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세상에 처음 '인간'이라는 모습으로 만들어졌을 때부터 '사회적 관계'는 시작되었다.
홀로 살아가는 생활은 관계를 만들지 않지만 단 한명이라도 그 생활에 동참한다면 바로 관계가 되고 규범이 필요하며, 규칙이 등장한다. 아마 이때부터 우리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안에서 업무에 따라 배치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린다.
필연적인 모습일까?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 자신의 개성을 묻은 채 조직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들 말이다.
조슈아 페리스의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는 사회적 관계, 사무실이라는 공간, 조직의 구성원, 개성을 묻은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들에 관한, 그런 모습들에 관한 소설이다.
사무실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두고 그곳에 있는 구성원들의 말과 행동, 심리의 변화,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을 자세하고 솔직하게 때론 평범하게 그려했다. 책을 펼치면 다름과 같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에 대한 내용을 미리 감지할 수 있으며, 많은 독자들이 "혹시 내 이야기아니야?"라며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하나의 구성원을 이루지 않는 것,
한 가지 특징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사람마다 제각기 타고난 자질로부터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명예는 아니다.
우리가 속한 파벌이나 계층의 전체로,
거기 속한 백명, 처 명의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존재로 간주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불명예이다.
이 소설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는 사무실에서 자신의 개성을 잃어가며 돈과 관계라는 목적을 쫓아 가는 현대인들이 주인공이다. 조직의 구성원에서 배제된 왕따들, 한가지 뚜렷한 능력이나 특징이 없는 평범한 사원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항상 2인자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앞서 열거한 모든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명예는 아니라고 친절하고 부드럽게 위로의 말을 하지만 실제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한번쯤을 경험했을 사람들이며 일일 수도 있다. 유방암에 걸린 직원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하지만 그 직원은 유방암 수술을 받고 완치되는 것보다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지 않을지 걱정을 하고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두어야할지 고민한다.
그만큼 서브프라임 사태로 대량해고, 실업률상승, 경기악화 등의 요인이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두어야할지 모르는 그런 호모 오피스쿠스적인 인간을 만들어낸다. 씁슬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소설속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자신이 없으면 회사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이 빠지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걱정과 염려를 넘어선 현대인들의 오피스쿠스적인 병적 사고다.
종양이 그녀의 흉벽을 파고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유발절제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두렵지 않은가? 의사들은 마음에 드는지?
완쾌될 가능성은 얼마나 있는지?......(중략)......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하나같이 내가 회사에 매일 공헌하지 않는다면
회사 전체가 엉망이 되어벌릴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올바른 우선쉰위라는 환상,
결코 실현되지 않을 꿈 같은 소리가 다 뭐란 말인가?(61쪽)
어제 해고통지를 받고 회사를 그만 나와야하는 상황에서도 머릿속으로 일하는 상상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
그런 모습이 바로 현대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 소설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에는 동료들을 험담하는 직원들, 상사 씹는 메일을 동료직원들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게도 모두 보내는 실수를 저지르는 직원, 다른 직원들 책상 한 구석에 썩은 초밥을 놓는 엽기적인 사람들, 해고 뒤에도 계속해서 기획안을 올리는 사람?? 바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역겹고 짜증난다고 하지만 해고 뒤에도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정신병적인 행동을 하는 직원들을 보면 말 그대로 불쌍하다. 다음 글은 앞서 말한 부분을 제대로 표현해 놓고 있다.
"역겹고 짜증나는 일이 뭔지는 이미 알고 있었어. 그 불쌍한 작자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지,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어. 친절하게 대해줄 요량이었으니까." "역겹고 짜증하는 건 말이지."
크리스가 털어놓았다.
"일이 하고 싶다는 거야. 내 말이 믿어져? 일이 하고 싶다니까. 그거 정말 역겹지 않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바로 어제 잘렸는데, 머릿속으로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니까. 캐런!"(133쪽)
이제 이 소설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를 통해 조슈아 페리스가 우리들에게 전해주려는 메세지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조직의 구성원으로 왕따를 두려워하는 나머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조직이 움직이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 속에 얽히고 설힌 내부의 뒷이야기들을 모르면 불안해 하는 사람들, 과연 나는 몇번째로 명단에 올라와 있을까? 걱정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 답답한 현실앞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 두려움을 만드는 요인들이며, 소설처럼 호모오피스쿠스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요인들이다.
아메리칸드림의 핵심적인 요소라면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온갖 부의 상징들, 편리함의 상징들,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는 요소들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박탈당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는 것을 권리라고 느끼면 살아간다. 과연 박탈과 권리속에서 정신병이 걸리지 않는다면 행운이다.
우리는 뭔가 모르는 것을 싫어했다. 우리는 다음 잘릴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것을 싫어했다.
생활비는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 새 일자리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우리는 신용카드사와 징수기관, 파산의 결과가 어떤 위력을 갖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 기관은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이 시스템에 당신의 이름을 넣으면 그 순간부터
아메리칸드림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빼앗기기 시작했다. 집에 딸린 수영장,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휴가.
가장 싼 BMW 자동차. 아마 이런 것들이 삶과 자유를 주장하는 제퍼스 대통령의 이상은 아니었겠지만,
서구가 승리하고 냉전이 끝난 현재 시점에서는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권리처럼 느껴졌다.(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