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나오는 세계의 명화 시리즈 중에서 세권을 받았다.
마티스, 고흐, 그리고 천경자
시대순으로 본다면 고흐,마티스, 그리고 천경자... 이렇게 되겠다.
마티스를 먼저 읽었는데, 익히 알고 있던 그림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그림들도 많았다. 마티스의 ’춤’같은 경우는 굉장히 유명해서 보다 단순화시킨 판화 그림도 보곤 했지만, 그밖의 작품들은 상당히 낯설었다. 독특한 점은, 인체의 곡선을 단순화시켜 일부러 ’직선’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 직선이 강렬한 대비를 주어서 그림을 보다 힘있게 만들어 준다.
색상의 선택도 특별했는데, 빨간 테이블에 빨간 벽을 만들어서 경계가 보이지 않게 한 것이 특이했다.
이 작품은 미술관에 막 다녀온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 형식을 빌어 마티스의 작품을 소개했는데, 아들 석이가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서 ’동시’도 짓는 등 그림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많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실제로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다녀와서 이런 대화를 나누며 관련 화보를 찾아보는 노력을 보인다면 아이의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예능 교육은 주입식 교육으로 잘못 정착되어서, 그림도 몽땅 외우고 음악도 몽땅 외우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예술 그 자체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기반이 어릴 때부터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술관도 자주 다녀오고 화보도 보면서 그림을 늘 가까이에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작품 속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그래서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티스와 좀 더 친해질 수 있었으니 독자로서도 안성맞춤인 독서였다.
두번째로 고흐를 읽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화가다.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 밖에는 팔지 못했지만 죽어서 이름을 드높인, 그리고 동생과의 뜨거운 우정으로 유명한 화가 반 고흐.
동생 두얼이와 싸우고 시골 할머니 댁에 온 한얼이가 화가 삼촌의 화실에 들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삼촌의 화실은 해바라기로 둘러싸인 노란색 집인데 반 고흐의 느낌을 팍팍 보여준다.
가난했지만 심성이 착했고, 당시 사람들이 주로 그리던 대상이 아닌 서민들을 주 모델로 삼았던 고흐. 어쩌면 그래서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더 친숙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고흐의 그림은 그림 뿐 아니라 퍼즐이나 액자 등등 생활 속의 갖가지 물건 속에서 이름값을 날리고 있다. 어쩌면 고흐의 그림인 줄도 모르고 지켜본 많은 그림들도 있을 것이다.(실제로 내가 그랬다^^;;;;;)
비록 그의 삶의 마지막은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그가 보여준 치열한 작가 정신과 예술혼은 숭고한 마음까지 들게 한다.
고흐와 테오의 멋진 형제애처럼 작품 속의 한얼이와 두얼이도 화해를 하면서 마무리를 하는데, 싱겁기는 해도 멋진 마무리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천경자다. 사실 낯선 이름이었다. 그림을 보니 언뜻 본 그림도 있었지만 대체로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오히려 외국 화가들의 그림에 더 익숙해 있고, 국내 작품엔 무관심하거나 무지했던 것에 반성을 하게 된다. 이런 것도 일종의 문화적 사대주의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천경자의 아들의 입을 빌어 설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에 비해서 고단하고 어려웠던 성년기를 거치며 천경자의 그림은 분위기가 180도 변한다. 특히 ’생태’란 작품 속에서 뱀들을 묘사한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21세기를 사는 내가 이러니, 1950년대의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더군다나 그 뱀이 어찌나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던지, 절로 아름답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천경자의 삶은 그 후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좌절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한단계 더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려 30년 동안 12차례의 스케치 여행을 다녀온 그 정렬은 누구라도 높이 살 것이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살아있는 환상을 화폭에 담아온 그녀의 놀라운 그림들. 자식들에게는 한 점도 물려주지 않고 모두 사회에 기증한 것도 그녀의 놀랍고 대담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뇌일혈로 투병중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좀 건강해지셨는지 궁금하다. 좀 더 오래 작품 활동을 해주실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다.
나로서는 시리즈 중 3권만 본 것이지만, 다른 시리즈들도 몹시 궁금하다.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들을 선행 학습한다는 점도 맘에 들지만 그 이상으로 명화를 가까이하는 즐거움이 크다. 사실 '선행학습'이라기 보다는 그림들을 아이들 가까이에서 숨쉴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진정한 목표일 것이다.
미술관으로 직접 달려가면 더 좋겠지만, 아닐지라도 이렇게 책을 통해서 다가가는 미술관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이 시리즈는 모두 하나의 스토리 안에서 그림들을 끌어안았기 때문에 지루할 새가 전혀 없다.
아이가 읽기에는 글이 많지만, 처음에는 그림을 먼저 보여주고 아이가 자람에 따라 차차 글도 소화할 수 있게 단계를 높이면 좋을 듯 싶다. 엄마도 아빠도 함께 그림 공부하고, 좋은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