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마르 글, 에바 무겐탈러 그림 <이상한 나라에 간 파울라> - 시공주니어
이 책의 매력은 보면 볼 수록 나타납니다. 처음 내용을 읽고 흐름을 파악한 뒤 두번 째 읽을 때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등장인물의 표정과 세상과 연결된 고리를 찾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책이죠. 여행을 떠나기 전 속지의 그림을 읽은 독자라면 파울로가 떠난 이상한 나라와 현실이 얼마나 세상과 닮았는지 알 수 있을 거에요. 파울로의 책가방에서 쏟아진 책들, 컴퍼스, 가위, 왕관, 가방 속 모기(벌레), 붓, 왕관, 종이배, 시계..... 파울로 주변의 사물이 상상으로 또 다른 현실이 되죠. 아이들 조그만 물건 하나에도 상상력을 발휘해 놀 때 보면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파울라는 밤마다 꿈을 꿉니다. 이상한 나라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거죠. 정말 이곳은 이상한 나라들 뿐입니다. 하나같이 똑같은 것뿐입니다.
파울로가 처음 간 나라는 동글나라입니다. 그곳엔 동그랗게 머리를 만 임금님, 동그라미 왕자, 동그란 책상, 동그란 나무, 동그란 주전자... 모든 것이 동그랗답니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재미도 잠깐. 이곳 세상과는 너무 다른 파울라는 곧 동그라미 경찰에 붙잡혀가 교육을 받게 됩니다. 파울라의 머리는 동그랗게 말리고, 파울라의 사각수레의 모서리는 동그랗게 깍기고, 파울라의 몸에는 동그라미 표를 만들어 붙힙니다. 참 이상한 곳이지요. 결국 파울라는 동그라미 구멍을 만들어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합니다. 파울로는 어떤 나라로 도망갔을까요?
<아이들을 대변하는 모습들>
동그란 나라 왕은 변기를 닮았어요. 왕자님은 아기변기에 앉아 있어요. 임금님 옆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는 궁전으로 오는 길이 되었지요. 동그란 나무 숲에 있는 기계는 알사탕인가요? 구슬인가요? 파울로가 좋아하는 장난감이거나 간식이겠지요? 화장실에 살아있는 주전자들과 찻잔들, 그리고 먹을 것들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엄마가 화장실에 먹을 것을 못 먹게 한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 먹다가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갈 때면 먹는 것에 미련두고 가지고 갈때가 있어요. 그럼 아이의 먹고 싶은 맘이야 어떻든간에 못하게 하거든요. 그리고 동글나라 왕자님 표정 좀 보세요. 영 재미가 없는 듯 눈동자가 반쯤 감겨있어요. 모든 것이 동그란 나라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지요. 파울로가 탈출할 때 왕자님도 따라나서요. 처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요. 병사들 모르게 가야하니까요. 동그란 나라의 교육을 받을 때도 반쯤 감겨 있던 눈은 앞으로 펼쳐질 삐쭉빼쭉 모서리나라, 빨강나라, 거꾸리 나라, 침대나라에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지 볼 수 있어요. 파울라를 잡으거 갔던 따라갔던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탐구하고 있어요. 삐쭉빼쭉 사각나라 공주도 그렇고, 동글나라에서 함께 한 달님과 병아리도 그래요.(병아리는 동글나라를 벗어나자 알을 깨고 나와 돌아다녀요. 빨강나라에선 알에다 물감을 담아 쓰는 센스까지 발휘하죠).
<어른들을 대변하는 모습들>
이것이 아이들의 모습이라면 우리 어른을 대변한 모습들은 누구일까요? 나라 자체가 말해주고 있죠. 남과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것만 고집하고 똑같음을 강요한는 세상, 특히 삐쭉빼쭉 나라 나무들 사이 동그란 나무에 X표가 있고 가차없이 뾰족한 날을 가진 생명체가 다가와 나무기둥을 자르고, 자동차 바퀴조차도 네모난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우리가 획일적인 사고를 가지고 변화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지 생각했어요.
부모들이 아이에게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남들이 학습지 하면 따라하고, 무엇을 배우면 내 아이의 특성과 취미 상관없이 기본학습이 되어야 하고, 남들 집에 있는 전집 우리집 아이도 있어야 하고, 읽는 것은 나중문제요 책장을 채워주면 부모로서 기본은 했다고 생각하는 마음.... 또 얼마나 많을까요? 잣대를 잰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마치 파울라의 잣대를 자로 측정할 수 있는 것처럼 삼각자와 긴 자를 이용해 치수를 재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잣대를 이용하여 아이를 평준화시키려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동그란 나라의 주전자 선생님을 주목해볼까요? 동그란 나라의 선두교육자였던 그녀는 각 나라를 여행할 때 마다 가장 빠르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직각나라에서 그녀의 동그란 머리와 옷무늬는 직각머리묶음과 직각무늬 옷으로 바뀝니다. 빨강나라에서는 동그란 나라의 처음 모습대로 돌아오긴 했 적응하고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남들과 똑같이 되려는 어른의 모습을 잘 대변해주고?생님도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그곳이 편했는지 곤히 잠들었네요. 어른인들 이런 사회가 편하겠어요. 단지 강요되고 학습되고 그것을 바꾸기 보다는 또 다시 내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세상 편하게 살아가는 법을 되물림 하고 있는 거지요.
빨강나라의 녹색스파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 하는 어른들의 욕심을 내보이고 있고요. 그래서 많은 명분과 대의를 내세우며 세계 곳곳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세상에 아이들은 희망입니다. 이상한 나라로 여행 할 때마다 같이 파울라를 따라 온 친구들 덕분에 세계는 조금씩 섞여 갑니다. 침대나라에 도착했을 땐 모든 친구들이 각자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지요. 자기 모습 그대로일때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요. 세상은 하나의 생각과 모습으로는 살 수 없어요. 이 세상에 하찮게 여기는 파리조차도 다 하는 일이 있잖아요. 더러운 파리의 구더기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우죠. 그 나머지를 미생물들이 먹고, 또 다시 생명은 싹을 틔우고...... 그렇게 각각 다른 생각과 모습으로 어울려 살아갈 때 세상이 빛이 나는 것 아닐까요?
침대나라에서 달콤한 잠을 즐기는 파울라를 깨우는 소리. 아직 비몽사몽인 듯 꿈과 현실이 교차되어 있습니다. 생명력 가득했던 친구들은 점점 사물의 형체를 드러내지요. 학교로 다급하게 뛰어 가는 파울라. 그리고 이상한 나라에서 날아온 편지들. 또 다시 찾아올 오늘밤이 정말 기대되요.
상상의 세계와 탈출장면을 채색과 흑백으로 칠해 긴장감을 더했고요. 흑백속에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궁금증로 빛나는 아이들 얼굴 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