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를 쓴 ;에이모 토울스의 데뷔작인 <우아한 연인>을 내 나름으로 즐겁게 읽었다.
즐겁다는 것은 통속적인 재미를 뜻하지 않는다. 오랜만의 문학작품 분위기란 이야기라고 하겠다.
문학소녀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전문학, 세계문학을 즐겨 읽다 접했던 현대문학 작품은...
엄마, 할머니의 손맛에 맞춰진 입맛이 처음으로 접하는 식당 밥 같은 느낌이었다 할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모양인지 조악스럽단 느낌이 전보다는 덜해진 듯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고전 명작을 따라잡는 작품은 좀처럼 만나기 힘드니 아쉬운 마음은 여전하다고 하겠다.
잠깐 옆으로 새자면 오래전에 고전 문학 작품만 파다가 만났던 현대 작가의 책은 코웃음이 났었는데...
세월이 꽤 흘러 그 책들이 교과서에도 실리고 명작 대접을 받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더랬다.
어쩌면 요즘 작품을 즐겨 읽다 접하는 고전문학은 고리타분하고 생경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책과는 문체도 다르고 전개도 느릿느릿해서 패스트푸드만 먹다 전통식을 먹는 느낌처럼 말이다.
에이모 토울스의 데뷔작인 <우아한 연인>은 케이티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한 해 동안 일어난 일들이다.
1966년 벨과 함께 갔던 뉴욕의 사진전에서 우연히 팅커 그레이의 사진을 발견한 중년이 된 케이티...
케이티는 룸메이트였던 이브와 옛사랑 팅커가 함께였던 1938년 무렵 뉴욕에서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보게 된 그의 미소에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그 사진이 내게 벌컥 달려든 것 같았다.
어쩌면 그냥 자기만족이었는지도 모른다. 맨해튼에 사는 부유한 중년의 근거 없이 달콤한 자기만족. 하지만 그 미술관의 문들을 통과하면서 나는 내 삶이 완벽한 평형을 이루었다고 맹세하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두 마음의 결합이었다. 수선화가 태양을 향해 기울어지듯 미래를 향해 부드럽지만 불가피하게 기울어지고 있는, 두 대도시형 인간들의 결합.
그런데도 내 생각은 나도 모르게 과거로 향했다. 힘들게 쌓아 올린 지금의 완벽한 모습에 등을 돌린 채, 나는 달콤했지만 불확실하던 과거를, 그때의 우연한 만남들을 찾아 헤맸다. 그때는 정말 우연하고 열띤 만남 같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운명 같다는 느낌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
그래, 내 생각이 향한 곳은 바로 팅커와 이브였다. 하지만 월러스 월코트와 디키 밴더와일과 앤 그랜딘에게도 생각이 향했다. 나의 1938년에 색깔과 모양을 입혀주었던,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한 여러 사건에도. --- p.18
1937년의 마지막 밤에 화가인 형 행크를 만나러 왔던 팅커는 케이티와 이브를 알게 되어 합석을 한다.
젊고 유망한 은행가에 시대가 바라는 모습을 모두 갖춘 신사 팅커에게 두 사람은 동시에 반하고 만다.
어두운 시대였으나 청춘이었던 세 사람은 뉴욕 상류사회의 다양한 사람도 만나며 나름으로 즐겁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이브가 운전하던 차가 추돌사고를 당하고 세 사람의 운명은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그가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이브가 그를 먼저 보았다. 이브는 뭔가 말하려고 무대에서 고개를 돌리다가 내 어깨너머로 그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내 정강이를 차며 고갯짓으로 그를 가리켰다. 나는 의자의 위치를 바꿨다.
그는 굉장한 미남이었다. 키는 175센티미터쯤 되고 허리가 꼿꼿했으며, 검은 넥타이를 매고 팔에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갈색 머리에 감청색 눈, 그리고 양 뺨 한가운데가 작은 별 모양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조상이 메이플라워호의 키를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조금 구불구불해진 채 밝은 표정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는 모습.
“내 거야.” 이브가 말했다. --- p.31-32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를 생각하면 어쩐지 흑백영화 또는 세피아 톤의 영화가 연상이 된다.
대공황을 거치고 밀주 시대를 지나 2차 세계대전을 앞둔 폭풍 속의 고요와 같은 느낌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 전인 청춘들의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특유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카페...
어느 시대건 간에 청춘들은 불안정하겠지만 당시 젊은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우아한 연인>이었다.
자신만의 클래식함으로 프랑스 피츠제럴드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현대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무모해 보였을 작품 속 이들의 용감한 선택이 바로 우리를 올바른 세상으로 이끈 역사적 순간이었다는...
<우아한 연인>에 이은 <모스크바의 신사> 속의 로스토프 백작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놓고 있다고 한다.
데뷔작부터 읽지 않았지만 각각의 책을 통하여 고전문학의 맛이란 이런 것임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난하게 대충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현재의 내 선택이 가져올...
수십 년 후의 결과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었고 그들이 뿌렸던 씨앗들의 결과인 현재를 생각하게 했었다.
버락 오바마,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가 극찬한 이유가 있었던 <우아한 연인>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제목만 보고서 사랑타령이라고 오해를 했었지만 모처럼 고전문학의 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이 되었던 책이겠다.
책 검색을 하면 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발견할 것인데 현대문학에서 왜 이 책을 다시 내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인생은 여행보다는 허니문 브리지와 더 가깝다. 20대 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수많은 꿈을 좇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도 시간이 충분할 것처럼 보인다. 게임을 하면서 카드를 하나 뽑으면 그 카드를 그냥 갖고 다음 카드를 버릴 건지, 아니면 먼저 뽑은 카드를 버리고 그다음 카드를 가질 건지 곧바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탁자 위에는 우리가 뽑을 수 있는 카드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방금 내린 결정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 p.517
인생이 우리에게 꼭 선택지를 제공해줄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인생이 우리의 경로를 정해두고 거칠거나 섬세한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서 우리가 그 길을 벗어나지 않게 감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 성격,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바꿔놓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제시되었을 때 우리에게 1년이라도 여유가 주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신의 은총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 p.517-518
우아한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