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건가? 글발 하나는 확실히 믿을만한 C. J. 튜더였다.
작년 여름에 그녀는 <초크맨>으로 우리들을 후끈 달구는 동시에 오싹하게 만들더니...
올해는 <애니가 돌아왔다>를 들고서 우리 곁을 돌아왔다. 연례행사가 되려나 보다. ㅋ~
신작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내년 여름에는 또 다른 작품으로 후끈 오싹하게 해줄 텐가?
이 작품은 공포·스릴러라고 한다지만 내게는 일종의 성장소설처럼 다가왔다 할 것이다.
오래전 안힐 마을을 떠났던 조 손이 익명의 이메일을 받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끔찍한 사건으로 공석이 된 모교의 영어교사 자리를 얻기 위해서지만 그에겐 숨은 계획이 있다.
쇠락한 탄광마을인 안힐은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혹독하고 음울하며 시큰둥하다.
폐쇄적이고 방문객을 불신하는 눈빛으로 대한다. 금욕주의적이고 건실한 동시에 지쳐있다.
누가 들어오면 노려보고, 떠나면 땅바닥에 침을 뱉는 그런 마을이다. ___ P18에서 발췌
마을 모두가 충격인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엄마가 아들을 처참하게 살해하고 자살한 것이다.
엄마는 피로 벽에 ‘내 아들이 아니야’라고 휘갈겨놓았다. (___ 프롤로그 중에서)
사건의 처참함에 경찰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인 불길한 집을 조 손은 세 들어 살게 된다.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그리고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어떤 이유로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조는 익명의 이메일로 과거 동생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자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을인 안힐로 귀향한 조 손.
표지와 띠지의 요란뻑적지근한 문구처럼... <애니가 돌아왔다>는 아주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조 손의 고등학교 시절인 과거와 교사가 된 지금의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되는 형식이다.
“내가 뭔가를 발견했어." “어디로 들어가는 입구?” “그 구덩이.” (___ p.180~181에서 발췌)
"... 대다수가 유아기 아니면 10대가 되기 전에 죽었죠.” “이 묘지에서 이상한 점 못 느끼셨어요?”
나는 두리번거린다. “죽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 말고 다른 거?”
“여기에는 젖먹이나 어린애 무덤이 없어요.” 그는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애들이 다 어디 있을까요?” (___ p.157~158에서 발췌)
폭발적인 뇌 성장의 영향 탓인 건지... 그 시기에 요동치는 호르몬의 영향 탓인 건지...
그 나이에 아름다운 청춘이 아닌 잔인하고 끔찍한 일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영화가 많았다.
핏속에 흐르는 천성 탓인 건지... 악의로 가득 찬 얼굴로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장면들...
부모의 손을 놓고 또래집단에 집착하는 시기란 것을 이해하면서도 혐오감에 속이 울렁거린다.
조 손의 학창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을 휘두르는 스티븐과 그를 따르는 패거리들이었다.
영문학관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크리스가 우연히 발견한 해치... 그 아래에 숨겨진 검은 비밀...
조와 (말더듬이) 크리스는 스티븐의 패거리에 들어가지만 두 사람은 선을 걸치고 있었다.
지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 그들의 눈앞에 기괴한 작은 뼈들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치를 열기 위해 가지고 왔던 쇠지렛대를 마치 야구 방망이처럼 휘둘러대는 스티븐이다.
뼈들이 박살 나는 가운데 몰래 뒤따라온 여동생 애니가 스티븐이 휘두른 쇠지렛대에 맞는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는 것은 소설의 절정과 결말 무렵이 되어서야 밝혀진다는 것은 안 비밀.)
어둠 속에서 홀로 동생의 주검을 데리고 나가려 애를 쓰던 중에 여동생 애니가 사라진다.
극도의 공포 속에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온 조는 부모에게 여동생의 일을 차마 말하지 못한다.
그건 죽은 쥐 냄새가 아니었다. 우리 집에 둥지를 튼 다른 뭔가의 냄새였다.
(.......) 가끔 같은 노래가 몇 번이고 반복될 때도 있었다.
“그녀가 온다면 산을 돌아서 올 거야, 그녀가 온다면 산을 돌아서 올 거야.”
그게 아닌 날은 끔찍한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렸다. (.......)
내가 그랬던 이유는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건 내 몫이었다. 참회였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처벌이었다. 아니면 내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일에 대한 처벌이었다.
나는 그녀를 구하지 않았다. (___ p.354에서 발췌)
48시간 뒤 무사히 여동생 애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애니는 내가 알던 애니가 아니었다.
광산이 생기고 마을이 생긴 다른 마을과는 달리 안힐은 광산 이전에도 마을이 존재했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없는 신비적 초자연현상을 뜻하는 오컬트(occult)가 자연스러운 마을이다.
마을의 오래된 묘지에는 어린아이들이 없고 그 구덩이에는 어린아이들의 수상한 뼈들로 가득하다.
죽음의 순간을 맞은 후 되살아나 마을로 돌아온 아이는 단지 애니 혼자만이었을까?
오컬트 현상은 사회가 병들었을 때 그 세력을 더한다고 한다. 안힐마을의 숙명처럼 말이다.
폐쇄적이고 변화하지 않은 마을에서의 불안정하고 불순한 사춘기 아이들의 조합이 빗어낸 사건들...
나는 이 소설 <애니가 돌아왔다>를 단순하게 공포·스릴러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따라가면서 읽으니 더욱 재미나고 흥미로웠다.
그래서인지 오밤중에 나 홀로 깨어 이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었더랬다.
조 손에 의하여 구덩이가 파괴되고 무릎을 깨트렸던 글로리아도 마리의 남편 스티븐도...
암에 걸려 부활하기를 원했던 마리도 모두 죽고 말았지만 반전의 결말은 뜻밖으로 흘렀다.
이 모든 것을 막기 위하여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정체와 이유가 밝혀지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예고하듯 안힐마을의 저주는 영원할 것이다. 인간이 소멸하지 않는 한...
영화 오멘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구덩이는 발견되지 않고 구덩이가 선택을 한단다.
애니와 스티브라 추측되는 알 수 없는 존재가 또 다른 소년을 선택했듯이 풀리지 않을 저주겠다.
C. J. 튜더 <초크맨>도 재밌었는데 이 책 <애니가 돌아왔다>도 못지않게 재미가 있었다.
그녀의 다음 책이 궁금해진다. 번역가가 이미 작품을 받은 상태라는데 내년을 기대해본다.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 스티븐과 어머니 마리의 피를 물려받은 사춘기의 아들 제러미...
다만 시대를 달리할 뿐... 사람만 달라질 뿐... 비열하고 잔악한 행동은 매번 거듭되고 있다.
그 구덩이 속으로 들인 것은 과연 아이들의 주검뿐이었을까? 스티븐과 같은 질 나쁜 아이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자기 취향의 관점으로 읽기에 딱 좋은 <애니가 돌아왔다>가 아닐 수 없다.
애니가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