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는 좁은 마당 하나 두고 많은 가구들이 모여 살았더랍니다.
그때 우리 뒷집에는 누가 살았을까요?
좁은 골목길에 나란히 들어선 집 대문 안에는 여러 가구가 모여 살았고,
많은 사람이 화장실도 함께 써야하는 불편함도 겪어야 했습니다.
<한지붕 세 가족>이란 드라마가 기억나시는지.....
<뒷집 준범이> 제목이 참 정겹습니다. 이 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가 <신흥반점>의 가족들 이야기였어요.
그 두번째 이야기 <뒷집 준범이>의 책에서
작가는 박준범에게 헌사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인물이건 가상인물이건
우리 주변에는 '박준범'이 수도 없이 많겠지요.
그동안 강희네는 이사를 한 모양입니다.
전화번호와 간판, 주변 상가도 바뀌었습니다.
강희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며 가게 앞에서 놀고 있습니다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았지만 강희는 내적으로 성장한 듯 합니다.
(강희는 학교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더 어린 아이가 되었지만요.^^)
<신흥반점> 강희 식구들은 지금, 행복해보입니다. 
나의 행복은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줍니다.
그곳에 준범이란 아이가 있었지요.
준범이는 새로 이사온 아이입니다.
책 속지의 장면입니다.
준범이는 방안에서 한 마당을 공유하는 식구들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준범이가 있는 곳은 어둡고 밖은 환합니다
.
준범이네가 이사를 했습니다.
시장 골목 낮은 집, 작은 방입니다.
방에는 창이 하나 있습니다.
창 너머로 앞집이 보입니다.
마당도 집 안도 다 잘 보입니다.
바로 앞집은 음식집입니다.
그 옆집은 슈퍼입니다.
또 그 옆집은 미용실입니다. (책의 첫 페이지 본문)
3인칭 관찰자 시점인데, 열린 창문으로 준범이가 세상을 내다보는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마치 준범이가 이야기하는 줄 알았어요. (시점은 머리 아파서 여기서 그만...)
마치 작가가 이번에는 강희가 아닌 준범이가 된 듯합니다.
작가의 깔끔한 시선처리와 설명이 군더더기 없이 서민들의 일상이 그려집니다.
가진 자들이 보기에는 바쁘고 정신없고 시끄럽고 누추해보여도
그들만이 가진 소소한 일상에서 묻어나는 행복이 느껴졌어요.
타이틀페이지에는 준범이의 집이 보입니다.
그리고 조금 열린 창 너머로 마당을 내다보는 준범이가 보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준범이를 세상으로 나오도록 손을 내밀어 달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시선은 줄곧 준범이 창밖을 내다보며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관찰하듯 느껴지다가
눈이 마주친 강희가 손을 내미는 순간, 갑자기 나는 준범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강희에게 들킨 듯한 묘함...
우린 살면서 손을 내밀 수도 있고, 내민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요.
전 이장면에서 소름이 돋습니다.
강아지도 나(준범이)를 보며 꼬리치고 있었지요.
다시 장면은 바뀌어 준범의 방입니다.
어둡고 컴컴한 곳에 준범이는 혼자서도 씩씩하다고 말하지만
낮은 탁자 밑에 들어가 웅크린 준범의 모습에 가슴이 시립니다.
그러나 준범은 갑자기 조용한 마당이 궁금해져 어느새 나와 창밖을 내다보지요.
순간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햇살처럼 쏟아져 들어옵니다.
환해진 방 안에서 친구들은 자장면을 함께 먹습니다.
흑백장면 속에서 아이들의 에너지는 분홍, 노랑, 하늘 빛으로 빛납니다.
이제 모두는 친구입니다.
나의 어릴 적 에너지를 함께 하던 친구는 누구였나요?
잠자리에 누워서도 준범이가 그려집니다.
아무래도 준범이의 여운이 길게 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늦은 시간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주가 여기까지네요.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은 희망이고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가난한 곳에서도, 굶주린 곳에서도, 희망이 없는 곳에서도
언제나 그러했음 좋겠습니다.
항상 마음에 와닿는 책을 만나면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몇 번이고 읽고 고쳐쓰며 잘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림책에서 내가 놓친 것은 없나 읽고 또 읽어 봅니다.
제가 얼만큼 이 책의 느낌을 잘 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도 준범이를 만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줄도 알고 내민 손을 잡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