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 글 '4월의 물고기' - 자음과모음

젊은 날엔 꼭 사랑을 해야할 것만 같고 또 사랑에 미치고 싶었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소설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드나보다. 사랑 소설은 통속적이고 그저그렇다.

운명적인 사랑이나 첫사랑이니 순수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소설이 지루해서 몸이 꼬일 때즘 하나씩 드러나는 선우의 실체는 마지 기억의 퍼즐을 맞추듯 재미가 생겼다.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는 선우의 이중인격. 선우는 가끔...아니 자주 기억을 못한다.

때론 그의 따뜻한 눈빛도 사라지고 부드러운 손길도 느끼지 못할만큼 잔인하고 무섭다.

그의 안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우리의 맘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의 근성. 우리는 수없이 누르고 감추며 보여지는 나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악마에게 나의 이성을 장악하게 된다면 지킬과 하이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운명적인 사랑이라 생각하는 서인 또한 감춘것이 많고 아픈 인생을 살아 온 여인이다. 아빠는 일찍 죽고 엄마는 생일날 자살하고...17살 몽유병을 앓던 때 강간을 당해 첫 아이를 지웠고, 나중에 사랑하게 된 남자가 유부남인 걸 알았을 때도 이미 자라고 있던 뱃 속의 생명을 낳았지만 오빠 호적에 올려 고모란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사랑이라 여겼건만....

선우에게는 다가설 수 없는 비밀이 너무 많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 믿지 못하는 행동들로 인해 둘의 골은 깊어진다.

내가 아이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어렸을 적 주인공들의 가슴아픈 기억들이 현재까지 상처로 남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묵인해야 할때 벌어지는 정신적 고통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보통 성폭력 가해자가 되었을 때 부모들은 자식을 감싸기 위해 없었던 일로 감추지만 있었던 일로 인정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것이라고 들었다. 갑자기 그 문제들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러했건만.... 기억속에 지웠건만..... 결국 나를 붙잡는 기억들.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퍼즐조각들.

기억의 퍼즐이 예상대로 척척 맞추어질때마다 난 소름이 끼치는데 둘은 운명적인 사랑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더욱 사랑하고 서로를 지키려한다.

오히려 불안전안 퍼즐조각이 맞추어질 때 둘은 정말 신뢰할 수 있었고 서로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엄마가 다른 남자와 밀애를 즐기는 모습을 엿보던 서인...결국 엄마는 그 남자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서인은 배신감에 강가에 엄마의 샌들을 갔다 놓고 자살인 것처럼 위장해 엄마를 기억속에 지우려 했다. 그 충격으로 몽유병에 걸려 엄마가 떠난 강가를 돌아다니고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 젊은날의 선우를 만나게 된다.

선우에겐 쌍둥이 동생 안나가 있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선우에겐 단 하나의 핏줄이요 살아갈 희망이었다. 프랑스로 둘이 함께 입양되어 모두 잘 된일인 줄 알았지만 안나가 의붓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선우는 흥분해서 안나를 목졸라 죽이게 되고 의붓아빠는 선우를 위해서라며 안나의 시체에 돌이 든 베낭을 메어 강가에 빠뜨린다.

그러나 이러한 상처의 기억들은 늘 따라다니게 되고.... 그날 둘의 운명이 맞딱드렸을 때 선우는 서인을 안나로 착각하게 된다. 또한 서인은 그토록 엄마를 지우려했건만 엄마인것처럼 행동하며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굴었다. 그리고는 인정할 수 없는 엄마와 동질화되었던 그날의 기억들을 날려버렸다.

서서히 그들의 기억의 파편들이 맞추어지면서 치닫는 파멸....

서인과 선우는 정말 서로를 사랑했을까? 둘의 사랑이 너무 끔찍하고 잔인해서....주인공 어릴 적 기억들이 아파서 나는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다. 나는 이런 사랑 무섭다. 싫다. 결국 사랑도 자신을 위해 하는 거라던 서인의 친구 혜경과 나는 가깝다. 지독하게 현실주의고 메몰찬 나에겐 너무 버거운 사랑이야기였다.

나의 역할 중 가장 큰 비중을 <엄마>에 두고 있는가보다. 둘의 어릴 적 기억이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생긴 일들... 알 수 없는 사람의 기억 저편과 행동들.... 지킬과 하이드 같은 남자 선우의 이중성....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한 유아기를 보내게 해줘야지. 좋은 사람 만나도록 기도해줘야지 뭐 그런 생각들을 했으니 작가에게 좀 미안하긴 해.

그러나 기억 속에 지워버리고 싶었으나 되찾고 싶은 기억들을 엮어나가며 펼쳐지는 긴장감과 복선들을 짜맞추는 재미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얼마 전 방영된 <아마존의 눈물>을 보셨는지요? 전 아쉽게도 원주민 편만 봤습니다.

대장정 다큐를 마친 PD들이 <무릎팍 도사>에 나왔는데....

원주민 편과 생태계 편으로 테마를 나누고, 선배가 먼저 원주민 편을 맡았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 사람사는 곳 다 똑같다는 어머니 말씀대로 더 편할 것 같아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태팀보다 훨씬 벌레에 많이 물어 뜯겼다고 하더라구요.

문명과 접촉한 원주민이 사는 곳에는 벌레가 많았고,

문명에 접촉하지 않은 원주민들이 있는 곳은 너무나 깨끗해서 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