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디자이너 오경아의 에세이는 신선하다. 일단, 39세의 나이로 하던 일(방송작가)을 그만두고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부모님의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남은 삶에 대한 조금은 다른 선택. 6년간의 시간이 그녀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 제목 또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낯선 정원, 그리고 엄마를 만나다. 나 또한 정원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있기에 그녀의 에세이가 더욱 진솔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두 딸과 함께 영국으로 간다. 영국에서도 외딴 곳 북서쪽에 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라는 곳으로 유학생활의 마지막 휴가를 떠난다.

 2주간의 휴가가 얼마나 행복했을까. 달콤하고도 평온한 곳에서 보낸 2주간의 시간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이 책을 읽으며 내심 부러웠다. 나도 2주간의 휴가를 그곳으로 떠나리라. 그녀가 유학생활 동안 공부한 것은 인생이라는 정원이다. 인생의 정원에서 신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먼저 꺾는다는 정호승님의 추천사를 읽으며 공감한다. 부록으로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산책편이 있다. 나중에 영국에 갈 때 작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중간중간에 사진들이 나오는데 너무나도 평온해보이는 모습이 우리네 삶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아- 나도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꼈던 간절함이었다.

저자는 영국의 정원을 통해 그동안의 상처들을 씻으며 치료하며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아울러 엄마를 만나는 순간들이 유난히도 나에게 먹먹하게 다가왔다. 그녀의 엄마를 하늘로 보내는 동안, 엄마에게 못했던 효도들, 엄마에게 모질게 했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벗꽃을 보지 못하고 하늘로 가신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엄마에게 죄송함을 표현한다. [ 너무 고와서 눈부신 벚꽃 그늘 밑에서, 문득, 사라진 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 볕이, 이 꽃이 이리도 서러운 건 왜일까...] (본문58쪽 중에서) 나 또한 가장 친한 엄마에게 친하다는 이유로 막 대했던 순간들을 반성하게 된다. 작가 특유의 감성들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 카펫처럼 푹신하게 키가 올라온 잔디를 꾹꾹 도장을 찍듯이 밟으며 걸었다. (중략)... 잔디만 자기 그림자를 끌어안고 검게 속을 태우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자꾸 하고 있었다. 그림자 없이 사는 사람 없듯이, 누구나 자기 키보다 더 길어진 그림자를 끌어안고 힘들게 산다고,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본문 150쪽 중에서) 그녀의 에세이 속에는 유학길에 함께한 두 딸의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실 영국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이 이야기보다 두 딸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또한 딸이 직접 쓴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에세이를 읽을 수 있었다. 딸의 친구가 찾아온 이야기, 달을 보기 위해 담요를 들고 나갔다가 돌아온 딸과의 대화, 어른이 된 것을 후회하는 저자의 이야기들 속에서 삶이란 다 똑같은 거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나도 나중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볼까. 딱 2주만이라도 좋으니 꿈이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 구렁이 족보 ]

구렁이를 떠올리면 징그럽다. 무섭다. 라는 편견이 있다. 그래서 구렁이 족보라는 책을 보았을 때 '이건 무슨 내용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동서이기 때문에 구렁이에 대한 특별한 무언가를 나타내겠지라는 생각으로 첫장을 열었다. 첫장에는 귀여운 아이가 보이고 "(무시무시하게 큰) 구렁이 키울 분....없으시겠죠?"라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본 적이 있는데, 구렁이를 키우는 집은 참 드물다 싶었다. 나 또한 구렁이를 키우고 싶지 않으니깐..

구렁이 족보는 초등학생 아이가 주인공이다. (아이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의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렁이에게는 '스스'라는 이름이 있다) 그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구렁이를 만나게 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구렁이에게는 사연이 있다. 엄마인 구렁이는 아이를 잃은 슬픔이 있다는 것이다. 읽다보면 생명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즉, 우리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입장에서) 구렁이는 죽여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렁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가장 큰 적일 수 있다. 구렁이의 생존을 결정짓는 가장 큰 적이기도 하니깐. 우리는 늘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해왔다. 하지만 구렁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만의 세상 또한 존중되어야 하고,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구렁이 '스스'는 아이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부모님보다 오히려 구렁이 '스스'가 더 많은 것을 파악했다는 구절에서 그런 느낌이 받았다. 사실 구렁이에게 어떤 애정을 느꼈을까. 스스 아줌마에게도 차갑고 미끈하지만 애정을 느끼는 존재였다는 점에서 신기했다. 또한 스스 아줌마가 원한 '구렁이 족보'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더욱 느낄 수 있었으리라. 나도 무언가를 위한 족보를 만들어 본 적이 있을까?

족보는 대상의 역사를 의미한다. 구렁이에게 족보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엉뚱한 생각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역사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 아줌마는 구렁이 족보를 만들어 주는 아이에게 몇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예를 들어 손쉽게 뜀틀을 넘을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대한 구렁이 아줌마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도와주기 위한 아이의 모습들이 대상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구렁이 족보를 통해 이제 구렁이도 징그럽고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열흘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도 구렁이 스스는 나에게 대해 많은 걸 파악했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보다 더,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키가 작아 고민인 것, 달리기를 잘 못해서 체육 수업을 무서워하는 것, 인기 많은 예준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안다. ...(중략) 구렁이에 대해서는 많이 알게 됐지만, 정작 스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중략)
스스가 태어난 곳은 어디인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슬펐던 순간, 변신하고픈 모습이 무엇인지 말이다.
...(중략) 스스는 세상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아는 존재였고, 애정이라는 게 꼭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한 게 아니라 차갑고 미끈할 수도 있다는 걸 알려 준 특별한 대상이었으니까. (구렁이 족보, 1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