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미 그림, 송재찬 글 "해님 달님" - . 국민서관
우리 나라의 전래동화는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럼에도 전래동화를 고를 때 난 무척 신중하다. 구전되어 전해져 내려오다 활자화 되다 보니 이런저런 작가의 첨삭이 들어 갈 수도 있고, 작가의 재해석은 내용을 변질시키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내용과는 거리가 먼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림이나 내용이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시공주니어)에서 엄마를 잡아 먹는 표현이 너무 세부적이어서 읽으면서도 불쾌했던 기억도 있다. 아이 역시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텐데 잔인한 엄마의 살해장면을 그리게 할 수 없어 '잡아먹었다' 로 간단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림은 여전히 공포스럽다. 어느 출판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용면에 있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랑이가 나무위로 올라간 오누이를 잡기 위해 참기름을 얻으러 옆집에 가서 빌려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산골 외딴 마을에 사는 오누이 아니었나? 더구나 옆집에 가서 빌려오다니..... 정으로 뭉친 우리나라 이야기 치고는 참기름을 빌려준 이웃이 너무 매정하다. 전래동화 전집이야 내가 선호하는 대상은 아니니 아마도 유명출판사 중에 하나였겠지. 그래서 고심 끝에 내가 아이에게 권해 준 책은 <"이종미 그림, 송재찬 글 "해님 달님" - . 국민서관> 이었다. 송재찬님의 깔끔한 내용과 운율있는 글도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아이들 책은 그림이다. 민화 같은 호랑이의 모습이 좀 더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전래동화의 그 느낌을 더욱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누이만
집에 남겨 두고
굽이굽이 먼 길
고개를 넘어
이웃 마을 잔칫집에 갑니다.
어린 오누이 집을 보며 엄마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페이지 한 쪽에 굽이굽이 고불고불한 길을 저만치 걸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 길이 꼬부랑 꼬부랑 거려. 그치 엄마가 꼬부랑 길을 따라 갔어."
역시 아이가 먼저 느끼는 그림.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예전에 외할머니 댁 시골집 그림이 그려졌다. 낮은 산과 밭사이로 난 꼬부랑 길. 날 두고 간 엄마를 그리던 길. 그림의 꼬부랑 길은 왠지 아련하다. 엄마가 정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그리움이 확 밀려든다. 우리 엄마의 마음도 그랬겠지. 나를 두고 가면서 빨리 돌아오고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을 것이다. 아이만 두고 가는 엄마의 바쁜 마음처럼 걸음의 보폭이 넒다. 어쩌면 무서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마음이 편안한 것은 수채화처럼 많은 여백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다른 책은 정말 무서웠다.
송재찬 선생님의 글을 보면 특이하게도 문체를 통일하지 않고 "-합니다"와 "-했어요" 를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머나먼 이야기로 여행을 떠나듯이 차분히 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해설의 "-합니다" 체와 호랑이를 맞닺뜨린 긴박한 상황에서 구어체인 "-했어요"는 상황을 좀 더 운율있고 현실감있게 끌어들인다. 해설, 설명하는 것처럼 "-합니다"는 서정적이어서 마음이 잔잔해진다. 나는 그런 느낌이 든다.
".....하느님, 저에게도 동아줄을 내려 주세요. 살리시려면 헌 동아줄을 내려 주시고, 죽이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 주세요."
요 호랑이 녀석 오늘 식탐꾀나 부린다 싶더니만 정신이 없다. 새 동아줄과 헌 동아줄이 바뀌었다. 엄마를 잡아 먹은 무서운 호랑이지만 호랑이인 줄 알고 숨어버린 아이들을 찾아 다닐 때의 음흉한 웃음과 아이들을 잡아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찬 호랑이의 대사는 호랑이를 좀 바보스럽게 느끼게 한다. 호랑이는 "오늘 횡재했구나. 난 정말 운이 좋은 호랑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이 대사가 혹시 오타가 아닌지 출판사 측에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 전화를 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난 중요하다. 작가의 의도를 알면 책을 좀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으니깐. 그럼 아이도 더 즐겁게 나와 독서를 즐길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대한 이야기의 궁금증은 해결된다. 물론 아이는 해와 달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기전 사람들의 재미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임정진 작가의 세련된 해설을(발췌) 읽으며 글을 마친다.
해와 달에 대해서라면 우리 민족은 확실한 대답을 갖고 있다. 세계의 많은 신화나 민화에 해와 달 이야기가 나오지만 거인도 신도 아닌 살아있는 보통 사람이, 게다가 아이들이 하늘로 올라가서 해와 달이 되는, 그런 파격적인 인사이동은 없었다. 우리는 해와 달을 하늘에 만들어 올린 민족이다.『해님 달님』이야기는 해와 달이 어떻게 생겼는가뿐만 아니라 왜 수숫대 밑둥이 붉은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참기름과 도끼를 통해 마찰과 윤활유의 작용에 대해서도 알게 하며 빈 집 지키기 요령과 변장 시 주의할 점, 목소리 변조의 어려움, 하얀 거짓말의 효과에 대해서도 학습하게 한다. 말 한마디로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큰 교훈도 얻게 한다.
“저를 살리시려거든 헌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죽이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이런이런, 바보 같은 호랑이. 동아줄에 매달리기 전에 정신을 차렸어야지.『돌아온 백구』를 쓴 동화 작가 송재찬의 간결하고 리듬감 있는 글에 새로이 주목받는 화가 이종미의 그림이 포근포근하게 얹혀졌다. 그림은 수직구도와 수평구도가 번갈아 나오는데 선이 부드럽고 배경은 생략되어 깔끔하면서 세련된 느낌이다. 뒤표지의 호랑이 머리 위의 함지박에 떡 대신 올라가있는 바코드를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자, 이렇게 해와 달의 근원에 대한 질문에 멋지게 대답을 했다고 생각한 순간 아이는 또 묻는다.
“그러면 오누이가 올라가서 해와 달이 되기 전에는 해와 달이 없었어?” 아아아아. 떡 하나 줄테니, 누가 그 대답을 해주면 좋겠다. 아이를 억지로 눕히고 다시 생각한다. 해님 달님 이야기가 부모에게 주는 교훈은 없을까? 아이들은 해와 달이 되지만 엄마는 장렬하게 죽어갔다. 그게 부모의 역할일까? 아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세상의 해와 달은 바로 거기 떠 있었다.
2004.12.11/중앙일보/임정진(동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