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랴이 료지 지음 <버스를 타고> - 보림

 

  여행하면 떠오르는 추억은 편하게 자가용타고 다녀온 곳이 아니라 버스타고 기차타고, 배낭에 지도 하나 들고 고생하며 다니던 때가 더 기억에 남아요.

  길을 걷다 지역주민들과 길도 물을 겸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출출하면 근처 시장에 들어가 떡볶이며 순대며 국수며 그 지역 걸걸한 사투리 들어가며 요기도 하고, 사람구경 경치구경 하는 재미가 있지요. 때론 지역주민들이 추천하는 곳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여행의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여행은 누구와 함께여도 즐겁지만 때론 혼자여서 즐겁고 여유로울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아빠 자가용타고 필요한 짐 가득 싣고 편히 다니지만 사실 제가 아이들과 하고 싶은 여행은 배낭에 정말 필요한 짐만 넣고 부족한 것은 여행의 즐거움으로 채우며 떠나는 거에요. 내가 어디어디를 가 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딸 아이 가슴에 그려 둘 그런 여행을 하고 싶거든요. 그럴러면 <버스를 타고>처럼 느림의 철학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시간 안 맞는 고속버스를 기다리며 불평하지 않고, 버스 타고 구불구불 돌아 가는 길 지루하다 말고 바깥 경치 구경하며, 짐이 많아 무겁다고 주저 앉지 않고, 햇볕 그대로 받아가며 오는 비 그대로 맞아가며 흙바람 그대로 살에 스쳐가며, 지역주민들 사는 모습 둘러보며 그렇게 다니고 싶거든요. 곧 그런 날이 오겠지요.^^

 

  노란색을 좋아하는 우리 딸은 아랴이 료지 책을 무척 좋아해요. 이 책을 보면 기분도 좋아진데요. 아랴이료지 작품에선 느림의 철학도 배울 수 있죠. 큰 아이가 아침해가 돋는 장면을 좋아해 그곳에 싸인을 받고 싶어했어요. 읽어보기만 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던 터라 기다리면서 물었지요. "왜 은지는 이 장면이 좋아?" "응. 밝아서 좋아. 난 노란색이 좋거든."

  아랴이 료지의 그림은 위트가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처럼 어딘가 균형이 안 맞는 것 처럼 보이죠. 그러나 사실 아이들은 이런 그림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전체를 잘 보지 못할 때가 많아요. 자기가 보이는 곳을 중점으로 또는 관심 있는 곳을 중심으로 확대하여 볼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엄마가 과자를 줄 때 아이는 엄마의 손만 의식하는 것처럼 아랴이 료지의 그림은 특색있는 부분을 과장하여 그리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선도 없이 삐뚤빼뚤한 군중을 그릴때도 있어요. 그리고 아랴이 료지하면 '노란색'이라고 떠오를 만큼 노란색을 즐겨 사용하죠. 그런 밝은 느낌을 아이는 좋아해요. 싸인을 받으며 은지의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작가가 웃더라구요. 

이 지역에 사는 소년일까요?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떠날 계획을 갖고 집을 나섰지만 버스는 안 와요.

 

하늘은 드넓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요.

버스는 안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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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이제 밤이에요.

라디오도 잠들었어요.

버스는 안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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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어요. 라디오를 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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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안 와요.

 

  소년은 버스가 안 온다고 짜증내지 않아요. 하늘과 바람을 느끼고, 라디오를 켜고 음악을 들으며 음악이 흐르는 곳의 풍경을 생각해요. 아주 아주 근사한 곳도 아니에요. 그냥 사람사는 냄새 가득한 그런 시끌벅적음악이 흘러나올거라 생각하나봐요. 트럭이 지나가고 말을 탄 사람도 지나가고 자전거 탄 사람도 지나가고 어느 새 해는 저물고 밤이 와요. 라디오도 잠든 밤 사람은 하늘가득 총총한 별 한가득 이불삼아 정류장에 누워 잠을 자요. 여행지에서 보던 밤하늘.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말을 실감했던 그 옛날이 떠올랐어요.

  아침이 되었지만 버스는 안 와요. 하지만 아침이 밝아오는 태양을 보면 희망이 솟아나요.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아이는 작가에게 이곳에 싸인을 받아왔죠.

  드디어 버스가 왔어요. 흙먼지 풀썩풀썩 일으키며 왔지만 이런이런....발 디딜 틈도 없어 그냥 떠나버렸어요. 음악은 여전히 룸룸파룸 룸파룸 신나게 흘러나와요.

 

조금 더 기다리다 마음을 바꿨어요. 버스는 안 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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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걸어서 멀리멀리 갈 거게요.

 

  여행의 절대묘미인 것 같아요. 계획은 있으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계획을 수정해서 또 한 걸음 내딛는 즐거움. 정말 이 책의 마지막은 너무나 멋졌어요. 아이들과 이런 여행 할 날을 위해 체력을 길러야겠어요.^^

 

 

우렁각시 -천둥거인 

  프린터가 작동하는 걸 보자 신기해서 프린터 앞에 바짝 앉아 쳐다보는데 아들이 '윙윙'소리가 나니 괴물이라네요.

  "우렁각시" 본인이 하고도 괴물같이 보였는지 그것도 괴물이라네요. 그러나 저는 아들의 무한한 표현력에 늘 감탄합니다

 

  이번엔 책 읽기 전에 프린트물을 먼저 주었어요.   책을 보면 이미지가 굳어버릴까봐 먼저 아이가 맘껏 표현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이번엔 독서 전 활동이 되겠네요. ^^

 

  프린트물을 주고 어떤 그림 같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은지가 남자아이가 물고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다고 하네요. 은지는 항상 그림을 그리면서 쉴새없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요. 이건 어떤 상황이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재미있어요. 블로그에 쓸 말도 생기고요. 

  그림 하단에  "박진후 올림" 이라고 썼길래 네가 만든건데 진후는 누군냐고 물었더니 이 아이의 이름이라네요. 이름이 있으면 부르기 좋을 것 같아 "박진후"라고 지어 주었대요. 

  물고기의 비늘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봤어요. 과자봉지를 사다가 붙힐까? 아님 색종이를 뜯어 붙힐까? 은박지를 구겨 글루건으로 붙힐까? 혼자 고민중이었는데 갑자기 은지가 고개를 들더니 "엄마, 물고기는 풀로 그리고 싶어요" 하는 거에요.

그것도 좋겠다 싶어 그림들고 현관 밖으로 이동했습니다. 

<6살, 57M 은지> 아이에게 박진후란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이름을 부르면 좋을 것 같다네요. 물고기만 색모래를 사용했어요. 흰색모래가 잘 보이지 않자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을 하얗게 만들어버렸네요. 난 백발이 되었다 생각했는데 딸 아이는 머리가 반짝반짝 빛이 나서 멋지데요.

  그 옆에는 온통 색모래로 표현했어요. 하늘을 나는 물고기 답게 머리에 도라에몽 헬리콥터도 달고(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하늘을 나는 건 물고기인데 헬리콥터를 단 건 박진후 그 소년이네요.^^)  전 아이들이 정해진 살색이나 하늘색 뭐 이런색 사용하는 것보다 이렇게 자유롭게 색칠하는 것이 더 좋아요. 진후얼굴이 왜 초록색이냐고 물으니 물고기랑 셋트래요.

 

<3살, 26M 은수> 전 남자아이의 이런 거침없는 표현이 참 좋아요. 아낌없이 풀을 팍팍 짜는 바람에 두툼한 풀에 모래가 붙으니 질감이 두툼해졌어요. 풀의 양에 따라 색모래 양이 조절되니 입체감도 있고 더 화려하죠.

  첫번째 건 색칠하다 나온 종이네요. 밑바탕에 색연필로 색칠한 흔적이 보여요. 색모래 조그만 입구에 풀을 잔뜩 묻혀 놓아서 막혀버렸어요. 그래서 아예 색모래 두껑을 열고 했더니 아주 잔뜩 쏟아났네요.  유일하게 <빨간 끈으로 머리를 묶은 사자>가 등장했는데 우리의 주인공 잘 안보 보이십니까? 아들은 괴물이라는데요^^ 아들이 그린 그림은 로켓같습니다. 로켓 같지 않나요?

  <빨간 끈으로 머리를 묶은 사자>를 가장 먼저 풀칠해서 아주 신이 나서 힘차게 풀칠했던 흔적이 보여요. 그 이후 누나랑 엄마랑 하는 것 보더니 따라하느라 그림의 폭이 작아졌죠. 대신 그림의 질감과 입체감은 풍성해졌네요. 나름 조심하고 애쓰는 모습이 보이네요. 난 처음 같은 그런 그림이 더 좋은데....

 

이민혜 글, 그림 <난 밥 먹기 싫어> -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22

 

  요즘 이 바가지 머리가 유행이던데 귀여울 법도 한데 요녀석 정말 말 안 듣게 생겼네요.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는 나는 <밥 먹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이가 밥 안 먹으면 처음엔 속상하다가도 화가 나더라구요. 내가 얼마나 사랑을 담아 열심히 음식을 했는데 왜 안 먹느냐는 생각이 들지요. 몸에 안 좋은 마이*와 과자들을 시시탐탐 노리는 아이들을 보면 더욱 더 화가 치솟지요. 제 머리가 주전자였다면 아마 수증기 나오는 곳이 두 군데는 있어야 할거에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밥에 있어서 전쟁을 치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안 먹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아이들이죠. 먹지 말라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과자, 사탕들을 호시탐탐 노리며 엄마가 숨겨 둔 비밀장소를 찾아내는데 도사지요. 엄마가 없으면 밥을 먼저 걱정하는 딸 아이. 그러면서도 정작 먹을 것이 풍족한 지금은 그리 심각한 고민은 아닐 것입니다.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으니 어떡게 하면 과자나 사탕을 먹을지 더 고민이 되겠지요. 살살 눈웃음도 치고 밥을 먹으면 뭐 하나만 달라는 조건제시도 걸어가며 밥을 먹습니다. 과자를 먹기 위한 수단으로요.

  엄마를 밥과 관련된 물품과 식품으로 표현한 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엄마들도 때론 음식이 적으로 보이는데, 이럴 때도 음식이 적이 되는군요. 저는 어릴 적 일은 다 잊은 엄마 맞습니다.

  엄마의 얼굴은 주전자로, 몸통은 밥솥으로, 손에는 밥주걱이 달려 있고, 다리는 무로 표현되었네요. 밥을 안 먹기 위해 입을 가리고 중무장을 하고 나온 아들에게 화내는 엄마의 주전자 머리에서 김이 뽁뽁 올라옵니다. 억지로 먹이려는 엄마에게 지렁이 총 공격을 하는 남자아이. 정말 우리 아이들 엄마를 이렇게 공격하고 싶었겠지요. 마침내 친구 기린의 도움으로 밥솥 코드도 뽑고 전원을 꺼버린 아들이 밥 전쟁의 승리자가 되었네요. 아이들은 때론 엄마 위에 서고 싶겠지요. 자꾸 자신을 누르려는 엄마를 제압하는 순간 아이들이 얼마나 통쾌할까요! 여기서 전원은 꺼버렸지만 언제든지 전원을 누르면 다시 되돌아 올 엄마. 아이들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이겠죠.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부르면 다시 날 안아 줄 엄마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자! 아들은 과자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기린과 함께 자축을 벌이죠. 어, 그런데 몸이 이상합니다. 정체모를 벌레들이 아이의 배를 물어버리네요. 이 벌레들이 배 속에서 나온건지 물어서 배가 아픈건지는 정확하지는 않아요. 요 부분이 좀 더 명확하게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아마도 환타지의 특성때문일 거란 생각도 드네요.

  다행히 꿈이었어요. 엄마가 밥 주걱을 들고 아이 방까지 왔네요. 어쩜 주전자 얼굴과 전기밥솥 몸매, 손에 든 밥 주걱 정말 똑같이 생겼네요. 엄마는 "방에서 도대체 뭐 하고 있었니? 언제까지 엄마가 소리를 질러야 밥을 먹을래?" 하며 소리칩니다. 엄마의 말이 지면 한가득 가득 차고 아이는 한쪽 구석에 몰립니다. 아이는 귀를 꼭 막지요. 자! 밥상앞에 앉기는 했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요?

잘 먹을까요? 아님 다시 엄마와 전쟁을 치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