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제목과 외양에 뭔가 괴로웠다고나 할까.
재미없고 고리타분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문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접하면 부담스러워 하는 면도 조금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웬 걸~ 정말 재미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특히 명인전에서는 완전 박장대소!!
나름대로 심각한(?)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웃어본 것은 아마 처음인 듯하다.
엎드려 읽다가 방바닥을 치면서 굴러다녔달까.^^;;(조금 오버한 것 같지만, 거의 사실에 가깝다.)

이 책은 총 네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산월기: 시 짓기 좋아하는 이징, 호랑이 되다!
명인전: 활의 명인이 되고자 하는 기창. 눈 깜빡이지 않기. 미세한 것 크게 보기. 활 없이 명중하기. 활이 뭔지도 몰라보기.
제자: 공자와 자로.
이능: 장군, 흉노에게 잡힘. 친구 소무는 절개를 지키는 것을 보며 괴로워 함. 사마천과 사기.

명인전에서 눈 사이에 거미가 집을 짓는다거나, 이의 심장을 맞춘다거나, 벼룩이 말 만해 보인다거나(읽은 지 좀 돼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음;) 이런 문장들이 물론 활의 명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지만, 그 모습을 상상해보자니 정말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각 이야기마다 자아의 고뇌가 절실하여, 글 속의 인물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자로의 생각은 나와 꽤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내가 만약 공자의 제자였다면 많이 혼났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통해서 잘 모르는 중국 역사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의 형벌이 가혹한 것은 많은 인구의 효율적인 통제를 위함일까?
그래도 역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법을 만든 이, 판결을 내리는 이, 형을 집행하는 이. 모두 떳떳하다고 할 수 있는가? 죄가 있다면 누구의 죄가 가장 큰가? 의문이 들었다.(이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의 생각도 듣고 싶은데, 아무래도 지인들끼리 모임을 한 번 가져야 할 듯.^_^)

얇은 책이라 부담없이 읽어 내려가면서도 여러모로 유익했다.
다만, 주석을 뒤에 한꺼번에 몰아놔서 모르는 단어를 왔다갔다 확인하려니 그 점이 조금 불편했다.

B to D, 그것은 C의 문제.
Birth to Death, 그것은 언제나 Choice의 문제.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것은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p.19 인생은 ’무엇인가를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엇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다.

미우라 아야코의 글은 기독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면서도,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딱히 거부감없이 무난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빙점을 읽을 때에도, 기독교를 밑바탕에 깔면서도 이렇게 글을 풀어낼 수 있다는 데 놀랐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글을 읽어가면서 참으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했다.
노부오가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에서 집이었다면 소리내어 울었을 텐데, 독서실에서 읽는 바람에 눈물 떨어지는 것조차 어쩐지 조심스러워 힘겹게 참았다.
오히려 그런 감정의 절제 때문에 이 책이 더 기억에 남을 지도 모르겠다.

문득 텅 비어버린 내 마음이 더욱 허전하게 느껴졌다.
예전의 그 뜨거웠던 열정과 타인에 대한 희생·봉사의 정신은 모두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어느새인가 내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우려했던 일.
’제발 제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매번 속으로 기도했었는데…….
머리와 가슴과 몸이 모두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다.
부디 하나가 되어 줘. 내 기도를 이룰 수 있게.

죽음.
일반적으로는 편안하고 조용한 죽음을 원한다.
하지만 죽음의 색깔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분명 고귀한 희생이지만, 그를 위해서는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욕심을 버린다는 게 갈수록 힘이 든다.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하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타주의는 없다고도 한다.
남을 위해 한다는 일도 결국 따지고 보면 자기가 원해서 하는 자기만족, 이기일 뿐이라는 것.
그저 조금 더 주위로 눈을 돌리는 수밖에.
조금 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p.24 인간은 어느 사람의 마음이 좋은지 나쁜지, 실은 알 수가 없는 거야.
p.93 인간의 죽음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왜 미움이 지워지는지 모르겠다.
p.122 사람들이란 눈에 보이는 불구자는 쉽게 비웃곤 하는데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부자유함에 의해 되어진 불구에 대해서는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는 것 같다.
p.219 참으로 자기가 사랑스럽다는 것은, 자기의 추악함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자기의 추악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이라는 이 책.
막연히 고전이라는 편견 속에서 책을 펼친 나는 그대로 책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통속적이다, 신파다 해도 재미있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웃음)

여기서도 여자 캐릭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싫다는데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은 정말이지 딱 질색이다.

언젠가 일본에 가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아다미 해변에서 ’미야의 소나무’를 보게 될까?
(사실 그보다는 간이치가 머물렀던 그 여관에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작가가 위암으로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함으로 인해 이 소설이 미완성이라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우스갯소리로 작가의 생일이 나와 같아서 괜히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p.34 원래 세상살이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 아니어서 사람의 운명만큼 알 수 없는 것도 없지.(중략) 하찮은 세상에 덧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각에 빠져 침울해 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러니 하찮은 세상에서 어느 정도 재미있게 지내려고 생각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거야.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즐거운 일이 있어야만 해. 이렇다 할 한 가지 즐거움이 있으면 결코 세상은 하찮은 것만이 아니지.

p.88 또 생각해 보니 어설피 사람을 믿는 것보다는 돈을 믿는 것이 틀림이 없어요. 사람보다 돈이 훨씬 믿을 수 있지요. 믿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선 이런 생각에서 이 장사를 하게 됐으니,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빌려주겠다는 자본이 탐이 나지만 인간인 당신은 필요치 않습니다.

p.95 ~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다만 잘 견딜 수 있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p.274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더럽혀진 죄명은 어느 쪽이 애정을 깨뜨리는 힘이 더 강할까.

p.405 (소설이 아닌 비평입니다.)죄의 용서=어떻게 보면 이러한 것이 범인류애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우회하거나 호도하는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기피 내지 외면은 패배자의 자위 형태요 생존방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