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확실히 숫자 쪽으로는 머리가 안 돌아간다.
그렇다고 딱히 수학을 싫어하진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랄까?
특히 연필로 연습장 한가득 계산하며 내려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수학을 좋아한다 말하는 이가 꼭 언급하는 '답이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사실도 꽤나 맘에 든다.
다만 계산을 참 못한다.
누가 대신 돈을 내고, 그걸 다시 받고, 이걸 이쪽에, 저걸 저쪽에 배분하는 걸 금방 딱딱 못 해낸다.
이것은 왜 그런가?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가? 하고 한참 혼자서 심각한 고뇌에 빠지고 만다.
덕분에 엄마에게서 '돌대가리'라는 극단적 평가도 들었다.ㅋㅋㅋ
그러면서 정작 수능에서는 생각지도 않게 수학 점수가 잘 나와버려서 변환표준점수에서 오히려 손해를 본 일화가 있다.ㅡ_ㅡ;
어쨌든 내 두뇌에서 수학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은 주름이 덜 쭈글쭈글한 게 분명하다. 아마도.
그런 내가 별 생각 없이 집어든 게 하필 이런 책이라니.(의미심장한 표지에 꽂혔달까.)
단번에 쉽게 촥 이해가 되진 않았어도, 경제용어 설명을 바로 해 놨기 때문에 차분하게 읽어 나갔다.
뭐 읽기 싫어서 때려치우고 싶은 류의 책은 아니었다. 충분히 흥미로운 책!
초반에는 '상실의 시대'와 'In cold blood'가 생각났다.
차갑고 메마른 듯 버석거리면서도 가벼운 논픽션의 분위기랄까.
작가가 기자 생활을 하고 저널리즘 스쿨에서 유학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작가와 호흡을 같이하지 못할 때 참 슬퍼진다.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발걸음을 나란히 해야 하는데 자꾸만 뒤처져서, 스스로가 참 부족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인 걸~
이 책은 '경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젊은이들의 성장 소설로도 보인다.
실패도 하고, 위기도 겪어 보고, 탈출구도 찾아보고, 깨달음도 얻고.
물론 한 국가의 GDP를 뛰어 넘는 돈이, 전화 한 통에 막대 몇으로 세계를 오가는, 내겐 무진장 낯선, 일종의 판타지 세계이지만 말이다.
소설이라고는 해도 현실 어딘가에는 이런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책을 덮으면 조용한 나의 일상, 책을 열면 정신 없이 돌아가는 그들의 일상.
흡사 짧은 시간에 슉슉 순간이동을 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마지막 장을 읽을 땐, 숨쉴 틈 없이 급박하게 달리고 나서, 무릎을 짚고 하아=3 한숨을 내쉬는 기분이었다.
사실 인생에 있어 결승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잠시 숨을 골랐다면, 다시 앞으로 뛰어나가야 하겠지.
'리스크테이커'는 나에게는 신선한 장르의 책이었다.
비록 과거와 현재의 나는 절대적위험기피자이지만, 조금은 용기를 내어서 현명한 리스크테이커에 한 발짝 가까워지고 싶다.
p.131 이 세상에는 이긴 놈이 정의다. 승리는 감미로울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정당화해준다.
p.188 나는 대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명을 끊지도, 이 세계를 떠나지도 않는 생존자였다.
p.302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미래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뭐든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 그래도 의기양양하게 지냈어."
p.316 "사람은 일생을 바쳐 진선미를 추구해야 하는 존재야. 그 가운데서도 내가 탐닉한 것은 미야. 색채, 화음, 말에 감춰진 번뜩임 같은 것을 나는 찾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