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 형태의 지구중심부의 아시아를 장장 400여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몇번씩 나가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리는 종마처럼 그렇게 정열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동양기행>을 펼치는 순간 든 생각이다.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를 연결해주는 찬란한 문화의 나라 터키의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앙카라, 지중해, 흑해,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버마(지금은 미얀마), 태국, 중국, 홍콩, 한국,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일본까지 대장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미술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방랑을 시작한 저자 후지와라 신야는 사진작가로 전업하면서 사진을 통해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우선 수백장의 사진과  보고 듣도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한 글로 이뤄져 있는 이 책 <동양기행>은 세계일주를 통해-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동양일주, 즉 아시아질주-사진기속에 각기 다른 인종들의 삶을 담았다.

특히 저자는 사진속에 사람과 삶을 담았다고 했지만 수많은 사진들의 많은 부분이 여자들과 책에서 유곽이라고 표현하는 창녀들의 사는 곳이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는 창부도 등장한다.

적나라하게 그들의 교태와 적나라한 나신을 찍은 사진들은 언듯보면 장난과 유머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진속에 담은 그들의 모습은 그 나라 사람들의 삶 그 자체고 그들의 힘들고 고역스런 모습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아마도 삶과 성(性)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거리와 풍경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당시 80년대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지금같이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거리는 아니다. 시장, 해변가, 강가, 허물어져가는 서민들의 주거지 등이다. 우리도 80년대 초반을 생각하며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속에서 뭔가 애달픔이 느껴진다.

풍경 역시 살아움직이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활기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대지, 우뚝솟은 산, 유유히 흐르는 강물 등 흔히 자연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들을 포함해 사람들이다.  

또 빼놓고 지나갈 수 없는 것이 바로 티베트, 인도 등 흔히 중국과 접경지대의 승려들과의 조우다. 저다는 며칠을 들어가 승려들과 함께 수도승의 삶을 체험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이 정확히 체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여행이라고 할지 모호하지만 저자는 자신을 희생하고 극단의 공포와 고통을 겪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 한번 길러가고 나무를 하고 어린 새싹을 캐기 위해 수킬로미터씩 산 아래로 내려가는 그들의 삶을 사진기에 담으면서 아마도 너무 원시적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저자는 스켜가는 사람이고 그들은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긴 여정속에서도 경험하고 체험한 일들이다.

처음 보는 여성을 도와 병원에 가질 않나 창녀에게 잘못걸려 뺨을 맞았으며, 마약상들과의 조우, 그리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음식과의 만남 등이다.

그리고 아까운 생선을 버리고 짓밟고 썩어 문드러지게 놔두는 상인들의 모습을 보고 놀란 저자.

이 모든 것들이 사진과 함께 어우려지면서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생생하게 전해주는 30년전 빛바랜 사진속에서 우리들의 기억을 더듬어 느낄 수 있다. 눈과 비바람, 하늘과 바다와 강과 산, 음식과 옷과 생활, 그리고 그들이 풍기는 요염한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몸짓들. 이 모든 것들이 두권의 책에 담겨 있다.  

마지막 일본으로 가기전에 서울, 대전, 부산을 거쳐간 흔적을 남긴 저자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다.

모락 모락 피어나는 시장통의 김을 보면서 지금은 사라진 것들에 대해 아쉬워했던 저자, 그리고 한국인들의 따뜻하고 친절함을 강조했던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어린시절 80년대 그 골목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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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不滅)이란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음'을 말한다.

말 그대로 멸하지 않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명사이며,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진행형의 동사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럼 '불멸의 사랑'이라면 말 그대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대상은 물론 시공간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는 상태,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이 평생-심지어는 죽어서도-동안 어느 곳에 있든지 떠나지 않고 사랑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

 

앤드루 데이비드슨의 소설 <가고일>은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큰 뼈대로 그 사랑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결말지어지는지를 내용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속에서 말하는 '사랑'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불같은 사랑,  애증관계의 사랑, 그리고 남녀를 초월한 사랑 등 모든 형태를 초월한다.

초월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다.

주인공 잭은 침대에 누워 그의 운명적인 사람을 만난다. 마리안네 엥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본 잭은 본능으로 "예상보다 형편없잖아"라는 말로 첫 대화를 시작한다.

이 만남은 잭이 술과 마약에 취해 자동차 사고를 당해 얼굴은 물론 몸 전체를 보면 인간이라고 절대 알아볼 수 없는 흉칙한 모습을 갖게 된다.

잭은 포르노배우다. 그것도 잘 나가는 배우. 술과 여자가 끊이질 않고 심지어는 마약을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에 오른다. 그런 잭이 사고를 당해 조금씩 조금씩 치료를 받지만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침대에 의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마리안네 엥겔.

이쯤에서 소설의 줄거리가 윤곽이 드러난다. 마리안네는 주기적으로 잭 앞에서 나타나 병수발을 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700년전 그들의 관계를 한꺼플 한꺼플 비밀을 벗겨내 준다.

마리안네는 갓난아기 때 수도원 앞에 버려져 자란다. 수도원으로 화상을 입고 찾아온 용병을 극진히 간호한 마리안네와 그 병은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낳지만 당시 용병은 죽음으로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규칙때문에 그들앞에는 고통의  삶이 뒤따른다.

환상의 동화를 보는 듯한 소설의 전개. 장편소설의 특징처럼 시공간을 초월하며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방대하고 스케일이 크지만 매력적이고 잔잔한 감동이 섞여있다.

 

가고일은 사전적인 의미로 기독교 교회의 지붕 네 귀퉁이에 추악한 형태를 한 괴물로 악마의 이름으로 매도된 이교도의 신이다. 가고일은 저승세계에 살면서 빗물을 모으는 풍요의 괴물이며 높은 지위의 영을 모시면서 호위하는 존재라고도 한다.

이런 가고일이 교회 지붕에 올라와 있는 이유는 믿음이 없으면 괴물에게 잡아먹힌다는 가짜신앙에 대한 위협이였고, 악마와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부적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가고일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고 많은 사연을 가진 상징이다.

그 모습은 쉽게 가까이갈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럽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끔직하다. 아마도 가고일이란 제목은 주인공 잭을 투영시킨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그렇다면 마리안네는 그런 혐오스런 상징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대상으로 가고일에 대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다.

저자 앤드류 데이비드슨은 가고일의 전설을 접하고 아마 이 소설을 구상했을 것이다. 아니면 외모를 통해 세상과 단절된 인간들의 사랑을 떳떳하게 밝혀주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가고일의 전설처럼 잭은 자신을 희생해 신앙을 지켜주고 악령을 쫓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몰막라 하지만 자신보다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한 대신 희생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동화와 전설의 요소가 적절히 녹아들었으며, 그 때문에 나름대로 매력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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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물고기여, 작은 황금 물고기여, 조심하라!

세상에는 너를 노리는 올가미와 그물이 수없이 많으니. 

한 인간의 모진 삶이 아름다울 수 있지만 얼마나 처절해 밑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는 아는가?

그런 삶은 우리들의 내면에서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통해 항상 갈등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투쟁을 거듭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저마다 다른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그 운명의 형태는 부유와 가난, 재능과 무식, 지혜와 무례 등 항상 두가지의 정반대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구한 운명'이라는 말은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태어나더라도 그 사람의 미래는 달라진다는 것 일게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 <황금 물고기>는 이런 운명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운명의 회귀,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거슬로 올라와 산란을 하고 찬란했던 자신의 운명을 마감하는 그런 회귀말이다.

아마도 <황금 물고기>에서도 어린 흑인소녀를 통해 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모습은 모두 보여줬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흑인소녀 '라일라'. 자신의 정확한 이름도 모른 채 예닐곱 살에 유괴를 당하고 자신을 산 여자가 부른 이름 '라일라'를 자신의 본명으로 생각하면서 커간다.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할 나이에 유괴를 당한 라일라는 이 시점부터 평범한 삶을 온데 간데 없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일들과 부딪히며 살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온 라일라는 프랑스, 미국, 유럽, 그리고 회교도들의 나라에서 온갖 일에 휘말리면서 갖은 고생을 한다. 

벽에서는 지린내가 진동했고, 우물의 물은 검게 변색되어 마실 수 없었거 벌거벗은 아이들이 쓰레기더미에서 놀고 있었으며, 새카맣게 그을은 어린 소녀들은 나뭇단을 져나르느라 등이 노파처럼 휘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겪었던 그 바참하던 시절, 마시는 물에서조차 가난의 냄새가 난던 그 시절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그녀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상류사회의 신사분들과 유리를 착색한 거믄 리무진 안에서 벌이는 파티였다......(중략)......그리고 그녀는 그 외에도 그 야수 같은 남자, 그녀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몸에 대해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 심지어 고문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녀의 남편과 그가 보낸 사람들로부터도 달아나야 했다.(78-79쪽) 

자신을 키워준 랄라 아스마. 그 여인은 라일라에게 있어 상처받은 영혼의 안식처였고 잠시 쉴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살펴주고 희망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가장 가까운 조력자였다.

그런 대상이 세상을 떠나자 라일라는 친절하게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실상 자신을 이용하고 욕보이는 그런 악마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방황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뿌리내릴 그런 땅을 찾지 못한 채 방황을 거듭한다.

자신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사람들, 자신의 나체 사진을 찍어 내다 팔려는 파렴치한, 도둑질을 같이 하는 또래들, 이렇듯 라일라의 주변에는 상처를 받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위험요소 뿐이다.

하자민 라일라는 이런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마도 저자 르 클레지오는 자신이 설정한 의도겠지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잡힐 듯 잡을 수 없었던 희망을 쫓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 결국 그런 희망을 찾아 떠나는 삶의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의 회귀다.

바로 자신이 태어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라일라를 보고 동양의 윤회사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프랑스 작가로써 이런 윤회사랑을 소설속에 투영시킨 것을 보면 그의 고민과 번뇌, 인간에 대한 심각한 고찰의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그물로 잡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끈끈이에 들어붙게 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감상과 그들 자신의 약점으로 내게 덫을 놓았다. 알라 아스마가 있었고, 그녀의 며느리인 조라, 자밀라 아줌마, 타가디르, 그리고 지금은 후리야가 있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와 함께 잇는 한 결코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121쪽) 

우선 이 소설에서는 흠미를 느낄 수 있는 줄거리가 있다.

평범하지 않은 소녀가 유괴당하면서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한다는 설정. 저자의 폭넓은 삶에 대한 풍부함 경험에도 찬사를 보낼만 하다.

다음으로 근원을 찾아떠나는 한 소녀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마치 어린 흑인소년 라일라에게 인간의 모습을 투명시켜 어느 누구도 평범한 소녀로 보지 않게끔 만드는 마술같은 매력이다.

왜 르 클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내면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런 고뇌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망망대해에서 갈길을 읽고 표류하는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은 이제 다시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간다.

바로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그 과정이 이 한권의 책에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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