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 '실루엣'은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않은 그들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이야기이다. 

여느 일본 소설처럼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지루한듯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일본 소설은 정말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썸 타는 능력이 최고인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그때 칸이 사용한 혐오감이란 말은 나중에 내가 여자라는 절대 바뀔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조책감이었다'

어머니의 부정과 그로인한 참극은 그에게서 이성과의 관계 맺기에서 자연스러움을 앗아간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상 진동은 결국 그들 사이에 균열을 만들고 만다. 

2학년의 마지막 날이 찾아와, 2년째 고교 생활이 마감되었다.

이 단편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문장이다. 그들 이별의 표면적 이유는 그의 트라우마로 인한 육체적 관계의 결여다. 일견 이상할 것 없는 흔하디 흔한 누군가의 결별사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고교생 소녀로 한정되는 순간 이질감으로 어느 하나 공감할 수 없게 되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더욱 아쉽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조금만 속도를 늦춰 그를 배려할 수 있었다면 새로운 인연과 경쾌하고 상쾌한 출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의 이별후에도 여전히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 안에서 방황하지 않고 말이다

이야기는 그들의 마지막을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확실히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 그들이 이별했음을 확실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어떠한 아쉬움도 아련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재해석된 백설공주는 사회지도층 여자가 소외계층인 일곱 난쟁이를 관리하다 사회지도층의 키스 한 번에 난쟁이들을 버리고 도망간 이야기이고 인어공주는 인류 최초의 세컨드 동화이며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사회 지도층인 여자가 잠만 자다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 사회지도층을 만난 이야기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봄봄은 딸을 볼모로 한 혼인빙자 및 노동력착취의 사기극이 될 것이다.

’나’의 1인칭 시점으로 불합리하고 억울한 그의 상황이 서술되지만,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작가의 해학적인 상황설정이 웃음을 자아낸다.

나는 점순이와 혼인을 하기 위해 그녀의 집에서 4년 가까이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점순이의 키가 크질 않아 혼례를 시킬 수 없다고 하지만 속내는 셋째 딸이 데릴사위를 드릴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무슨 이유를 갖다 붙여서라도 버틸 생각이다. 돈을 들여 일할 사람을 쓸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계속해서 옆으로만 퍼지고 붙박이처럼 그대로인 점순이의 키뿐만은 아니다. 뻔히 상황을 알면서도 혼인을 재촉하며 사람 속을 긁는 것을 넘어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장인어른과 몸싸움이 났을 때 당황스럽게도 자기 아버지의 편을 들며 나를 탓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장인어른과의 몸싸움 장면과 이야기의 마지막 나의 황당한 표정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나는 김유정의 봄봄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식스센스의 반전이 있으며 팜므파탈의 여우가 등장하는 농촌총각 결혼 원정 수난기라고.

상황과 상반되는 묘사로 유쾌하기까지 하다. 엄숙해야 할 상갓집에서 사소한 일로 웃음을 터트려 몸 둘 바를 모르게 된 사람처럼 미안하고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