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것과 잃은 것 중 무엇이 더 기억에 남을까.
그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한 환경이나 이유에 따라 다르겠지.
하지만 어쩐지 잃은 것을 자꾸만 곱씹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사서 책장에 모셔놓고는 막상 손에 잡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
물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구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책의 명성에 비해서는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책 자체의 내용보다, 이것을 읽은 날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쉬는 날 청소를 모두 끝내고 뭔가 허전하기까지 한 방에서 누웠다 앉았다 하며 온전히 책에만 몰입을 했다.
약간 흐린 날이었고, 주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열린 창으로 선선한 바람은 불어 오고.
내 손가락이 책장을 넘기지만, 바람이 넘겨주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의 독서.
온갖 먼지와 쓰레기, 소음을 상실한 시간 속에서 이 책을 든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을 지도.(웃음)
음..뭐랄까. 이 작가는 글을 잘 쓴다기보다는, 문장을 참 잘 쓴다는 느낌이 들었다.(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거야! 라고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캐릭터나 스토리는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담담한 분위기는 꽤나 마음에 들었고, 이 소설이 왜 베스트+스테디 셀러인지는 알 것 같았다.
표지 소개에 지난 1000년 동안의 가장 탁월한 문학인 순위가 있는데, 나는 어쩐지 12위 하루키보다 1위의 나쓰메 소세키에 더 눈이 가고 기쁘더라~=_=;; 팬심은 어쩔 수 없느니.
작가는 자신의 마흔을 예상하지 못했다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미래를 많이 생각해왔다.
요즘은 더욱 더.
내가 생각하는 미래가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걸.
다만 의문은 현재의 이 순간, 나이는 먹고 있는데, 인지는 어째서 따라가지 못하는가이다.
이 알 수 없는 마법 혹은 저주가 어느 날 갑자기 풀려 한 순간에 늙어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다.
하울의 소피처럼.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그런지, 아니면 작가의 원래 특성이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솔직하고 섬세하게 글을 써 내려간 것 같다.
반딧불이 장면은 어쩐지 처량하고 애절하더라~ 현실과 대비도 되고.
레이코 씨를 보면서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축제 때 기타 동아리에서 '금지된 장난'을 연주하던 게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기타로 바흐의 곡도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꼭 듣고 싶다.(나아가서는 연주도?!)
소설 끝 부분은 나로써는 황당하더라~
뭐야! 이거 끝이야?
나름대로 의미심장하다면 의미심장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역시나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엉엉
평론에서 말한 하루키 소설의 특성 중에 나는 '무국적성'이 마음에 든다.
그 나라의 특색 있는 문학도 매력이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기에는 무국적성을 띠는 게 더 유리할 것 같기도 하다. 뭐 일부러 그걸 노리고 글을 쓴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런데 성적인 묘사에 있어서'포르노도 고개를 돌릴 정도'라고 평론에서 말한 부분은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스스로 너무 레벨업(?)을 한 상태에서 읽어서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했지.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소설이 나왔을 때가 언제냐."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잘은 모르겠다.
이래서 여러 사람과 독서 토론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ㅋ
전반적으로는 무난했던 소설이다.
글의 분위기는 좋았으나, 너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내가 몰입 또는 광분할 만한 캐릭터나 장치 요소들이 없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