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아련히 떠오르는 모습때문에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자동차를 타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으면,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련히 떠오르는 모습이며, 구구절절한 사연은 아마도 아버지, 어머니, 아내, 남편, 그리고 친구에 대한 것들이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성, 부부간의 사랑, 친구간의 우정이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촌, 어촌, 산촌 등 흔히 말하는 촌(村)이라는 개념이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서 고향이라는 의미도 점점 퇴색된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학교다니던 곳에는 이미 친구들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해 결혼해서 모두 뿔뿔히 흩어졌기 때문이다.
김정현 작가의 《고향사진관》은 바로 우리들 고향의 이야기다.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로 저자의 친구 '서용준'이라는 친구를 실제 모델로 해 만든 장편소설이다.
저자와는 40년 지기 친구로 마흔이 되는 해에는 거의 매일 같이 소주잔을 기울였다고 회고 한다. 회고를 하는 이유는 바로 친구의 부음소식을 듣고 문상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친구는 가끔 만나 안부를 확인하는 대상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저 왔다 갔는 손님이 아니라는 말이다. 작가가 그의 친구를 회상하며 소설을 집필한 이유는 떠나보내는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순간의 그리움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어울린다고 모두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영원한 친구에 대한 그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쯤에 인연 어쩌고 하는 수사를 끌어다 붙이는 건 좀 작위적인 감이 있다. 그저 이웃해서 살았고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치고 더불어 놀이를 하다 보니 친구가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처럼 어울린 모두가 친구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또 스치듯 마주친 잠깐의 인연을 시작으로 영원한 친구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친구라는 개념은 뭐라 선뜻 단ㄷ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용준은 아주 오래 전부터 소중한 친구였다.(45쪽)
소설의 표지(사진 참조)를 잠시 보면 제목과 똑같은 고향사진관이 전봇대 앞 신작로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뒤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중국집, 다방, 이발소, 식품가게가 늘어서 있다.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의 풍경이 생각난다.
이 소설 《고향사진관》은 단순히 친구를 주제로 한 소설은 아니다. 한 친구가 고향에 정주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보살피며, 오누이의 결혼을 지켜보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결혼의 조건까지 아버지에 대한 봉양을 포함시키는 장남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누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자신의 인생을 개발하는데 걸림돌을 좋아할리 있겠는가? 설사 그 대상이 부모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고민에 빠지지만 결국 자신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나를 키워준 부모의 자식사랑은 당연하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보살핌과 봉양은 교양선택쯤의 과목이 아니다.
《고향사진관》에서는 바로 이런 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나 자식을 기르는 거이나 더할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졌으니 당연히 정성을 다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 그것으로 공을 내세운다면 오히려 인연에 대한 도리가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아무리 정성을 기울인다 해도 받는 이에게는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에는 끝이 없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무리 애쓰고 성의를 다한다 해도 언제나 부족한 마음에 미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대개는 부모의 마음이었다.(196쪽)
약간은 수필적인 요소나 자서전적인 요소가 많겠지만 장르는 소설이다. 소설속에 이런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저자는 항상 아버지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작가의 저서 《아버지의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마음에는 항상 부모라는 큰 사진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것이다.
고향의 사진관을 생각하면 가슴이 포근해 진다. 얼마전까지만도 동네 미용실이 수다와 정보의 사랑방이었다면 예전에는 사진관이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진속에 담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한번 끄집어 내어 먼지도 털어내고 더러워진 곳도 닦아내고 옛 기억을 담을 수 있는 사진을 다시 만들 수 있는 소설이다.
책 속 아 포 리 즘
친구.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 누구에게나 친구라는 이름의 누군가가 곁에 있게 된다. 그 첫 번째 상대는 어린 시절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는 인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함께 배우기 시작하는 인연으로부터 비롯되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첫 인연이 모두 영원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어지간히 성숙해져 서로의 가슴에 서로가 깊게 자리 잡기 전에 한쪽이 떠나는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쪽은 새롭게 만나는 인연들과 정을 쌓아가게 되는데 이때는 벌써 제법 성숙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지라 서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뜻도 나눌 수 있게 된다.(117쪽)
소중한 느낌. 그래, 사랑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랑한다는 건, 그래서 그가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는 그 마음도 실상은 소중하게 여겨지는 마음이 바탕일 것이다. 그런데 처음 사랑이라는 불꽃 앞에 눈이 멀어 내면의 그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면 끝내는 그림자마저 추석해져 버리는 것이리라.(132쪽)
비소로 알 것 같았다. 친구들이 무시로 사진관을 드나들고 드러나지 않게 용준을 마음의 의지처로 삼는 건 그런 까닭일 것이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잊어버린 듯 전하는 법이 없었고, 누가 물으면 좋은 일이나 대답할 뿐 흠이 되는 이야기는 아예 못들은 척이었다. 그렇다고 성정이 차갑고 이기적이어서 모든 것을 외면하며 살겠따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의 누군가 곤란에 처하면 남보다 앞서 염려했고, 선후배를 막론하고 뜻있는 일에 나서면 마음으로나마 성우너하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