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가네시로 가즈키님의 글! 마냥 행복하거나 기쁘기만 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 어떤 상황도 특유의 유쾌함으로 밝게 그려내서, 읽는 동안 참 행복해진다.(물론 읽고 나서도!^^) GO는 사실 영화를 먼저 봤다. 꽤 오래 전이었지? 그 땐 사실 뭔가 어수선하다고 느꼈다. 뭘 말하고 싶은 거지? 하고. 시간이 흘러 이 작가의 여러 글을 읽고 결국 GO를 다시 집어들었을 때 비로소 미소지을 수 있었다.

 

레벌루션 NO.3의 '히로시'에 이어, GO에서는 예상치 못한 '정일'의 죽음으로 많이 놀라고 또 슬펐다. 10대에 친구를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잃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살아서 스무 살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것. 그저 슬프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부족한 것 같다. 중학생 때 '10년 뒤에 어떤 모습일 것 같아?'라는 질문에, 일단 내가 살아는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서도. 어쨌든 무사히 그 시기를 지나온 나는 감사...해야 하는 거겠지?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GO에서는 특히나 '싸움의 기술'을 배우는 기분이다.^^ 복싱. 아~ 나도 날렵해지고 싶다. 슈슈슉. 이건 절대로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야. ㅋ 강한 주인공들을 보면,(그들에게도 괴로움은 있지만) 나도 내 자신의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싶다. 함께 달리고 싶다. 바람에 가까워지고 싶다.

 

p.24 왠지 몹시 슬퍼졌다. 이 녀석도 옛날에는 축복 받고 태어난 누군가의 아기였을 텐데.

p.25 흑인 해방 운동의 지도자 말콤 엑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위를 위한 폭력은 폭력이라 하지 않는다. 지성이라 한다."

p.101 그리고 오직 한 사람의 여자가 살았던 시대에는 국적도, 무슨무슨 인이라는 구별도 없었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그 자유로웠던 시대의 그냥 자손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p.108 "이런 어둠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어둠을 모르는 인간이 빛의 밝음을 얘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니체가 말했어.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보다 보면 나락 또한 내 쪾을 들여다보는 법'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구."->이 부분 읽었을 때 '데스노트'가 생각났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지만, 괴물보다 더 강해지지 않으면(혹은 괴물보다 더 괴물이 되지 않으면) 괴물에게 이길 수 없는 걸..

p.214 가끔 내 피부가 녹색이나 뭐 그런 색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다가올 놈은 다가오고 다가오지 않을 놈은 다가오지 않을 테니까 알기 쉽잖아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나오고, 에피소드도 많아서 다소 정신없기는 하지만,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고 매력이 철철 넘쳐서 즐겁게 읽어 나갔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좀 잔인할 수도 있겠지만.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보니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썼다는.=ㅁ=;;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웃기지는 않은데. 내 웃음포인트가 좀 남다른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말이지.

’아코 성주 아사노는 기라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칼을 들었으나 가벼운 상처만 입히고 본인은 할복을 명받는다. 아코 성은 몰수당하고 개라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구라노스케는 때를 기다리다 47人의 아코 낭인들과 기라를 치고 전원 할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 뭐랄까. 참 아까운 목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의리’이든 ’충’이든 ’신’이든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죽음을 결심한다는 것이 대단해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한편으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의미는 다르지만, 최근 일어나는 연예인 자살도 떠오르고.) 그리고 일본은 확실히 한국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p.147 "그대의 목숨을 내게 주겠는가?" "각오한 지 오래이옵니다."

나로서는 쉽사리 말할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문장들. 책임지기도 싫어하고, 죽음도 무서워하니까. 그만큼 믿는 사람도 없다는 게 결정적인 문제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단번에 저런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참 기분이 묘할 것 같다. 기쁘기도 슬프기도 한 그런 기분. 질문과 대답 모두 그 무게는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논픽션 역사 소설을 읽다보니, 확실히 그 쪽 분야의 몇몇 소설들이 더욱 구미가 당긴다. 뭐 언젠가는 읽겠지. 흠흠

전직 샐러리맨이자 현 사립 탐정인 니키와 그의 조수 아리사가 함께 풀어나가는 일상 속의 미스터리. 탐정 이야기 치고는 정말 소소한 사건들이다. 이 정도라면 현실에 있을 법 하지만, 돈 벌기는 힘들지 않을까?^^; 

무지개 집의 앨리스는 엄마와 아이 모임에서 벌어진 사건, 감옥의 집의 앨리스는 아이 유괴 사건, 고양이 집의 앨리스는 ABC 고양이 살해사건, 환상의 집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과 환상에 대한 고찰, 거울의 집의 앨리스는 니키의 아들인 슈헤이의 애인과 스토커 사건, 꿈의 집의 앨리스는 화분 도둑에 관한 사건이 나온다. 하나하나 별 거 아닌 일 같으면서도 뭔가 톡톡 튄다. 과자 속의 별사탕 같달까. 각각의 색깔도 맛도 미묘하게 다른.

전반적으로는 다소 만만한(?) 사건이었는데, 유독 거울의 집의 앨리스가 나를 괴롭혔다. 그보다는 울컥했달까. 작가에게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거든.ㅎㅎ 범인이 이 여자인 것 같다가 저 여자인 것 같다가 결국은 이 여자? 아 그렇구나~어, 아니야? 그랬군. 뭐야 결국은 얘야. 완전히 가지고 놀아진 나. 뭔가 스스로 우스운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살짝 기분 나쁠 뻔 했어.ㅋㅋ

이 책 읽으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꼭 읽어봐야지! 하고 다짐했다.(아직도 안 읽었다.=ㅁ=;;) 추리소설도 기웃거려볼까 고민 中. 

p.105 사람의 아이가 유괴되는 것보다, 고가의 보석이 도난당하는 것보다 개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이 훨씬 큰 사건일 때도 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보기에 '왜 저런 일로 호들갑일까.' 싶어도 그 사람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따금씩 상대주의라는 것이 어디까지 인정되는가, 상대주의라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절대적으로 아닌 것, 절대적으로 맞는 것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모두 이해가능하고, 사람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면, 사회는 존속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게 중요하겠지. 그만큼 어려운 것이고.

p.191 환상이라는 건 양념과 같은 것이다. 전혀 없다면 인생이 보통 맛이 없어지는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때로는 환상을 가진 사람도, 환상의 대상이 된 사람도 괴로워진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은 꽤나 끔찍한 현장이었을 거라고. 마음 속의 나와 겉으로 드러나는 내가 점점 멀어지면서 그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요즘 들어서의 상상은 달콤한 도피처이다. 현실을 벗어나 나만의 공간으로 가서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그 상상 또는 환상 아니면 망상은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는 게, 그 공간에서도 현실의 법칙은 여전히 존재한다.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뜻일지도. 인식 가능하다는 건 말이다. 그럼에도 상상을 놓을 수 없다. 마약 같은. 이대로 고립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정말 정신병에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때서야 겨우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은 내가 잠시 도망쳤던 그대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아니 나만 후퇴한 채로 나를 바라본다. 배 부른 소리. 나태한 자기 자신에 대한 구차한 변명.

p.242 "있죠, 소장님. 집이란 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게 진짜라면, 나는 이상만 높은, 현실은 더럽기 짝이 없는 사람. 하하핫. 디딜 틈도 없이 복잡한 인간?ㅡ_ㅡ;;

p.286 "~언제나 웃고 있다는 건, 결과적으로 무척 불성실한 것일 수도 있단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 버리지……. 본심이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역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웃고 있을 수 있다는 건 도대체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걸까? 물론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말이다. 본심을 감추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으려나. 하긴 항상 본심으로 지낸다는 건 힘들 뿐더러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른다.(진심이 항상 짜증나고 화나는 거라면 어떻게 해?) 본심, 진심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 상처투성이가 될 뿐인 진심보다 따뜻한 말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냥 내가 상대방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르면 되지 않을까. 이것도 도피...인 거겠지. 휴=3

p. 292 "성장이 아니라 타락일지도요."~ "하지만 뭐 좋아요. 그 편이 확실히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드니까요."

당신은 언제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가. 난 역시 죽음의 냄새를 맡은 후라고 생각한다. 그게 어떠한 방식이든지.