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예전부터 들어오던 작품이었지만, 별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 오 나의 여신님(웃음) '전지현' 씨가 블러드 영화를 찍으신다기에 기념 삼아(?) 책을 구매해 읽게 되었다.
뱀파이어가 나오는, 어느 정도는 익숙한(혹은 흔한) 액션물을 예상했는데, 웬 걸~ 싸움 장면은 얼마 나오지도 않고 끝없는 철학 논쟁이다. 문답법이라~
그런데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난 오히려 그런 전개 방식이 다른 소설에 비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고, 내용도 충분히 맘에 들었다.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기대한 사람들은 이게 뭐야~하며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사야나 뱀파이어나 레이가 아닌 고.토.다!!
형사인 줄 알았으나, 바티칸의 이단 심문관이라니..(이런 의도치 않게 스포일러인가;)
해박한 지식과 능숙한 무기 사용. 거기에 능글능글 열매 섭취자?!흐흐흐
전반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문장이 꽤 많았다.
고기집에서 고토다의 시체 처리에 관한 논쟁, 노인과 고토다의 흡혈 유인원의 진화 논쟁.
인류학, 생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심오한 대화는 어렵긴 했지만, 확실히 흥미진진했다.
책을 읽을수록, 현재 인류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흡혈족이 실제로 우리들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레이의 조직원 간의 약속 암호는 실제 지인들과 써 먹고 싶었다.
XX대 정문 앞 죽림 다원 T.O.P [alone] 론칭 1200원 금일 내 매진 가능성 있음. ㅋㅋ
예전에 '적과 흑' 읽을 때도 그랬지만, 라틴어가 배우고 싶어졌다,
경건함과 비밀스러움이 느껴진달까? 종교 관련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써커 펀치'를 보면서, '블러드' 영화를 잭 스나이더 감독이 만들었다면 훨씬 더 재미 있는 전개, 감각적인 영상표현, 강렬한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다.
어쩌면 뱀파이어는 단지 우리보다 조금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인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피를 탐하는 파괴 본능과 그 매력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아니, 이미 인류 그 자체지.
p.21 정치 투쟁에서 폭력을 행사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부정은 하지 않는다.'는 식의 소극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레이는 위선적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레이 스스로도 무력 투쟁이니 폭력 혁명이니 하는 말을 입에 담을 때 흥분보다는 혐오감을 먼저 느꼈다.
이유 없는 폭력에 의해 상처 입는 것은, 설사 그것이 타인에게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하물며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것은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레이는 그것이 자신의 한계이자 동시에 극복하기 힘든 약점이라는 사실 또한 인식하고 있었다. (중략)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결과적으로 더 커다란 부정을 묵인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그에 가담하게 되는 것을 레이는 매우 증오했다.
p.22 자신의 의지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번은 저질러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것 외에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없으니까. 적어도 나는 그러한 인간이니까. 레이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p.210 노화나 죽음이라는 개념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생명이라는 현상의 기본 원리를 구성하는 것이라네.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곧 살아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지.
p.237 코기토 에르고 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p.246 '이성이 있는 생물은 참으로 편리한 존재이다. 하고 싶은 모든 일에 그 이유를 붙여 정당화할 수 있기에.'->책 속 인용: 벤자민 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