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의 고유한 이름을 가진다. 

그 이름은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식별하기에 적절한 수단이다. 

이름을 통해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의미를 갖는다.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에서도 그를 불러줌으로써 하나의 의미가 된 것처럼

우리는 모두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의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서연의 장편서설 《랑그와 빠롤》은 복잡한 세상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무의미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겉만 도시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가야하는지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이 화두를 항상 숙제처럼 안고 산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표류하는 군상, 바로 '정연수'와 '이정현'.

그들의 이야기는 십여년전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다.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시절이 처음을 장식한다. 억울함으로 울부짓으며 선생님의 체벌에 항거했던 장면은 독자들의 상상의 더드미를 더욱 자극한다.  

'오빤, 죄수복만 안 입었다 뿐이지 어딘가에 갇혀 있는 죄수같아요.

오빠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여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기다리면 될 줄 알았어요.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구요! 그런데 아니에요. 오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귀느니, 사랑하느니 하는 거 자신 없다고 말했던 거라구요. 내 말이 틀려요?

오빠 마음속엔 누군가 살고 있어요. 감옥처럼 오빨 가두고 있는 누군가가 있어요.(131쪽) 

몇장을 넘기면 성인이 된 이들은 사회 곧곧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는 뿌듯함을 안고 있는 도시인으로 등장한다.

서로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가슴 한 구석에 화상을 입었다는 기억만으로 간신히 상처를 덮고 사는 인물들.

우연히 마주친 그들에게 펼쳐져 있는 관계와 왜 서로에 대한 미움과 상처만이 남은 이 도시라는 공간에서 혼란을 겪어야 하는지 부담없는 글로 표현해 놨다.

그렇다면 랑그와 빠롤은 왜 이 두 등장인물과 어떤 연관이 있는걸까?

'랑그(langue)'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단어 그 자체다. 잠재적이고 사회적인 언어로 변화되지 않는 활자다.

사랑을 하는 연인사이에 사랑은 랑그가 될 것이고, 서로 부르는 이름과 애칭, 둘만의 암호 역시 랑그다. 그래서 일차원적이고 고정적인 관념이되는 랑그는 열달 어미의 배에서 유영을 하다 태어나는 아기의 걸음마와도 같다.

하지만 '파롤(parole)'은 의미를 달리 한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사이라도 빠롤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손을 잡는 행위가 될 것이고 진심을 담은 말한마디부터 포옹, 뽀뽀, 키스, 그리고 섹스까지 모두 사랑이라는 단어를 표현하기 위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모습이다. 바로 빠롤이다.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사랑과 헤어짐은 상반된 개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과 '떠난다'는 랑그라면 떠난다는 표현이 또 다른 사랑으로 이해된다면 이것이 바로 빠롤이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랑그와 빠롤이라는 말 기억나?"

"그게 어쨌다는 거야?"

학부 신입생 시절의 일이었다. 교양과목으로 국어의 이해 혹은 국문학의 이해쯤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신출내기 강사로 보이는 이의 열강과 이해를 돕는 빼곡한 예문 때문에 머릿속에 각인되고 만 단어였다.

졸업을 하고도 드문드문 대화 속에 등장하곤 했던 단어이기도 했다.

'모든 관계가 자연스러움을 기준으로 성립된다는 건, 하나의 랑그일 뿐이야.'(293쪽) 

이 소설  《랑그와 빠롤》은 바로 이런 묘한 언어적 관계를 동기로 정연수와 이정현 두 인물의 관계속에서 잘 표현했다.

사춘기시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서 왜 그토록 용서할 수 없는 마음으로 자신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눈뜬 장님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진한 고찰이 드러나 있다.

소설은 비교적 가벼운 언어로 구성된다.

작가 서연은 랑그와 빠롤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작품속에 투영했지만 작중 인물의 사실적인 도시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려냄으로서 간략하고 솔직담백하게 줄거리를 완성시켰다.

잔잔하기 보다는 다소 따분하고 지루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찾아내는 '의미'에 대해서 고찰할 수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한권의 책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를 담은 여러권의 책을 만났다.

서평을 담은 책들도 만났고 책을 소개한 책들도 만났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말의 권위자'라는 뜻은 무엇일까?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달변가들부터 언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들까지 모두를 지칭할 것이다.

일본에서 말의 권위자라는 말하는 사이토 다카시의 《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말했다》는 열편의 작품속에 나오는 여러가지 형태의 사랑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해 놓은 작품이다. 즉 책속에 책을 담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선 열편의 작품속에 나오는 문장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할 때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표현하려고 했던 속내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자세하게 분석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해야 하는지 자유롭게 자신을 찾는 인물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의미를 둔 수준 높은 연애소설이라고 평가하지만 그 이상 사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드러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매말랐지만 뒤끝없는 그런 사랑이 등장한다. 소설속의 시간적 배경이 짧은 만큼-18일간의 이야기-사랑과 사람의 관계와 아름다운 유희를 최대한 압축해 놨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듯한 사랑의 속삭임과 청춘의 가볍고 쿨한 사랑을 만나고 싶으면 이 작품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1973년의 핀볼》을 비롯해 세편의 하루키의 작품은 모두 사람과 사람의 사랑, 그리고 쿨하면서도 깨끗한 사랑, 아픔을 고통이 아닌 애절한 느낌으로 바꿔버리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 건드리면 톡 터지는 연시 같은 여자 마음인 것을.

여자는 단지 사랑받는 기분을 최고조로 느끼고 싶은 것뿐이다.

남자가 자기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싶고, 자기의 마음을 되돌리고자 저 하늘에라도,

저 바다에라도 갔다 오게 만들고 싶은 것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속삭임이라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득 담아 듣도 싶은 것뿐이다.(30쪽) 

다음으로 나츠메 소세키의 《산시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두고 요즘 감기처럼 전염성이 강한 '나쁜남자'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호감을 보여준다.

괜히 끌리는 '나쁜남자증후군'. 나쁜남자들에게 은근히 끌리는 것은 바로 이들의 사랑의 속삭임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위 삼인의 저자들의 작품을 통해 나쁜 남자의 사랑, 머뭇거리다 되돌아서는 우유부단한 사랑, 그리고 사랑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착각속의 사랑 등 나쁜사랑을 분석했다.

그렇다.

나쁜남자는 비호감이나 사랑을 해서는 안 될 그런 대상이 아니라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면 더 가까지 가고 싶은 그런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사랑의 범주를 넘어 '상식'으로 계산할 수 없는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랑. 그러니까 일반인들의 사랑이다.

우리곁에서 늘 함께하는 사랑의 그림자. 우리는 그 그림자를 갖기를 항상 바란다.

이치카와 다쿠지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카타야마 교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선생님의 가방》. 그리고 《전차남》은 '보통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럽처럼 달콤한 사랑도 나온다.

운명적인 사랑, 애타는 마음을 견디다 보니 사랑이 된 지고지순한 사랑도 등장한다.

전차남의 경우 우리는 영화를 통해 만나 더 친숙하다. 서툴지만 설렘으로 만난 두 주인공은 사랑의 결실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설레고 보고싶고 뭔가 해주고 싶고 만지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그런 과정을 겪으며 사랑을 나눈다.  

이 책 《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을 읽으면 열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아니면 대충 대충 읽다가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작품에 대해 다시 책장을 펼치거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다소 서평적인 요소가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서평 자체보다는 책을 분석해 놓았다는 점에서 한권의 작품으로 승화된다.

작가를 분석한 작품. 책을 담은 책. 이런 점에서 한 줄 한줄 읽어내려가면서 언어의 아름다움에 빠져볼 수 있다.

사랑하고있다고하루키가고백했다, 글담출판사, 사이토다카시, 띵글땡글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는 온 국민이 걱정과 함께 수백만명이 넘는 인원이 자원봉사를 했다는 힘을 보여 주었다.

기름 유출사고 당사 기업은 지역주민들과 보상과 배상으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해당기업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몇푼 안되는 배상액을 제시하면 양심과 연민을 저버렸다.

존 그리샴의 소설 《어필》을 잃으면서 문득 재생되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기억이다.

이 소설은 법정소송과 뒷이야기를 다룬다.

한 마음에서 이유없이 수십명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 죽음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였던 주민들은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자넷 베이커라는 여성의 소송으로 굴지의 그룹이 수십 년 동안 독성이 강한 산업폐기물을 무단으로 불법 투기한 사실을 밝혀낸다.

산업폐기물에서 발생한 발암물질이 바로 죽음의 원인.

하지만 당사자인 크레인 케미컬사는 엄청난 배상액에도 꿈쩍하지 않고 대법원에서 승소하기 위해 마지막 음모를 꾸민다.

짧아야 1년, 보통 2년 정도 소요되는 마지막 법정다툼에서 시간도 돈도 그리고 힘도 없는 이들에게 닥치는 결과가 궁금해진다.  

"이렇게 급한 토요일 아침 기별에도 만나 주셔서 고맙소."

트루도가 말했다.

"당신 회사와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 주지 않더군요."

라인하트는 웃으며 다리를 겹쳐 올렸다.

그가 리모컨을 집어 들고 단추를 누르자 천장에서 커다한 흰 스크린이 내려와 한쪽 벽을 덮더니 전국 지도가 떴따. 대부분의 주는 녹색이었고, 나머지는 연노랑색이었다.

"31개 주는 항소법원과 대법원 판사를 선거로 선출합니다. 그게 녹색입니다. 노란색은 현멸하게도 임명제지요. 녹색 주가 우리를 먹여 살립니다."

"판사로군."(104쪽) 

소설을 읽으면서 역자도 밝혔듯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바로 떠올랐다.

4천100만달러의 어머어마한 배상금은 크레인 케미컬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돈이다. 하루 아침에 1천만달러가 넘는 고가의 그림을 사들이고 하루 아침에 몇백만달러 떨어진 주가를 보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년의 소송으로 모든 힘을 소진한 자넷 베이커와 소송 대리인 페이튼&페이튼 법률사무소의 웨스 페이튼과 아내 메리 그레이스. 누가봐도 시간싸움이니 돈이 있는 자가 승리한다는 말이 나올만 하다.

모든 법정소설이 그렇듯이 줄거리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어느 한 구절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내용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 이런 상황들이 종종 벌어진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렇치 법정에서는 '승소'라는 결과를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이 소설 역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4천100만 달러의 배상액 판결을 받았지만 마지막 남은 대법원의 항소심에서 이기기 위해 배심원을 이용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배심원제도가 있다. 그리고 판사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회유와 협박, 합의, 설득, 그리고 배상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편에 유리한 판사를 세우기 위해 1년이 정도 걸리는 판사선거에 뛰어든다.  

"그 이야기는 아까 한 것 같은데요. 밴코나가 예산을 짜 놔습니다."

"나도 글은 읽을 줄 압니다. 재커리 씨."

론은 테이블 너머로 쏘아붙였다.

"론, 그 이야기는 수십 번 했잖아요? 지난해 '사법제도의 미래'는 일리노이에서 한 사람을 당선시키려고 거의 400만 달러를 썼어요. 텍사스에서는 600만 달러 가까이 썼고요. 터무니없는 액수지만 요즘 선거는 이기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누가 결제하느냐고요? 워싱턴에서 당신이 만난 그 사람들 아닙니까? 경제성장 운동,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 건강보험 체제에 혹사당하는 의사들. 변화를 원하는 건 이런 사람들이고, 그들은 기꺼이 돈을 냅니다."(191쪽) 

이쯤에서 문화방송의 광우병 보도를 놓고 유죄를 입증하기 힘들다면 사직한 한 검사의 이야기가 뉴스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삼성의 범무팀장은 양심고백을 하며 삼성 엑스파일의 실체를 밝혔다. 양심의 가책이란 정말 어느 무엇보다 무섭고 사실적이며 공평한 감정이다. 거짓이 통할 수 없다.

존 그리샴의 소설 《어필》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스믈 한번 째 소설인 《어필》은 빠른 줄거리 전개와 흥미진진한 내용이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나중에 벌어지는 일들을 예측할 수 있어도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독자의 상상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책을 모두 읽어서 독자들 스스로가 퍼즐을 끼워 맞추듯 일부는 항상 제자리에 둔다. 그래서 저자의 소설은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이어 문제를 제기했다.

"대기업은 왜 론 피스크를 후원하는가?"

왜냐하면 대기업들은 현재 미국 전역의 대법관직을 돈으로 매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카시처럼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노동자와 소비자, 타인의 부주의로 상처받은 피해자, 가난한 자, 피고인의 권리에 관심을 갖는 판사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법률의 가장 큰 임무는 가장 약한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277쪽)

문학·책, 어필, 존그리샴, 유소영, 문학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