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3월은 생각하기도 싫다. 밀려오는 업무 쓰나미 속에서 허덕이다가 하루를 대충 수습하고(내일일을 걱정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책 한권 제대로 읽지 못한 여유없는 시간이었다. 지하철을 타면 나도 모르게 바쁜 걸음을 걷고 있는 것처럼 3월의 삶도 그러했다. 그리고 잔인한 달 4월도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휴식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매 순간을 음미해 볼 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 정말 적극 동감한다. 그러다 5월에 어느날 [나무늘보처럼, 슬렁슬렁]이라는 책을 만나게 된다. 참 고맙다. 적절한 시기에 타이밍이 좋다. 마침 5월의 연휴기간 이 책을 챙겨 여행을 떠났다. 호텔에서 여유있게 읽었던 기억이 더없이 좋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느리게 사는 삶을 예찬하게 된다.

 일단 책 표지에 나무늘보의 일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변의 꽃과 식물들은 초록으로 힐링색을 나타낸다. 그리고 나무늘보 밑에 "느리지만 단단해질 나를 위한 에세이"라고 작게 적혀있다. 사진들은 한층 마음을편하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느껴진다. 지은이는 [비하인드]라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작가 겸 출판기획자이며 여자이다. 번역일도 한다. 저자가 번역한 루이스 헤이의 나를 치유하는 생각을 읽은터라 그녀가 낯설지 않다. 아울러 나의 로망인 제주 입도를 준비중이라는 소개글이 다정한 언니처럼 느껴졌다. 

《나무늘보처럼, 슬렁슬렁》의 목차는 1) 행복의 민낯, 2) 있는 그대로의 너, 나, 우리, 3) 나무늘보처럼, 슬렁슬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인의 경험담이 녹아 있는 구성이라 더없이 재미있다.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속에서의 통찰을 찾아내는 힘도 있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자주, 많이 보는 대상을 닮아 간다고 한다. 복합쇼핑몰에서 파스타를 막고, 스타벅스에서 마키아토를 마시고, 명품 숍이 가득한 거리를 매일 오가는 사람은 그 화려함과 욕망을 닮아갈 것이다. 반대로 바다와 숲과 하늘을 매일 보는 사람은 넉넉함과 관대함을 닮아갈 것이고."
- 24쪽, 웰컴 투 네이처 중에서 -

글과 함께 예쁜 사진들이 들어 있다. 마치 블로그의 한 부분을 보는 듯한 예쁜 편집이다. 아울러 명언과 명대사, 저자의 일침이 짧게 닮겨 있어 여행지에서 읽으면 더 없이 좋은 책이다. 나 또한 무엇이 얽매이지 않고 나무늘보처럼 슬렁슬렁 여유롭게 책을 읽다보니 그러한 넉넉함과 여유가 생기더라. 하고싶은 말들을 거침없이 적어내려가는 저자의 필력 속에서 나도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느리지만 단단해지는 마음, 애씀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탁구 코치님이 하는 이야기 중에 "힘 빼고 치세요"라는 말이 이러한 맥락일까. 힘 준다고 오히려 잘 될 것 같지만 진짜 고수는 힘 빼고 치는 탁구라는 것을.. 삶도 그렇게 애쓴다고 잘 될 것이 아니라 놓고 비울 때 가득 채워진다는 것을.. 수영을 좋아하는 저자가 관찰한 수영 고수는 "힘 빼고 물에서 즐길 줄 아는 자"라고 한다. 삶을 진짜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렇게 2015년 남은 시간을 살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슬렁슬렁 마음이 릴렉스되었다. 

+ 공감하기.

"하얗게 불태우듯 공부했는데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거나 몸과 마음를 다 바친 연애였는데 어이없게 헤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리프레이밍"이라는 용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어떤 일이든 의미부여는 하기 나름이다."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장 루슬로(시인)

화통의 기술

학교 다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판서는 빼곡한 내용이 담긴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디테일하게 그린 그림. 너도나도 쉬는 시간이면 칠판에 그림을 그렸다. 역사 선생님이 그렸던 대한민국 지도는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만큼 그림은 기억을 지배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라 "백견이 불여일획" 이라는 말이 있단다. 즉,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그리는 게 낫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구나. 이처럼 수많은 글보다 그림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화통의 기술]의 저자 그레이엄 쇼(GRAHAM SHAW)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사실, 이런 직업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단순한 그림들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기법은 그의 전매특허로, 전 세계 유수의 기업들에 소개되어 구성원들의 정확하면서도 빠른 의사소통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한다. 그림으로 통한다는 제목도 매력적이었다. 

[화통의 기술]에서 기억에 남는 개념은 [투 비주얼]에 대한 것이다. 투 비주얼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대조적인 아이디어를 쉽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차이점을 통해 시간적 흐름을 직감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에게 생각의 여행(이 단어가 얼마나 멋진가)을 선사해준다고 한다. 쉽게 슥슥 그린 듯한 저자의 그림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래프도 한눈에 쏘옥 들어왔다. 

그렇다면 그림으로 대화하는 것의 장점은 무엇일까? 저자는 9가지를 제시한다.

1) 격식에서 자유로워짐
2) 말보다 그림으로 공통의 시각언어를 만들어 소통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임
3) 전체를 조망하는 힘이 생김
4) 각 요소들의 관계를 확연하게 해줌
5) 손쉽게 아이디어가 확장 
6)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게 되므로 책임감이 상승
7) 긍정적인 에너지
8) 창의력과 상상력이 자극
9) 팀이 단결됨

이 책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림 연습을 자극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책 옆에 종이를 놓고 따라 그려보았다. 생각보다 쉬워서 금방 그릴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예시 그림이 적었다는 것. 그리고 주제가 조금 한정적이었다는 것. 동물, 식물 등 방대한 예시 그림을 소개해주셨으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면, 상대가 내 말을 잘 기억하기를 바란다면, 서로 오해 없는 소통을 원한다면 그림으로 그려서 해결하라. 잘 그릴 필요없다는 그의 조언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 언제 어디서든 펜만 있으면 다 되는 화통의 기술. 나도 그림을 열심히 그려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신분석학자 아빠가 쓴 육아일기 [매이데이]

 

 

 

 

매이데이를 5월에 읽었다.

 

5월에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무 이유 없이 5월에 읽었다는..) 천년의 상상에서 출간된 [매이데이]는 표지부터 예쁘다. 아빠는 책을 읽고 있고, 아이는 옆에서 토끼 인형을 안고 잠을 자고 있다. 표지만 봐도 유쾌하고 즐거운 책. 이 책의 저자는 평범한 아빠이다. 그는 수유너머 연구원이기도 하고 시간강사이기도 하다. 마흔이 넘어 태어난 매이가 인생을 뒤흔들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프로이트와 라캉 등 정신 분석학을 공부한 저자는 부모와 아이의 무의식과 존재의 욕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무시하지 마라. 아이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수많은 능력들의 보물창고다. 내가 낳은 아이를 돌보며 한동안 멈춘 "인격의 성장"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빠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책을 시작하며 나오는 글귀가 예사롭지 않다.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의 이야기들이 나를 흥분시킨다. (수많은 육아서를 읽었지만 이런 류의 서술은 나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매이의 이름은 매일 매, 기뻐할 이! 5월에 태어난 아이라 메이라고 하기엔 속 보이니 "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름은 국제적이고 부르기 쉬우니 최고라 생각된다. 매이는 태어나면서 몽이라는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아울러 10개월이 되면 집앞의 어린이집으로 가는 매이. 어린이집을 보내는 이유에서 나랑 동질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나의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법칙을 적용한 것이다. 나는 그래도 아이가 10개월에 함께 있어줬던 것에 덜 미안해한다. 매이데이를 읽으면 마음의 위안이 생긴다. 뭔가 솔직하고 거짓되지 않은 리얼REAL 육아가 보여서다.

 

"나는 매이가 살균 처리된 청정구역이 아니라
이질적인 존재들의 공동체 속에 있을 때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를 너무 청정구역에서 키우면 병균을 이길 힘 즉 면역력이 줄어든다고 한다. 매이의 아빠는 매이를 강하게 키운 듯 하다. 강아지 몽이랑 함께 생후 1달 반 되자 집 밖으로 산책을 나가는 센스. 아울러 매이가 주는 코딱지와 똥을 선물이라고 표현하는 것. 새롭게 안 사실은 배변훈련에 관한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배변훈련은 너무 엄하게 할 경우 아이는 아이는 부모에게 줄 선물을 안 주고 몸 속에 똥을 간직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가혹한 배변 훈련으로 자기 몸 속이 똥을 쌓아 놓는 게 훈련이 된 아이는 나중에 자기 수중의 돈을 절대로 안 쓰는 냉혹한 자본가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에게 배변 훈련을 은연중 강요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 여름엔 기저귀 꼭 떼자는 내 욕심이 부끄러웠다. 기저귀를 못 떼어도 좋으니 천천히 가자.

 

 

 

매이 부부가 2005년부터 1:1 결연을 맺어 후원하고 있는 스리랑카의 소녀 칸차나. 매이는 그녀의 사진을 보며 "칸차나 언니"라고 부른다. 매달 3만원의 후원금을 이체했지만 칸차나라는 이름조차 잊혀질 즈음 매이가 생각나게 해 준 것이다. 그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매이 아빠.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나도 아이 이름으로 1:1결연을 맺어 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또 다른 언니를 소개시켜줘야지. 장난감을 사주는 돈으로 후원을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울러 매이가 자주하는 말 "엄마 좋아, 아빠 미워!"이다. 엄마 뺨에는 뽀뽀를 해주고 아빠에게는 뺨을 때리는 매이. 4살인 딸도 자주 하는 래퍼토리이다.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읽다가 물개 박수를 쳤다. 크하하.

 

'정신분석학은 종종 냉철하고 딱딱하며 허세 가득해 보였지만, 딸의 행동과 마음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니 이해가 된다'는 저자의 말을 공감한다. 신기하게도 정신분석학적으로 육아를 바라보니 이해가 된다. 어려울 것 같았는데 어렵지 않다. 저자의 경험담이 너무나 재미있다. 이 책 [매이데이]는 육아를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앞으로 아빠가 될 예정인 분들에게, 이미 딸바보가 된 아빠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천년의상상, 매이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