이며 영웅이며 이 소설의 비운의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슬픈 영웅’이라는 카피를 통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도 언뜻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중반 카프카스 전쟁(코카서스 전쟁)이다. 전쟁의 중심에는 러시아와 체첸, 그리고 그루지아가 있다.
이 당시 러시아는 소수민족-현재 중앙아시아는 물론 동유럽과 인접해 있는 공화국에 해당될 것이다-들과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카프카스 전쟁의 중심에는 러시아의 니콜라이가 있었으며 체첸의 샤밀이 있었고 그 사이에 고뇌하는 장교 하지 무라드가 있었다.
실제 톨스토이는 당시 하지 무라드를 직접 만난 적이 있으며, 그의 활약상이나 생활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 역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그 감동을 노년에 이르러 회고하면 쓴 작품이다.
대강의 줄거리를 보면 하지무라드는 러시아로 투항한다.
음모와 배신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쫓기는 신세가 된 하지 무라드는 러시아로 투항하게 되고 그의 가족들은 결국 포로신세로 전락해 목숨을 담보로 잡힌다. 그런 와중에 하지 무라드는 가족들의 안부가 걱정되면서도 구출작전을 위해 러시아에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톨스토이는 하지 무라드의 용맹함 뒤에 가족을 걱정하는 자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엿보인다.
투항한 하지 무라드가 며칠 동안 심문을 받고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그를 지켜보았던 주변인물의 증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운명이 불확실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거처면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이 말에 따르면 하지 무라드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종일 기도만 한다고 합니다. 또 몇 명의 코사크 병사를 동반하는 조건으로 말을 타고 나갈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했답니다......(중략)......그는 매일 나를 찾아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없는지 묻고 또 우리가 잡아둔 모든 포로들을 그러모아 자신의 가족과 맞바꿔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거듭하여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가족을 구해 주시오. 그런 다음 내게 당신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오.(133쪽)
아마 이 부분은 나중에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는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코사크 병사를 동반하는 조건으로 말을 타고 가족을 구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러시아 정부는 묵살한다. 이 부분에서 그가 가족을 걱정하고 전선에서는 용맹한 군인일지 모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걱정은 어느 누구보다고 넓고 깊다. 톨스토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지무라드를 보면서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를 위해 이런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지 무라드가 러시아로 투항하자 그의 가족은 곧바로 베데노로 이송된 뒤 감금 상태에서 샤밀의 결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 무라드의 노모 파티마트와 다섯 명의 아이들은 거느린 두 아내는 지휘관 이브라힘 라시드의 집에 감금된 채 감시병들의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하지 무라드의 열여덟 살 난 아들 유수프는 투옥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곱명의 다른 죄인들과 함께 2미터가 넘는 깊은 구덩이에 들어가 있었다.(181쪽)
소설 중간 중간 톨스토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사건의 발단에 대한 배경을 너무도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 왜 하지 무라드가 러시아로 투항하게 됐는지에 대한 엉킨 실타래를 풀어준다. 아마 투항의 이유는 단지 하지무라드 개인사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와 주변 나라들의 관계까지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각 지방의 실권을 잡은 관리들은 착취와 착복, 그리고 횡령이 끊이질 않았고 저마다 독자적인 행보를 통해 러시아를 위협했으며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힘을 과시했다. 그리고 거짓과 음모가 난무했으며, 말 한마디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풍조였다.
이런 모습에 톨스토이는 환멸을 느꼈으며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그런 자신의 입장을 하지 무라드라는 용맹한 장교에게 투영시켰는지 모르겠다.
결국 혼란과 혼탁의 시간이 지나가고 하지 무라드는 결심을 한다.
가족을 위한 자신의 선택을 믿기로 한 것이다. 설사 그것이 죽음과 연관된다 하더라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투항한 러시아에서 결심과 함께 가족에 대한 마지막 그리움의 꿈을 꾼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가 다섯살이었을 때만 하더라도 꽤 몸무게가 나가는 그를 바구니에 넣어 등어 업고 산 속을 지나 아버지에게 찾아간 적도 있었다......(중략).....그는 물을 뜨러 가는 어머니의 널따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 저수지까지 쫓아가곤 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그의 머리를 밀었던 날 벽에 걸린 황동 거울에서 푸른빛을 띤 자신의 둥근 머리를 보고 그가 무척이나 놀랬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한동안 자신의 어렸을 때를 생각하던 하지 무라드는 곧 그의 사랑한느 아들 유수프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아들의 머리를 처음 밀어준 사람이 바로 그였는데 어느새 유수프는 잘생긴 젊은이로 성장해 있었다. "너는 남아 있는 게 나을 것이야. 아버지가 없는 동안 네가 어머니와 할머니를?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222-223쪽)</font><font face=">
지난 8월 그루지야 내 남 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을 둘러싼 민족갈등이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으로 벌어진 일이 있다.
또 십수년전에는 체첸공화국의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아마도 러시아의 역사는 민족갈등과 함께 피로 얼룩진 역사일 것이다.
그것이 민족분쟁이든 아니면 자원전쟁이든 궁극적으로 열강들의 간섭과 부채질이든 말이다.
한가지 이 소설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드>는 단순한 영웅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물을 통해 톨스토이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으며, 한 인간의 갈등속에서 아픈 역사를 그려내고 있었다. 우리도 하지 무라드라는 인물의 선택을 놓고 우리 자화상을 한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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