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 나이 전후로 시골에서 살았다면 추억에 젖어들 <아빠의 검정 고무신>이었다.

나야 나서 지금까지 포장 잘 된 대도시에서만 살아서 "아, 그랬었다지..." 정도의 감흥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여자라서 남자아이들 놀 듯 그렇게 놀아보지도 않았기에 100% 공감이 되질 않았지만...

가만히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많은 것들이 겹쳐지기에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저자가 창령 출신이라서인지 사투리도 정겹고 이해하지 못 할 단어는 없어 좋았더랬다.

즐겨 보던 만화영화 "검정 고무신"과 비슷한 감성이 아닐까 싶어 모처럼의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요즘은 학교나 학원 근처 또는 등하교 때가 아니면​ 아이들 보기가 참 쉽지가 않은 듯하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만 해도 왁자지끌 골목에서 아들 친구들이 어울려 놀기도 했는데 말이다.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서의 추억을 읽으며 함께 추억에 젖어들 사람이 많을 듯하다.

나도 내 동생이 노는 것을 지켜봤던 추억 속의 놀이들이 하나둘 떠오르기도 했으니까...

사시사철 놀이도구가 따로 없어도 자연 속에서 잘도 만들어서 놀던 시골 아이들이다.

놀기도 참 험하게도 노는 듯했다. 무에 그리 죽을 둥 살 둥 그리 노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도대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를 갖가지 기상천외한 놀이들이 옛추억을 되살린다.

직접 경험은 없어도 동네 머스마들이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놀던 그리운 장면들이다.

동향의 동년배를 만나면 밤새 이야기해도 다 못할 듯한 수많은 추억을 공유할 듯했다.

아마도 저자는 형제들이 모이면 어릴 적 고향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를 듯싶다.

요즈음의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다고 하니 아빠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를 이해나 할까?

스마트폰이나 만지작대며 게임을 하던 이야기나 늘어놓을 듯싶은 세대 단절이겠다.

지금 삼십 대 초반인 우리 아들딸도 동네와 대단지 아파트 아이들이 조금 달리 놀았다.

그나마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자유시간을 즐기는 듯해 보였지만...

말 좀 물어나르는 엄마들 말로는 H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그리 놀진 못한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이들에게... 특히 아들에게는 놀 땐 신나게 놀라고 했더랬다.

딸은 아들과 달리 집안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아들이 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더운 줄도 모르고 어쩜 저리 잘 놀까 싶어 슬몃 웃음이 났더랬다.

그때 어울리던 동네 친구들이 아들의 결혼식장에 모두 모이니 예전처럼 정이 가는 듯했다.

고향을 떠나 멀리 타지에 왔지만 아들의 어린 시절 친구들을 보니 여전히 그때와 같았다.

딸의 결혼식 날에도 딸의 친구들이 모였는데 같이 노는 것을 못 봐선지 아들만큼 감흥은 없었다.

아들 친구들을 내 아들처럼 같이 맛난 것 해먹이며 혼내기도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아빠의 검정 고무신>을 읽으며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으로의 여행을 했더랬다.

내 경우 고무신이라면 네댓 살 때의 어린 내가 사진 속에서 신었던 꽃고무신만 기억이 나지만....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대는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들을 만날 <아빠의 검정 고무신>이다.

 

 

 

 

 

 

 

아빠의검정고무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선택이라는 <나를 사랑하거나 더 사랑하거나>다.

마음의 탯줄을 끊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자기 사랑 실험 에세이'라고 한다.

일러의 색감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던 이유미의 나를 더 사랑하기 실현 내지는 실천법이겠다.

이기심 하면 왠지 듣기가 좋지 않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기 일쑤다.

이타심이 미덕인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선뜻 자신을 이기적인 사람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따져 묻진 않더라도 내가 있음으로써 세상이 존재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공연하게 난 나 자신이 우선이야 하기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좋은 사람 신드롬은 나고 자라면서 수시로 우리에게 압박을 가해 오고 있음에 그러할 것이다.

저자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란 평가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나를 내세운다는 것은 이해받지 못하기 십상이다.

모난 사람, 튀는 사람 취급을 받아 나(우리)와 다름에 거부감을 일으키기 쉬울 터이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있듯 아무래도 상대하기 쉽잖은 사람 딱지가 붙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살았던 걸까?”

절망에 휩쓸려 내려갈 때 착한 딸이라든가 성실한 직장인,

사랑스러운 연인이라는 수식어는 허울 좋은 지푸라기일 뿐이었다.

남들한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야.

나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 p.23

어느 날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나는 내가 위로하고 안아주기로 했더니 세상이 달라졌단다.

‘태어날 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탯줄을 잘랐지. 이번에는 내 손으로 잘라낼 거야.

더는 사랑을 구걸하며 살지 않겠어.’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마음의 탯줄이 떨어져 나갔다.

단지 마음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몸이 떨리고, 걸음이 휘청거렸다.

(…중략) 유미야, 유미야, 유미야. 소리 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마음의 좁은 길을 따라 길 잃은 아이가 걸어왔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아이를 품에 안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부모가 되어줄게. 이제부터 내가 너의 엄마고 아빠야.”

아빠가 떠나고, 엄마가 날 밀어내도 나에게는 내가 있구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안도했다. 집을 나오는 게 독립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독립은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 p.54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상처 입어 외로이 울고 있는 아이가 산다고 한다.

저자도 자신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위로하기로 했단다.

관계도 일도 모두 정리하고 자신부터 챙기는 삶을 살기로 하자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단다.

더러 오해도 받았지만 이해해주지 못한 사람까지 챙기고 싶지 않아 놓아버렸단다.

그랬더니 적막하기는 해도 오히려 삶이 더 충만해지고 더 이상 힘들지 않아졌더란다.

처음에는 나 하나만 품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수록 마음이 점점 커다란 원을 그렸다.

처음에는 가족이, 그다음에는 친구가,

더 나아가 비슷한 고민과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향해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게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신을 넘어서 주변까지 물들인 것이다. --- p.228

내가 행복해야만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을 수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에 겨워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어떤 것도 소용이 없어진다.

잘 차려진 잔칫상의 산해진미도 남들이 부러워할 명품 옷과 가방도 거북하다면 무의미하다.

찬 밥에 신 김치로 물 말아 먹고 시장통에서 산 낡은 티셔츠와 일바지를 입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 더 만족스럽지 싶다.

물론 사람마다의 가치 기준이 다르기에 저자의 삶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의 가치를 일러주는 이야기라 하겠다.

현재의 내 삶과 비교하여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나를 사랑하거나 더 사랑하거나>였다.

이번 책은 딸에게 읽으라고 따로 잘 챙겨둬야겠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길 바라며...

 

 

 

 

 

나를사랑하거나더사랑하거나

 

 

 

연이은 폭염에 조금이나마 서늘해질 단편들을 모아놓은 이스안의 <기요틴>이다.

기요틴(guillotine)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 당한 프랑스의 사형도구로 유명하다.

볼거리, 구경거리가 없어서일까? 아이까지 데리고 오는 군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단다.

사형수가 목이 잘린 채로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구경꾼들은 열광을 한단다.

단두대에 머리가 잘리기를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은 차마 상상하기가 힘들고 끔찍하다.

이 단편집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열 가지 기묘한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어쩌면 암울하고 습해서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인간들의 어두운 내면이 아닐까 싶다.

길을 가는데 어느 낯선 사람이 죽은 지인과 당신이 똑 닮았다고 붙잡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누군가 나와 꼭 닮았다 한다면 솔직히 나는 기분이 나쁠 것이겠다. 죽은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죽은 후 다시 태어나는 것이 환생일 텐데 이 경우 환생이기보다 빙의가 맞는 표현일 듯하다.

단편 환생에서 낚시를 떠났다 익사를 한 남편 민우를 잊지 못해 폐인이 되다시피 한 연희다.

지훈은 더해진 호기심에 미인이었을 거라 짐작되는 그녀를 만나고 서서히 사랑을 키워나간다.

도플갱어였을지도 모를 만큼 지훈은 민우를 빼닮았고 끝내 민우화 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역시 사랑의 힘... 흔히 말하는 사랑의 위대함인가?

이별령의 경우 헤어진 두 남녀가 있고 그들의 곁을 항상 맴도는 나체 상태의 생령이 등장한다.

생령이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사람의 령이다. 풀지 못한 지독한 염이 만들어낸 감정의 찌꺼기 같은...

생령에 시달리던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고 남자도 여자의 모습을 한 생령에 시달림을 확인한다.

두 사람이 만나자 여자의 생령과 남자의 생령은 진한 스킨십을 한 후 손을 맞잡고 사라진다.

상대를 향한 그릇된 집착이 생령이 되어 나타난다면 그 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싶어진다.

이래서 서로가 만날 때도 잘 해야 하겠고 헤어질 때도 잘 해야 함은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겠다.

광기에서도 그랬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던 아내가 자는 남편을 부엌칼로 목을 찔러 살해한다.

죄책감과 후회에 사로잡힌 아내가 목을 매려고 하자 죽은 남편이 일어나 아내를 구하는데...

죽음의 크리에이터는 요즈음의 세태를 빗댄 듯하다. 죽음을 자살을 권유하는 방송을 한다.

자살한 자들도 게스트로 나오고 결국에는 크리에이터 자신의 끔찍한 자살 장면도 방송을 탄다.

오래지 않은 전의 어느 여자 BJ가 방송 도중에 창문으로 투신해 이슈가 되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 밖에도 교실 폭력으로 인한 자살을 다룬 머무르다 와 뱀술이 된 뱀의 원한을 다룬 사주 등...

조금은 미흡하다 싶지만 <기요틴>에서 다룬 소재는 찜통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듯했다.

작가 이스안은 기이하면서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밝게 희망적으로 살라는 듯해 보였다.

열 가지의 단편을 통해 우리 이리 살지 말아요. 주변을 둘러보고 외로운 이를 살펴주어요. 하듯...

어쨌거나 이런 장르를 좋아한다면 가볍게(?) 읽어봄직은 하겠구나 싶은 <기요틴>이겠다.

 

 

 

 

 

기요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