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만난 우아하게 나이 드는 7인의 소박한 주방 풍경인 <이름 없는 요리를 합니다>다.

중년 이후, 그들의 식탁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는지를 담아내고 있어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된다.

입맛과 식성은 평생 안 변할 것 같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그렇지도 않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누구를 떠나 나부터도 좀 더 나이를 덜먹을 때와는 좋아하는 것이 많이 달라졌고...

먹고 싶은 것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 몸이 필요해서 내 입이 원하는 것도 달라졌음을 느끼곤 한다.

우리 집의 랑 님이 너무나 좋아해서 본방은 물론 재방에 재재방까지 챙겨보는 먹방이 있다.

'맛있는녀석들'이란 프로그램인데... 불과 몇 년 전에는 군침이 줄줄 흘러내리던 음식들이...

지금은 비호감으로 왜 저런 걸 먹나 싶고 예전에는 심드렁했던 음식들은 맛있겠다고 느낀다.

"나답게 살기 위한 부엌의 기본"이란 부제를 단 이 책 <이름 없는 요리를 합니다>는...

가족들 특히 자식들을 위하여 음식을 하다가 자녀들이 성장을 해서 분가를 한 이후의 이야기다.

말하자면 지금의 내 상황과 연령까지도 비슷해서 내가 왜 그러한지도 이해가 되었다 할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먹고 싶은 것이 있었고 즉시 먹지 못하고 넘어가면 몸이 아프곤 했더랬다.

그때보다 훨씬 나이를 먹고 건강도 전보다 좋지 못한 지금은 먹고 싶은 것이 전혀 없어졌다.

내 몸에 부족한 것이 뭘까 체크해서 대체할 수 있는 식품으로 단지 몸을 위해 먹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 오래전에 식욕이 돌 때에 먹고 싶어 하던 음식들과는 거리가 먼 요리들이 실렸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것보다는 담백하고 제철에 구하기 쉬운, 간단하고 간편한 요리법이었다.

나이만 드시고 밥은 안 드신다란 광고와 나이 드시고 거짓말만 느신다란 광고를 보면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두 남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됨은 딱 내가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내 어머니의 지금 내 나이 때도 겹쳐 떠오르며 당시에 이해해드리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누구나 자기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고 한다. 나이 듦을 나도 그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이 책 <이름 없는 요리를 합니다>에 실린 7인의 모습에서 그렇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자식들이 둥지를 떠난 중년 이후의 삶을 아마도 미리 엿보게 되는 사람들이 많을 듯할 것이다.

모든 이유들을 다 떠나서 건강과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며 이미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먹은 음식이 내일의 내 모습이란 말도 있듯 뭘 어떻게 먹을지를 생각해보게 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건 각자의 취향과 생활양식에 따르겠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내용은 분명하다.

현재의 내 부모님을 위하여 미래의 나를 위하여 분명히 느낄 점은 많을 듯한 책이라 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게 있어 눈길을 끌었던 요리는 분명 달랐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그들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겹쳐짐은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도 아무리 힘들고 귀찮아도 아이들 먹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달랐을 테니까...

중년 이후 삶이 쉽게 상상되지 않은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이 될 책이라고 하겠다.

어쩌면 먹는 것마저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한 통 드릴지도 모르겠다.

광고에서처럼 잘 드시고 있다 하셔도 한 끼니 대충 때우고 계실지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이름없는요리를합니다

 

 

 

 

평이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라는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다.

사실 <오베라는 남자>를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읽지를 않아서 더 재밌는지는 잘 모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읽을 것을 했지만 그 작품은 그 작품이고 이 작품은 이 작품이다.

고쳐 말을 하자면 나는 비교해서 평가하는 것을 좋아하지를 않기에 내게는 별 상관은 없다.

동명의 소설을 드라마화를 하거나 영화화를 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어쨌건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린 긴 시간과는 달리 엄청 빠르게 읽어버렸다고 하겠다.

읽던 책이 너무나 지루해서 기분전환을 위해 잡았다가 순식간에 읽어버린 것은 분명하다.

고복희가 춤을 췄건 안 췄건 별로 상관이 없겠고 그녀는 매우 독특한 성격의 인물이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이기적이다 욕먹을망정 이런 사람만 산다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남에게 폐 끼치지도 않고 소신대로 정해진 길만 걷는데 감히 누가 돌을 던진단 말인가?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복희와 같은 사람을 찐맛이 없다며 기피하기 일쑤다.

아마도 고복희의 참모습을 알아주는 사람은 비주류거나 소외된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속에서도 당사자인 고복희도 영문을 모른다, 염두에도 없다.

고복희, 그녀에게서 좋은 점을 발견한 사람들은 주류도 잘난 사람들도 결코 아니었다.

힘든 한국 사회, 한국인의 속에서 잘 적응해나가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듯했다.

학생이란 원칙대로 최류 가스가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꿋꿋하게 강의실을 지켰고...

매주 토요일 밤이면 디스코 홀에서 죽쳐도 주위의 춤추란 말엔 끄떡하지를 않는 고복희였다.

누군가는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지 고복희는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 p.15

그렇게 융통성 없이 굴다간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남아나질 않을걸.

결국 혼자 남게 될 거야. 영원히... --- p.48

낭비는 고복희가 용납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드는 건 게으름뱅이나 하는 짓이다.

항상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 p.88

보통(?)의 사람들 눈에 비치는 우리의 고복희에 대한 평가가 이랬다.

그게 어쨌단 말일까? 그 누구에게도 폐가 되는 일은 아닌데 어쩌란 말인가?

하도 성가시게 굴기에 점심을 먹어줬다. 빵집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늦여름의 유원지에 놀러 가기도 했다. 손을 잡았고. 포옹을 했고. 결혼에 이르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복희는 회상한다. --- p.10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성가신 남자는 매일같이 찾아와 조금씩 그녀의 벽을 허물었다.

어떤 날은 달콤하게, 어떤 날은 아프게. --- p.206

장영수라면 말했겠지. 세상을 바꾸는 건 이런 멍청이들이라고. --- p.56~57

대학생 시절 만나 결혼을 했던 남편 장쌤은 누구에게건 좋은 사람이란 평을 받는 인물이다.

고복희의 남편 장영수는 그녀의 모습 있는 그대로 받아준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그 남편이 죽자 그가 이야기한 따뜻한 곳인 캄보디아로 와서 호텔 원더랜드를 연다.

기후를 말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 살만한 온도, 따뜻한 곳임을 짐작 가능한 부분이겠다.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 93

은근한 마음으론 이렇게 그냥저냥 살고 싶다.

소비 활동이 없으니까 생산 활동에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제로의 상태로 살면 되잖아. --- p.24

박지우의 머릿속에는 실패라는 두 글자가 떠나지 않았다.

제발 좀 그만 보고 싶지만 명절마다 봐야 하는 지긋지긋한 사촌 같다. --- p.103

외국에서 한 달 살기 위해 프놈펜으로 온 박지우 역시 주류에 들지 못한 인물이다.

누군들 삐까뻔쩍한 삶을 살고 싶지가 않을까? 헬조선이란 한국의 현실이 그러하지 못한데?

린은 많은 것을 일러준다. 옳다고 믿었던 것이 어쩌면 옳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다고.

그저 싫어만 했던 것에서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 p.77

한국인에게 정은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그건 사람이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타인을 그저 타인으로 대하지 않는 것,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것.

안대용은 그렇게 배웠다. 못 먹고살아도 정 없이는 살지 마라. --- p.78

그리고 역시 잘 나가지 못하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현지인 린과 모자란 듯한 안대용이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는 내용이 격렬하거나 충격적인 사건은 거의 없이 잔잔하다.

그럼에도 흡입력은 장난이 아니다. 독특한 인물들과 흔히 있을 법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작가 문은강만의 스타일로 끌어가고 있는데 단숨에 몰입 가능한 필력이라 하겠다.

캄보디아의 교민들과 교민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긴 하겠지만...

공간적인 장소만 빌려왔을 뿐 실제의 한국 사회에 만연된 추악한 민낯이 아닐까 싶다.

실제 저자 문은강이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표지와 제목이 유치해 보여서 자칫 놓칠 뻔했지만 의외로 꽤 재밌었던 책이었다.

약자를 폭행하는 모습에 빡쳐 응징을 하면서도 이건 옳은 행동이 아니라는 모습이 멋졌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알며,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에 분명한 선 그음도 마찬가지였다. 

 

 

 

 

 

 

춤추는고복희와원더랜드

 

 

 

실화에 근거한 자전적 성장소설인 후지사키 사오리의 <쌍둥이>겠다.

저자인 후지사키 사오리도 소설 속의 등장인물처럼 밴드 활동을 한단다.

이쪽 방면 특히 일본 밴드에 문외한이라서 들어본 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내한공연을 한 적도 있다는 4인조 밴드 "SEKAI NO OWARI"라고 한다.

성별도 나이도 부모도 전혀 다른 쌍둥이가 존재할 수가 있을까?

육체로는 전혀 성립될 수 없겠지만 영혼은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흔히들 말하는 영혼의 짝이라는 개념과도 다른 소설 속의 쌍둥이라는 느낌 말이다.

외톨이 여중생 나쓰코는 뻥 뚫린 계단참에서 우연히 쓰키시마를 보자 말을 건넨다.

그때 쓸쓸히 하늘을 보고 있던 쓰키시마는 한 학년 선배로 왠지 느낌이 다르다.

함께 서점이나 음반 가게에도 가며 영화를 보고 산책도 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곤 한다.

때로는 연인 같고 때로는 친구 같은 두 사람의 사이를 쌍둥이라 말하는 쓰키시마다.

연인이고 싶으나 우정마저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나쓰코의 마음은 늘 심란하다.

매일 밤 불면으로 힘들어하는 나쓰코와 쓰키시마는 나쓰코가 잠들 때까지 통화를 한다.

그러던 중에 쓰키시마가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지만 적응을 못해 곧 자퇴를 해버린다.

그런 아들을 보다 못한 쓰키시마의 아버지는 쓰키시마에게 미국 유학을 권하게 되는데...

쓰키시마의 가족과 나쓰코는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고 혼자 남은 쓰키시마다.

그러나 쓰키시마는 미국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나쓰코와 국제통화를 하다 쓰러진다.

공항장애로 인한 발작으로 의사는 쓰키시마에게 ADHD라는 진단을 내리게 된다.

결국 일본으로 돌아온 쓰키시마는 나쓰코를 찾아오지만 충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만다.

쓰키시마 없는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발악하듯 피아노 연습에만 매진하던 나쓰코였다.

나쓰코와 쓰키시마는 청소년기에 겪는 정신적 방황을 모두 거치는 듯 보였다.

스스로 자존심은 높지만 자신감은 낮다는 나쓰코는 왕따에 우울증까지 가지고 있다.

매사에 재미가 없다는 쓰키시마는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고 밝혀졌다.

두 문제(?) 소년 소녀는 쓰키시마의 느닷없는 결정으로 어느 날 밴드 결성을 하게 된다.

쓰키시마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나쓰코는 쓰키시마의 친구들과 낡은 지하실을 빌린다.

금방 싫증을 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쓰키시마에게는 밴드 활동이 천직이었나 보다.

형편없어져 나쓰코를 걱정하게 만들던 쓰키시마의 모습이 많이 좋아져 안심이다.

나쓰코 또한 무작정 피아노 연습을 했었는데 새로운 연주의 기법과 재미를 알게 된다.

이들이 결성한 밴드가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음반관계자가 명함을 주고 간다.

그것도 지하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첫 공연이었는데... 그리고 이 소설을 끝을 맺는다.

158회 나오키상 후보였다는 후지사키 사오리의 픽션과 논픽션이 뒤섞인 <쌍둥이>였다.

"네가 있을 곳은 내가 만들 테니까, 울지마" 라고 말하던 ADHD의 쓰키시마.

쓰키시마의 "너는 내 쌍둥이야"란 말에 의지하며 끈을 놓치 않은 왕따 소녀 나쓰코.

두 사람의 십 년 간의 성장기를 나쓰코의 시선으로 <쌍둥이>에 담담하게 옮겨놓았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성장기에 겪을 수 있는 아픔일 것이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용기와 기회,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이 두 사람, 나쓰코와 쓰키시마는 쌍둥이라 부를 수 있을 많은 시간이 쌓여 다행하다.

딱히 내 취향이었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나름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던 <쌍둥이>였다.

 

 

 

 

 

쌍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